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의 진실을 밝혀줄 편지
“우리가 왕비를 죽였다”라고 주장한 한 일본인
[객원에디터 2기 / 이소민 기자] 명성황후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인물 중 하나이다.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의 왕비로 1851년에 태어나 1895년에 생을 마감했다. 명성황후는 당시 일본인 낭인들, 일본 외교관, 경찰 등으로 구성된 그룹에게 잔인하게 시해되었으며, 지금까지 이 사건은 흔히 ‘을미사변’이라고 불린다. 을미사변은 1895년 10월 8일, 일본인 낭인들을 포함한 일본 외교관과 경찰 등 약 48명이 참여하여 경복궁으로 새벽 3 – 4시 무렵에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집단으로 처참히 시해한 사건이다. 당시 서양 외교관 중 한 명이 경복궁에서 이 사건을 직접 목격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인 낭군들은 본국으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거나, 1년이라는 가벼운 처분만 받으며 허무하게 끝났다고 밝혔다.
며칠 전 일본에서 자신이 명성황후를 죽였다고 지인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됐다. 이 편지는 약 126년 전, 8명에게 보내진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상하게 한 편지 1통만 봉투로 밀봉되어 있었다. 이 편지를 쓴 것은 당시 조선 공사관 영사보였던 호리구치 구마이치였다. 그는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바로 다음 날인 1895년 10월 9일에 자신의 친구가 있는 니가타현으로 보낸 것으로, 편지에는 “우리가 왕비를 죽였다”라고 주장하며 명성황후를 시해하기 위해 다른 일본인 낭인들과 함께 했다는 등 세부 계획이 상세히 적혀있다. 또한, 그는 편지에 “진입은 내가 담당하는 임무였다. 담을 넘어 (중략) 간신히 오쿠고텐 (귀족 집의 안쪽에 있는 건물, 침소)에 이르러 왕비를 시해했다” 등 자신이 맡은 임무에 대해 자세히 썼다. 이어서, 그는 “생각보다 간단해 오히려 매우 놀랐다”라고 감상까지 적었다.
해당 편지는 일본 나고야시에 사는 일본계 미국인 스티브 하세가와 씨 고물상에서 입수했다. 재일 역사학자 김문자 씨가 이 편지를 판독했으며, 붓으로 흘려쓴 글자 내용을 세상에 밝혔다. 그는 “편지가 원래 보관돼 있다고 여겨지는 장소나 기록된 내용, 소인, 봉인 편지를 만든 방법 들을 비춰볼 때 회구치의 친필로 보인다”라고 말하며 “사건의 세부나 가족에 관한 기술 등을 비춰봐도 호리구치 본인의 진필로 봐도 틀림없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서울대 명예교수 이태진은 “범죄 현장에 있던 현직 외교관이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범행 사실을 인정한 서한이 발견된 것은 을미사변이 일본의 국가범죄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라고 강조하며, 최근 발견된 편지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126년 전의 편지는 현재까지 사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을미사변의 세부 사항을 설명하는 중요한 자료다. 또한, 이러한 편지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데 가담했던 일본인 외교관이 직접 쓴 편지기 때문에 을미사변은 일본 국가 차원의 범죄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자료에는 명성황후를 직접 찌른 인물은 정확히 나와있지 않지만 “모 육군 소위”라고 나와있으며 다른 인물들의 이름도 언급이 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아직까지 을미사변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호리구치 구마이치가 직접 쓴 편지를 통해 당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데 도와주던 사람들의 이름과 직업이 나와있기에 많은 새로운 정보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