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정과 경험 없는 작품이 가지는 한계와 가능성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정한나 기자] 예술은 오랜 기간 동안 인간 고유의 활동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며 소설까지 만들어내는 시대가 열리면서, 그 전제는 흔들리고 있다. AI의 창작물이 어디까지 예술로 인정될 수 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창작자들의 권리와 책임은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는 현재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지식재산 관련 기관들은 공통적으로 AI가 콘텐츠 제작에 혁신을 가져올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한다. 동시에 학습 데이터의 출처, 기존 저작물과의 유사성, 창작물의 권리 귀속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특히 AI가 기존 작품을 무단으로 학습한 뒤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창작자들의 권리 침해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이미 관련 원칙이 세워진 상태다. 저작권청과 법원은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없는 작품은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없다”라고 명확히 못 박았다. 이는 AI 산출물이 법적으로 인간의 창작물과 동일하게 보호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기술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이미 AI 창작물이 소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생성형 AI와 저작권을 둘러싼 제도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I 저작권 제도개선 협의체’를 구성해 학습 데이터 제도, 거래 활성화, 산출물 활용 등 다양한 쟁점을 다뤄 왔다. 그 과정에서 AI 결과물의 저작권 등록 가능성과 분쟁 예방 방안을 담은 안내서가 마련되었고,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곧 공개될 예정이다. 이는 창작자, 사업자, 이용자 모두에게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학습 데이터 공개 여부도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특정 화풍을 모방하는 생성형 AI가 확산되면서, 학습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현재 이를 의무화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 인공지능 관련 법과 저작권법이 각각 어떤 문제를 다뤄야 할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AI 음원 합성 사건은 AI 창작을 둘러싼 논란이 단순하지 않고, 여러 갈등 요인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영국 포크 가수 에밀리 포트먼은 최근 팬에게서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AI 생성 음반 ‘오르카’가 나왔다는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포트먼은 AI가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한 사실에 충격을 받았으며, 자신은 인간이기에 결코 그렇게 완벽한 음색으로 노래할 수 없고, 또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음반은 삭제 요청 후 3주가 지나서야 음원 사이트에서 내려갔다. 이처럼 AI가 특정 가수의 목소리를 그대로 모방해 신곡처럼 발표되는 사례가 잇따르게 되었다. 스트리밍 플랫폼이 피해 가수 측의 요청에 따라 음원을 삭제하더라도, 이미 많은 소비자가 해당 곡을 들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사망한 가수의 이름으로 신곡이 유통되기도 했는데, 목소리가 단순한 소리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논란은 저작권 문제를 넘어섰다. 기술의 확산은 음악 창작의 문턱을 낮추지만 동시에 정체성 침해와 명예훼손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불러오고 있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각국은 AI 활용과 규제 방안을 저마다 모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AI가 생성한 음악이나 이미지 등 콘텐츠에 대해 ‘투명성 의무’를 부과하고, 결과물이 AI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반드시 표시하도록 법제를 마련했다. 또한 의료·교육·선거와 같은 분야에서는 반드시 사람이 AI를 감독하도록 했으며, 인간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AI는 사용하지 못하게 막았다. 범용 AI 규정을 어기면 전 세계 매출의 최대 7%까지 벌금을 물 수 있으며, 이러한 규제는 2026년 8월부터 적용된다고 한다.
반면 일본과 싱가포르는 AI 산업을 키우는 데 더 초점을 맞춘다. 일본은 2019년부터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텍스트·데이터마이닝’을 허용했고, 올해 초에는 AI가 데이터를 다룰 때 주의할 점과 책임 범위를 안내하는 지침을 내놓았다. 싱가포르도 기업들이 규제 걱정 없이 AI를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 다시 말해서 EU는 안전과 권리 보호를 먼저 생각하며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일본과 싱가포르는 산업 성장과 혁신을 우선하는 전략을 쓰고 있어서 각국 AI 정책 방향이 크게 다르다.
