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네이처] 형상기억합금, 미래를 기억하는 물질
[위즈덤 아고라 / 이채은 기자] 오늘날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온도에 따라 스스로 변형을 복구하는 형상기억합금은 스마트 소재로 불리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대표적인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이 합금은 외부 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변형된 상태에서도 원래의 형태를 ‘기억’하고, 다시 되돌아가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상 속 안경테에서부터 우주 산업에 이르기까지, 형상기억합금이 바꿔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알아보자.
형상기억합금이란?
1938년,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와 MIT의 교수들은 금속이 형상을 기억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냈다. 일반적으로 금속은 단단하며, 압력을 가하면 형태가 변형되더라도 물리적 변형 이전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온도에 이르면 원래 형태로 복구되는 성질을 지닌 금속이 존재하는데, 이를 형상기억합금이라 한다. 형상기억합금은 마치 만화 속의 로봇처럼, 원래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다가 온도의 변화에 따라 본래의 모양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이러한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형상기억합금은 ‘스마트 소재’로 불리며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합금(合金)은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 다른 금속을 녹여 합쳐서 얻는 물질로, 일상에서 사용되는 금속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합금은 결합에 사용된 금속의 성질을 모두 갖거나, 원래의 성질이 변하거나, 아예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기도 한다. 형상기억합금은 이와 같은 합금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이다.
최초의 형상기억합금은 1964년 미국 해군 무기연구소에서 개발되었다. 당시 연구진은 해군 잠수함이 사고를 당했을 때 즉각적으로 보수할 수 있도록록 니켈(Ni)과 티타늄(Ti)을 혼합하는 실험을 극비리에 진행 중이었다. 여러 비율로 실험을 거듭한 끝에, 니켈과 티타늄을 1:1로 배합하였을 때 구부려진 합금 샘플이 우연히 연구자의 담배 파이프에 닿아 열을 받으며 원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이 합금은 니켈, 티타늄, 해군 무기연구소의 앞 글자를 따 ‘니티놀(Nitinol)’이라고 명명되었으며, 이것이 최초의 형상기억합금이다.
형상기억합금의 가장 큰 특징은 온도에 따른 형태 복원 능력이다. 이 합금은 크게 두 가지 구조적 상태를 갖는다. 하나는 저온에서 유연하게 변형이 가능한 마르텐사이트 상태이며, 다른 하나는 고온에서 강한 모양을 유지하는 오스테나이트 상태이다. 형상기억합금은 온도 변화에 따라 이 두 가지 상태를 오가며 형상을 복원한다. 비교적 저온인 초기 상태에서는 마르텐사이트 구조로 유연하게 변형이 가능하다. 물리적 변형이 가해진 마르텐사이트 물질을 특정 온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오스테나이트 상태로 전환되면서 원래의 형태로 돌아간다. 이후 온도가 다시 낮아지면 마르텐사이트 상태로 되돌아가며, 이 과정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떠한 변형이 가해지더라도 열을 가하면 항상 원래의 형태로 돌아갈 수 있다.
터미네이터 속 형상기억합금
우리에게 ‘아 윌 비 백 (I’ll be back)’ 대사로 잘 알려진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도 형상기억합금을 찾아볼 수 있다. 터미네이터 2에 등장한 T-1000은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는 살인 병기로, 이 믿을 수 없는 특성은 관객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T-1000이 총에 맞아도 순식간에 복구되는 능력은 상상 속의 기술처럼 보인다. 이러한 자가 복구 능력은 형상기억합금의 원래 형태로 되돌아갈 수 있는 특성과 비슷해 보이는데, 형상기억합금의 본질적인 특성인 초탄성과 변형 후 복원성을 극대화한 과학적 상상력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영화 속 T-1000의 복구 능력과 변환 속도가 현재의 형상기억합금보다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 향후 T-1000만큼 자유롭게 형태 변형과 더욱 빠르고 쉬운 복구가 가능한한 금속이 개발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형상기억합금의 응용 분야
형상기억합금의 독특한 특성은 여러 산업 분야에 걸친 활용을 가능케 한다.
