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lustration by Jessica Kim 2009(김지우) >
[위즈덤 아고라 / 정동현 기자] “유전병은 전염되나요?”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이러한 질문은 여전히 들려온다.정답은 ‘아니오’다. 그러나 이 단순한 답변이 오늘날까지도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전병, 그 낙인과 오해의 역사
20세기 한국에서는 정신질환자나 유전병 환자에게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실제로 존재했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9조는 유전병이 있는 경우, 보건사회부 장관이 불임시술을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실제로 이 조항을 근거로 2년 뒤인 1975년 충남 보령의 정신병원에서는 간질이나 지적 장애가 있는 여성 환자들이 불임수술 대상자가 되었다. 물론 2015년 전면 개정으로 지금은 이 조항이 삭제되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27년, 미국 대법원은 지적 장애가 있는 여성에게 불임 수술을 시행한 버지니아주의 법률을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특히 일명 ‘캐리 벅 사건(Buck v. Bell)’은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우생학적 강제 불임에 대한 합헌 판례 중 하나가 되었고, 장애인, 여성,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 주도의 강제 불임 시술을 정당화하는 법적 근거가 되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와 유타주 등에서도 장애인과 수감자를 대상으로 동의 없는 불임 시술이 국가 주도로 진행된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 주들에서는 관련 법률이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폐기되지 않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대법원 해당 판례 이후, 단순한 법적 판단만이 아니라 실제 수치에서도 강제 불임 시술의 규모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예컨대 버지니아주에서만 1927년부터 1972년까지 약 8,300명, 전국적으로는 6만 명 이상이 동의 없이 시술되었다는 기록이 있다(Encyclopedia Virginia, 2023). 유타주에서도 약 830명이 병원이나 수감시설에서 강제 시술을 당했다(NIH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2023). 이 수치는 단지 판례의 근거를 넘어, 차별과 권리 침해가 어떻게 수치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이 거대한 폭력은, 과학이 권력이나 잘못된 이념과 결합할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보인자’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오해를 갖지만, 유전학적 사실을 이해하고 과학적 진단과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유전병은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결국 유전병을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과 공동체를 향한 이해의 실천이며, 두려움이 아닌 과학적 인식과 연대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이 글은 그와 같은 질문이 만들어내는 낙인을 걷어내고, 유전병을 겪는 이들이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과학과 제도가 해야 할 역할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유전병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사회적 편견
유전병은 말 그대로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발생하는 질병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전염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체는 DNA라는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단백질을 만들어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기능 이상이 생기고, 그것이 곧 질병으로 이어진다.
유전병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환자가 아니더라도 특정 유전자를 보유한 ‘보인자’일 수 있으며, 후손에게 유전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특히 열성 유전 질환에서 흔한 양상으로, 부모 두 사람이 동일한 비정상 유전자를 보유한 경우, 자녀가 질병을 가질 확률은 25%이다. 그리고 보인자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MedlinePlus, 2021).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유전병이 전염된다고 오해하거나, 환자를 사회적 위험으로 간주한다.
대표적인 예로, 혈우병은 X염색체에 존재하는 유전자 이상으로, 혈액 응고 단백질이 결핍되어 피가 멈추지 않는 질환이다. 적록 색맹 역시 X염색체 유전자 이상으로,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하지 못한다. 알비노증(백색증)은 멜라닌 색소 합성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피부·눈·머리카락 등이 희어지고, 빛에 민감해진다. 페닐케톤뇨증은 아미노산 분해 효소의 결핍으로 뇌 발달 장애가 나타날 수 있지만, 조기 진단과 식이 요법으로 관리 가능하다. 신생아 황달 중 일부는 빌리루빈 대사 효소 유전자 결핍과 관련되어 있으며, 혈액형 자체도 사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의 결과이다.
결국 유전병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삶의 일부’이다. 그럼에도 유전자 보인자라는 이유만으로 보험 가입을 거부당하거나 취업·결혼에서 불이익을 겪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차별을 막기 위해 미국은 2008년 GINA를 제정했다. 그러나 법 제정 이후에도 많은 사람이 이 법의 존재조차 모른다. 예를 들어 코네티컷, 미시간, 오하이오, 오리건 등 4개 주 조사에서 법을 아는 비율이 13~19% 미만이었다(Parkman et al, 2014). 또, 한 연구에서는 GINA 보호 범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법이 보장하지 않는 보험 영역까지 ‘보호가 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했다(Scherer et al, 2021).
이 법은 유전병에 대한 편견이 사회적 장벽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틀을 잡은 중요한 조치다. 실제로 유전정보와 관련된 차별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제도적 대응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기대도 일부 존재한다. 다만, 실제 불이익 경험의 감소가 통계적으로 입증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병이 아닌 사람을 본다는 것 – 함께 살아가기 위한 조건
유전병은 피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이다. 이를 위해 과학적 지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회적 연대와 교육, 제도적 지원이다.
첫째,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이 병은 우성, 저건 열성’만 외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병의 기전과 함께 그 병을 가진 사람이 겪는 현실을 배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과학 수업은 질병의 메커니즘뿐 아니라,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을 성찰하게 해야 한다.
둘째,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한국에도 2015년 ‘희귀 질환 관리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여전히 유전자 진단, 희귀 질환 치료제 접근, 유전상담 등에서는 공공 지원이 부족하다. 진단 비용이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병을 방치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유전병은 단지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의 지표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아직 GINA와 같은 유전정보 차별금지법이 없어, 유전질환자는 건강 문제 외에도 고용·보험 등에서 이중의 불이익을 겪을 위험이 있다(양지현·김소윤, 2017). 진단 단계에서는 제도 개선이 일부 이루어져, 2025년부터 희귀 질환 진단 지원 인원이 두 배 확대되고 대상 질환도 늘어날 예정이다(질병관리청, 2025).
그러나 진단의 확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법적·사회적 안전망 없이 유전정보는 또 다른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병은 죄가 아니다. 병을 일으키는 구조가 있고, 병을 견디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질병이 아니라, 질병을 지닌 사람을 ‘문제’로 취급하는 사회의 시선이다. 국내 통계에서도 유전성 질환 및 희귀 질환 환자의 의료비 부담은 여전히 상당하다. 2022년 신규 희귀 질환자는 5만 4,952명에 달했으며, 이들의 평균 진료비는 약 639만 원, 이 중 본인 부담금은 약 66만 원이었다(2022 희귀 질환 통계연보).
그러나 전체 1,248개 등록 희귀 질환 중 산정특례가 적용되는 질환은 243개에 불과하며, 치료제와 의료기기의 비급여 문제 또한 여전히 남아 있다. 제도적 지원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치료비와 제한된 보험 접근성이라는 벽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럼 제도적 지원 확대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환자들은 치료비, 비급여 항목, 보험 혹은 건강보험의 제한적 접근성 등의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매우 많다. 결국 문제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질병을 가진 사람을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유전질환이나 희귀 질환을 개인의 책임이나 위험으로 전가하는 편견이야말로, 환자들을 이중의 고통 속에 머물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유전병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타인을 이해하는 일을 넘어서 내가 살고 싶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먼저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이해의 시선을 건넬 때, 과학도, 제도도, 공동체도 비로소 사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유전병 환자가 곧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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