잊어서는 안 될 그날, 5월의 광주 『소년이 온다』

소제목: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그날의 이야기

[객원 에디터 10기 / 박나경 기자]5·18 광주 민주화 운동” 우리는 교과서에서 5월 18일이라는 날짜를 배우고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이야기는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잔혹한 현실과 사람들의 선택, 그리고 그 속에 얽힌 두려움과 용기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군사 지도부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어지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특히 군사 정권의 통제와 탄압이 심했던 전라남도 광주에서는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을 필두로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계엄군을 투입해 시위를 강제로 진압했습니다.

계엄군은 총기와 무기를 사용하며 무차별적으로 시민들을 진압했습니다. 공포에 빠진 시민들은 도망쳤지만, 공수부대원들은 끝까지 추격해 붙잡은 뒤 곤봉, 개머리판, 군홧발로 폭행하고 트럭에 태워 이동시켰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비명과 욕설이 뒤섞이며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 출처:e영상역사관 >
< 출처:e영상역사관 >

5월 18일 오전, 휴교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학생들은 등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계엄군에 의해 전남대 50여 명이 등교를 저지당하자, 계엄령을 해제하고 휴교령을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대와 계엄군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공수부대원들은 군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뿐만 아니라 교수들마저 진압해으며, 수많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광주 CBS 방송사는 계엄사의 보도방송 금지령을 받고 지역방송을 중단하였습니다. 사실 보도를 하지 않고 계엄군에 유리한 방송을 하는 방송국들에 격분한 시위군중은 5월 20일에는 광주 KBS를, 21일 밤에는 광주 MBC를 방화했습니다. 

1988년 국회 광주 측위 공식 발표에 따르면 시민 191명이 숨지고, 852명이 부상했으며 이후 공식적인 사망자 207명, 부상자 2392명, 행방불명 910명으로 수정되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희생자 숫자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남대 직원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새벽 2시쯤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문을 쾅쾅 차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후 공수부대가 중앙도서관 열람실의 비상 키를 요구한 뒤 본관으로 향해 학생들을 끌고 나와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습니다. 오전 10시께 젊은 학생이 교대로 오자 공수부대원 3명이 그를 잡기 위해 쫓아가, 쓰러진 학생의 어깨와 뒤통수를 구타한 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트럭에 싣고 떠났습니다.”

무고한 학생들의 부상 기록도 전남대병원 응급환자 기록지에 남아 있습니다.

(전남대 행정학과 4학년, 남, 27세) 5월 18일 08:20 응급 환자 입원. “어제 저녁(5월 17일) 도서관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공수부대가 들이닥쳐 두들겨 패서 복통과 구토 발생. 복부 좌상 2주.”

엄격한 언론 통제로 외부에서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진실이 전해졌습니다. 약 200여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당한 이후, 광주는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 되었고, 1997년 이후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사건의 사실과 역사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피어난 시민들의 연대와 용기를 보여줍니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레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며, 역사를 내 경험처럼 느끼며 기억하게 됩니다. 

『소년이 온다』를 통해 우리는, 그날의 두려움과 희망,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 시민들의 용기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습니다.

만약 그날, 총성이 빗발치고 혼돈으로 뒤덮인 거리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무엇을 느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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