먼저, 의료 분야에서 혈관을 확장하는 스텐트나 정형외과용 고정 장치와 같은 의료 기기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스텐트는 환자 체온에 반응하여 혈관 내에서 부드럽게 펼쳐지고, 혈액 순환을 돕는다. 또한, 교정 장치에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하여 치아에 지속적으로 일정한 온도 또는 힘을 가하면 치아를 서서히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킬 수 있다. 이는 특히 어린 환자들에게 맞춤형으로 조절되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이고 편리한 진료를 가능케 한다.
항공 및 우주 분야에서도 형상기억합금은 필수적인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 우주선의 안테나는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로 여겨지는데, 구체적으로 안테나를 펼치는 장치나 항공기 날개의 플랩 조절 시스템에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한다. 이는 온도와 외부 환경 변화에 자동으로 반응할 수 있는 설계를 가능케 하며, 우주나 고고도 환경의 극단적인 온도 변화에도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추게 한다. 특히, 가벼운 무게와 온도에 따른 형태의 변화 특성이 요구되는 우주 분야에서는 형상기억합금의 특성이 더욱 유용하게 활동되고 있다.
또 다른 혁신적인 응용은 바로 자동차 산업이다.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하여 차량의 충격 흡수 시스템이나 자가 복구 범퍼와 같은 부품을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범퍼는 경미한 충돌 후 열을 가하면 원래 형태로 복원될 수 있어 편리하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에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하면 사고로 인한 외부 손상을 크게 줄여주기 때문에 더욱 안전하고 빠른 수리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자동차 시트나 거울 조절 장치 같은 부품에도 적용되어 운전자의 편의성을 높여준다.
형상기억합금은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는 하루 종일 착용하는 안경이 바로 그 예시 중 하나다. 형상기억합금이 사용된 안경테는 휘거나 눌려도 열을 가해 원래 모습으로 쉽게 복구할 수 있어, 매우 간편하고 고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또한, 커피포트의 온도 조절 장치나 전기장판 등의 주방 및 생활 가전에도 형상기억합금이 활용되어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돕는다.
형상기억합금의 한계
형상기억합금의 적용에 있어 대표적인 한계 중 하나는 반복해서 사용 시, 물체가 완전히 복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형상기억합금은 반복적인 변형과 복원 과정에서 피로도가 누적되면서, 원래의 형태로 완전하게 복원되는 성질이 점차 약해진다. 의료기기나 항공기 부품 등 지속적인 변형과 복원을 요구하는 분야에서는 이러한 피로도가 제품 수명을 제한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추가 연구와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나노 기술을 활용한 신소재 개발이나 복합 소재를 접목한 방식이 도입될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피로도 문제만 해결된다면 얼마든지 다시 복구하면 재사용이 얼마든지 가능한 혁신적인 소재가 될 것이다.
또한, 형상기억합금은 특정 온도 범위에서만 형상 복원이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다. 니켈-티타늄(NiTi) 합금인 니티놀(Nitinol)은 주로 60~80도의 온도에서 최적의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이 외의 온도 환경에서는 변화가 제한되어 기계의 미작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다양한 온도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합금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현재 연구원들은 합금의 온도 민감도를 조절하거나 전기 자극에도 반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합금을 개발하고자 연구 중이며, 형상기억합금의 응용 가능성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래의 유망한 물질, 형상기억합금
형상기억합금은 온도 변화에 반응하여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특성 덕분에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아직 많은 한계점이 남아있고, 영화에서처럼 즉각적 복원은 아직 어렵지만, 형상기억합금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진전되고 있다. 많은 연구원들이 인류를 위해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러한 발전이 계속된다면 형상기억합금은 의료, 항공, 로봇 공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미래 기술의 핵심 소재로 자리매김하며 우리의 일상에 함께하게 될 것이다.
[위즈덤 네이처] 현대 사회의 놀라운 발전 뒤에는 여러 소재와 화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부터 더 깨끗한 에너지를 위한 배터리까지! 이 모든 것은 작은 분자들이 이루어낸 과학적인 산물입니다. 최근에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작은 나노의 세계까지 도달한 나노 기술과 분자 설계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생활에 어떤 물질의 기술들이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해 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이채은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와 함께 일상을 구성하는 신소재 기술들과 응용의 깊은 세계를 탐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