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정한나 기자] 디지털 기술이 의료 영역으로 깊이 들어오면서 웨어러블 기기가 새로운 건강 관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심박수, 수면 패턴, 활동량 같은 생체 지표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집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스마트워치나 스마트 링 같은 기기들은 이제 일상적인 건강 관리 도구가 되었고, 이를 만성질환 관리와 예방 의료에 활용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기술 기업과 의료 기관이 웨어러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헬스케어 모델을 시험하면서 건강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는 신체에 착용한 상태로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는 전자기기다. 심박수, 활동량, 수면 패턴 등 기본적인 생리 지표를 기록해 사용자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직접 확인하도록 돕는다. 스마트워치와 스마트 링이 대표적이며, 최근에는 심전도 분석이나 연속 혈당 측정이 가능한 피부 부착형 패치, 호흡과 자세 변화를 감지하는 스마트 의류까지 등장했다.
초기 웨어러블 기술은 운동과 피트니스 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센서 성능과 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활용 범위는 의료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만성질환 관리, 고령자 건강 모니터링, 응급 상황 감지 기술은 일부 의료 현장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웨어러블 기기 보유율은 약 25.9%로, 2019년보다 크게 증가했다. 다만 20대 보유율이 50%를 넘긴 반면 60대 이상은 한 자릿수에 머물러 세대 간 격차도 나타난다.
웨어러블이 주목받는 이유는 건강 정보를 ‘한 시점’이 아니라 ‘연속적인 흐름’으로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 검진이 특정 순간의 상태를 보여준다면, 웨어러블은 일상 속 변화를 누적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사용자가 이상 징후를 조기에 인식하고 의료 접근 시점을 앞당기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는 의료 판단의 주도권이 점차 의료기관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이기도 하다.
미국심장협회는 스마트워치의 심박 이상 알림 기능이 일부 사용자에게 병원 방문을 유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알림을 받은 사용자 가운데 일부는 심방세동과 같은 심장 질환을 조기에 진단받았다. 이는 웨어러블이 질병을 직접 진단하는 도구라기보다, 위험 신호를 인지하게 하는 보조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면 관리 분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해외 연구에서는 스마트 링을 통해 수면 중 심박수와 산소포화도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수면무호흡증 위험 신호를 포착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 UCSF 연구진은 상용 스마트 링이 수면 관련 생체 신호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기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기관의 진료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일부 병원은 웨어러블 데이터를 활용한 건강 관리 실증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정신건강 모니터링 플랫폼과 만성질환 관리 앱의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아직은 보조적 활용 단계지만, 이는 병원 진료와 개인 건강 데이터의 연결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로 보인다.
해외에서는 보험 산업과의 연계도 시도되고 있다. 미국의 일부 보험사는 웨어러블 활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험료 할인이나 리워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의료정보관리협회(IHRIM) 관련 분석에서는 웨어러블 활용군에서 의료비와 재입원율이 낮게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다. 다만 장기적 효과와 함께, 이러한 모델이 개인의 건강 정보를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웨어러블 기술이 제시하는 가능성만큼 한계도 분명하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문제는 데이터의 정확성과 신뢰도다. 심박수나 활동량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측정되지만, 혈압이나 산소포화도 같은 지표는 의료기기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부 기능은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다. 애플워치의 심전도 기능은 미국 FDA 승인을 받았고, 삼성 갤럭시워치의 혈압 측정 기능은 국내 식약처 인증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는 제한된 조건에서의 승인으로, 웨어러블 데이터를 진료나 보험 적용의 직접적 근거로 활용하기에는 제도적 공백이 남아 있다. 이 경계의 모호함은 웨어러블을 ‘의료기기’로 볼 것인지 ‘생활기기’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환경적 부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코넬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향후 건강 모니터링 웨어러블 수요가 급증할 경우 전자 폐기물과 탄소 배출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회로 기판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 비중이 높아, 모듈형 설계나 재사용 가능한 구조로의 전환 필요성도 함께 제기된다.
웨어러블 기술은 분명 건강 관리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병원 중심이던 관리 구조는 점차 일상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기술의 확산이 곧 의료 혁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도적 기반과 데이터 표준, 그리고 사용자가 데이터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조건이 함께 갖춰질 때 웨어러블은 단순한 기록 장치를 넘어 의료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사회가 그 기술을 어떤 기준과 책임 아래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위즈덤 TECH]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생각하고, 선택하며, 감정까지 흉내 내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기술의 편리함과 불안이 공존하는 지금, 인간의 자리는 어디에 있어야 할지 고민해 봅니다. 이 칼럼에서는 현재 과학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윤리적 딜레마와 사회적 논의는 무엇이 있을지 살펴봅니다. 나아가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도 연재를 통해 함께 배워나가겠습니다. 위즈덤 아고라 정한나 기자의 ‘위즈덤 TECH’와 함께 인공지능의 세상으로 떠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