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김채희 기자] 침팬지는 우리에게 많이 친근한 동물이다. 인간과 비슷하게 눈을 맞추고, 익숙한 손짓을 따라 하는 그 모습이 어쩌면 인간처럼 느껴진다. 유전적으로 98% 이상 비슷하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비슷함은 단순히 외모나 DNA 수치에서 끝나는 걸까? 그들의 뇌는 우리의 뇌와 얼마나 닮았고, 또 얼마나 다를까를 살펴보려 한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사성은 종종 DNA 염기서열의 숫자에 기반해 언급된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건 그 뒤에 있는 이야기다. 유사한 유전자로부터 전개되는 뇌 발달의 메커니즘은 어떨까? 뇌는 유전자의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지지만, 설계도를 어떻게 읽고 적용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인간과 침팬지는 놀라운 유사성과 흥미로운 차이를 동시에 보여준다.
UCSF의 연구진은 인간과 침팬지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각각의 뇌 오가노이드를 배양했다. 이 인공 미니 뇌 구조는 초기 발달 과정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다. 표면적으로는 유사해 보였지만, 실제로 인간의 신경 전구 세포는 침팬지보다 분열 주기가 더 느렸다. 이 말은 즉, 인간의 뇌는 더 긴 시간 동안 발달하며 더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인지 능력, 언어, 창의성 등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느린 발달이 단순히 양적인 증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은 그 느린 성장 과정 속에서 세포들이 더 많은 정보를 주고받고, 외부 자극에 더 정밀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신경망을 구성하게 된다. 이는 인간이 사회적 맥락을 해석하고 문화적 코드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인지적 기반이 된다. 이는, 시간이라는 자원에 대한 방식 자체가 두 종의 진화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세밀한 분자 수준의 연구도 있다. 어떤 한 2016년 연구에서는 인간의 뇌 발달 동안 Pax6+ 첨단 전구 세포가 침팬지보다 유사 분열 상태에서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다고 보고했다. 이 차이는 뇌 피질 확장에 영향을 주며, 더 많은 수의 뉴런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인간의 대뇌 피질은 사고, 계획, 언어 등 고차원적 기능을 담당하는데, 이러한 세포 수준의 차이가 곧바로 기능적 복잡성의 차이로 이어진다.
이 연구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세포가 단순히 나뉘는 속도만이 아니라,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을 복제하고 분화하느냐가 인간과 침팬지 간의 궁극적인 인지 능력 차이를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Pax6 유전자는 신경 발달을 지배하는 핵심 전사인자로, 그 발현 지속 시간과 공간적 분포가 결국 뇌의 구조와 기능을 결정한다. 인간에서는 이 유전자의 활성화가 상대적으로 길어져 더 많은 신경전구세포가 생성되고, 그 결과 뉴런의 절대 수뿐만 아니라 시냅스 연결의 다양성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침팬지에서는 이 과정이 보다 압축적으로 일어나며, 이는 그들이 보다 빠른 반사와 반응성을 지닌 환경 적응형 뇌 구조를 갖게 된 배경이 된다.
또 다른 2021년 연구는 인간과 침팬지의 뇌 오가노이드를 분석해 RNA 발현 패턴의 차이를 밝혔다. 민간에서는 발달 초기에 뇌세포 간 연결을 돕는 유전자들이 더 활발히 발현되었으며, 이는 뇌 회로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일한 유전자가 존재하더라도 발현 시기와 위치, 강도에 따라 기능은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RNA 수준의 차이는 단순한 발현량 이상의 시사점을 지닌다. 특정 유전자들의 조절 RNA 또는 비암호화 RNA(ncRNA)의 차별적 활성은 유전체가 어떻게 읽히는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뇌 발달 초기에 활성화되는 특정 lncRNA들은 뉴런의 위치 이동, 가지 형성, 시냅스 형성에 관여하며, 그 효과는 전체 뇌의 네트워크 복잡성으로 이어진다. 침팬지의 경우 이런 비암호화 요소들의 활성 시기나 위치가 인간과 다르게 설정되어 있어, 동일한 유전적 구성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기능적 결과를 낳는다.
이는 단지 분자생물학적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생리학적 수준에서 인간은 더욱 복잡한 시냅스 가소성과 장기 강화 현상(long-term potentiation)을 보이며, 이는 학습과 기억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침팬지도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인간은 사회적 학습과 문화 전승, 언어를 통한 개념화 능력 면에서 뇌의 잠재력을 훨씬 더 깊게 활용한다. 이 모든 것이 발달 과정의 시간차와 유전자 발현의 정밀도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뿐만 아니라 뇌의 구조적인 차이도 연구되고 있다. 한 연구에서, 침팬지가 특정 감정 자극에 더 반응하거나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단순히 뇌의 크기나 복잡성 문제가 아니라, 기능적 회로망과 진화 방향의 차이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침팬지는 도구를 만들고, 사냥 전략을 세우며, 사회적 유대와 갈등을 조절하는 복잡한 행동을 보인다. 이는 침팬지 뇌 역시 나름의 정교함을 갖추고 진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과학적 비교가 항상 인간 중심의 시각으로 해석되는 건 의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과 침팬지의 DNA 유사성이 98.5%라는 수치가 실제로는 과장되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유전체 전체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단지 정렬 가능한 부분만 비교한 결과라며, 삽입. 삭제 변이(indels), 복제 수 변이(CNVs) 등 구조적 차이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유사성은 70%~80% 대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능적 유사성은 단순한 염기쌍 일치율 이상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게다가,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과 실제로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별개의 이야기다. 조절 염색질 구조, 에피제네틱 메커니즘, 전사인자의 조합 등은 동일한 유전자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현되게 만든다. 인간은 특정 유전자들의 발현 타이밍을 미세하게 조정하여 더 많은 뉴런을 확보하거나 더 정교한 시냅스 연결을 형성하는 반면, 침팬지는 보다 빠르고 직접적인 발달 전략을 선택했을 수 있다. 이는 환경과 생존 전략에 따른 진화적 결과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차이들을 통해 인간은 문화라는 제3의 진화 단계를 시작하게 된다. 생물학적 진화와는 다른 속도로, 인간은 언어와 기호를 매개로 한 집단 학습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다음 세대로 전수한다.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하고 지식을 전수하지만, 인간의 경우 문화적 누적이 가속되며 문명이라는 독자적 경로를 걷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탄생은 단순한 뇌 용량의 증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교하게 조율된 뇌의 회로망, 유연한 사고, 그리고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의 산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비교를 통해 단순히 인간의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뇌라는 복잡한 기관이 어떻게 다양하게 진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작은 차이들이 어떻게 전혀 다른 사고방식, 문화, 기술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침팬지의 뇌는 결코 미완성이 아니며, 그 자체로 완결된 생명의 결과물이다. 인간과 침팬지, 두 종의 뇌는 유전자의 언어로는 비슷한 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이야기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즈덤 네이처] 뇌는 우리의 사고, 감정, 기억을 조율하는 아주 복잡한 기관입니다. 끊임없이 변하고 학습하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형성하는 뇌를 이해하기 위해, 신경과학은 오랜 세월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질문이 남아 있으며, 과학자들은 오늘도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뇌과학이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들을 탐구하며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신경과학이 밝혀낸 놀라운 발견과 아직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통해, 뇌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함께 고민해 보는 칼럼을 연재하고 싶습니다. 위즈덤 아고라 김채희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우리의 뇌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