웹툰·웹소설 업계에서도 AI를 둘러싼 갈등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작가들은 본인의 작품이 동의 없이 AI 학습에 활용된다는 점에 강하게 반발한다. AI가 특정 화풍이나 문체를 흡수해 “비슷하지만 다른 작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낼 경우, 인간 창작자의 독창성이 희미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창작의 핵심인 독창성이 위협받는 순간, 창작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작품이 동의 없이 수집돼 AI 학습에 쓰이고, 피해가 생기더라도 이를 추적하거나 대응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미술과 영상 업계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예술가들은 AI가 동의 없이 자신들의 작품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비슷하지만 다른” 이미지를 대량 생성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콘셉트 아티스트 카를라 오르티즈는 영화와 게임 제작을 위해 시각 자료를 제공하는 ‘현장 노동자’로서, 자신의 작품이 보상이나 크레디트 없이 활용되는 현실을 경험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이 점점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이 커졌고, 일부는 앞으로 자신의 직업 자체에 위협이 될까 우려한다. 오르티즈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작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수익 문제가 아니라 인간 예술의 정체성과 창작 동기를 보호하려는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AI를 전면에 내세운 플랫폼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최근 ‘주식회사 어니언툰’은 국내 최초 AI 기반 웹툰 플랫폼 ‘리얼툰’을 정식으로 출시했다. 리얼툰은 기존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던 스케치나 채색 같은 제작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제작비와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동시에 이런 방식이 확산될 경우 기존 작가들의 설 자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AI 창작을 둘러싼 시각은 분명히 갈린다. 창작자는 권리와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산업계는 혁신과 효율을 앞세운다. 소비자는 새로운 콘텐츠를 즐기지만 그 생산 과정의 윤리적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하다. 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갈등은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결국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바로 “AI가 만든 결과물을 예술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다시 묻는 문제이다.
예술은 단순한 아름다움이나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인간의 감정과 경험, 시대적 맥락을 담아내는 행위다. 예를 들어 음악은 단순한 음의 배열이 아니라, 작곡가와 가수가 삶 속에서 쌓아온 감정이 뒤섞인 산물이다. 소설 역시 단순히 문장들의 연결이 아니라, 작가가 살아온 시대와 세계를 해석한 결과로써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AI는 이런 감정과 경험의 깊이를 재현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과정에는 ‘삶을 살아낸 주체’의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AI의 산출물을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AI 창작을 예술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예술사는 늘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받아들여왔다. 사진은 한때 회화를 위협했지만 결국 독립된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고, 영화 역시 처음에는 단순 기록 매체로 여겨졌으나 20세기의 대표적 예술 형식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AI가 만든 작품도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AI 음원 합성 논란이나 인공지능 기반 웹툰 플랫폼의 등장 등 최근 사례들을 보면, AI는 단순히 창작의 도구를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 AI 음원 합성 사건이나 AI 웹툰 플랫폼의 등장처럼, 기존 창작 방식이 예상보다 빠르게 대체되거나 보완되는 흐름이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들은 불안을 호소하지만, 동시에 일부는 AI를 활용해 작업 속도를 높이고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다. 기술의 확산이 창작자에게 위기이자 기회로 동시에 작용하는 셈이다.
사람과 AI의 협업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최근 카네기멜론대 로보틱스 연구소는 사람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협업형 로봇 CoFRIDA를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그림 실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사용자가 텍스트나 이미지 예시를 제공하면 로봇과 번갈아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이전 프로젝트에서는 로봇이 혼자 그림을 완성했지만, 이번 버전은 사용자의 의도를 반영하며 창작 과정을 공동으로 수행한다. 작품의 전반적인 방향은 사용자가 결정하고, 세부 묘사와 반복적인 작업은 로봇이 맡게 된다. 연구진은 향후 개인화 기능을 추가해 최종 작품의 스타일과 디테일을 사용자 취향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예술은 “인간 대 기계”라는 대립 구도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협업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가진 서사적 경험과 해석 능력은 여전히 예술의 중심에 남겠지만, AI는 표현의 도구이자 보조 창작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맥락에서 활용하고 사회가 어떤 규범을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위즈덤 TECH]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생각하고, 선택하며, 감정까지 흉내 내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기술의 편리함과 불안이 공존하는 지금, 인간의 자리는 어디에 있어야 할지 고민해 봅니다. 이 칼럼에서는 현재 과학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윤리적 딜레마와 사회적 논의는 무엇이 있을지 살펴봅니다. 나아가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도 연재를 통해 함께 배워나가겠습니다. 위즈덤 아고라 정한나 기자의 ‘위즈덤 TECH’와 함께 인공지능의 세상으로 떠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