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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네이처] 이상의 오감도, 과학으로 풀다

 <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이채은 기자]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시인 이상은 천재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문체와 기법을 구사했으며, 그의 작품 중 일부는 여전히 명확한 해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 오감도는 난해한 구조와 실험적인 형식으로 인해 지속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감도의 시제 4호는 0부터 9까지 숫자가 뒤집힌 상태로 연속적으로 배열된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팀이 물리학적 접근법을 적용해 오감도를 세상을 진단하는 도구로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연구에 따르면, 숫자 배열은 단순한 기하학적 나열이 아니라 물리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숨겨진 질서를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상의 작품 세계를 탐구해보자.

‘오감도’의 숫자적 배열과 물리학적 접근

<조선중앙일보 1934년 7월 28일자 신문>

이상의 오감도 중 시제 4호는 환자의용태에관한문제라는 제목과 함께 뒤집어진 숫자의 배열을 보여준다. 국문학자 권영민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이상이 자신의 병인 폐결핵에 관해서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폐는 1, 결핵에 걸려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폐는 0이라고 표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적용한다면 ‘26.10.1931’은 이상이 폐결핵을 진단받은 날짜로 추정된다.

또한, 이상 본인이 의사의 시선에서 환자를 진단하는 모습이라는 해석도 존재하지만 이에 대한 학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최근 광주과학기술원(GIST) 연구팀은 시제 4호의 숫자 배열을 스토크스 정리(Stokes’ theorem) 및 헬름홀츠 정리(Helmholtz theorem) 등의 전자기학적 개념을 적용해 분석했다. 연구팀은 지난 8월, 오감도 시제 4호를 전자기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논문 ‘오감도 시제4호에 구현된 내부 진단의 전자기학적 원리‘를 발표했다. 

스토크스 정리는 경계면의 정보만으로 내부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전자기학의 핵심 원리이다. 연구팀은 시제 4호의 숫자 배열을 원기둥 형태로 변환한 후, 좌우가 뒤집힌 숫자들을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재배열했다. 이 과정을 통해 연구자들은 숫자의 배열이 단순한 무작위성이 아니라, 공간적 곡률과 관련된 물리학적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숫자판을 가로나 세로로 읽었던 이전의 연구와 달리 연구팀은 원기둥이나 도넛 같은 토러스 구조로 바꾸어 읽어야 한다는 것 또한 밝혀냈다. 토러스 구조에서 나선형으로 수열을 읽어보면 좌우가 뒤바뀌고 단절돼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였던 수열이 정상적인 형태로 읽힌다.

벡터 미적분학에서 기본으로 쓰이는 헬름흘츠 정리도 연구팀의 해석에 사용되었는데, 이를 통해 이상은 환자의 병을 직접 치료하지는 않지만 환자의 병을 진단하는 것은 시이며 보이지 않는 임무를 투시하고 진단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헬름홀츠 정리는 벡터장의 발산과 회전, 그리고 경계 조건을 통해 내부의 상태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수리물리학적 원리이다. 연구팀은 시제 4호의 숫자 배열이 헬름홀츠 정리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이상의 시 속에서 숫자들은 뒤집힌 상태로 배열되며, 그 배치는 일정한 패턴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를 전자기학의 맥스웰 방정식과 연관 지어 해석한 결과, 전자기장 내에서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운동하는 것처럼 오감도 시제 4호의 숫자 배열도 특정한 물리적 법칙에 따라 배열된 것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오감도’와 상대성 이론

<pixabay 제공>

이상은 수학과 물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시 <삼차각설계도>를 보면 점을 찍어서 행렬을 구성한 형태를 띠며, 이는 양자역학에서 활용되는 중요한 물리학적 개념과 연결된다. 양자역학을 나타내는 방법은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이 있다. 시를 계속 읽어보면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의 속성은 변하지 않고 끝없이 배치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이는 물리학의 핵심 내용이다. 

오감도 역시 상대성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작품 전반에서 시간과 공간의 뒤틀림과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다른 현실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거나 공간이 수축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오감도 시제 15호에서는 “나는 거울 속에 있는 실내로 몰래 들어간다. 나를 거울에서 해방하려고.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침울한 얼굴로 동시에 꼭 들어온다. 거울 속의 나는 내게 미안한 뜻을 전한다. 내가 그 때문에 령어되어 있드키 그도 나 때문에 령어되어 떨고 있다.”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상대성이론에서 말하는 시간지연 (time dilation) 개념과 유사하다. 즉, 같은 사건이라도 관찰자의 위치나 속도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는 상대성 원리가 문학적으로 표현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시제 4호에서 숫자가 뒤집힌 상태로 배열되어 있는 것은 상대성이론에서 말하는 좌표 변환 개념과 유사하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 공간과 시간이 다르게 인식될 수 있음을 설명하는데, 오감도에서 숫자가 뒤집혀 보이는 방식은 이를 문학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성이론이 주장하는 동시성의 상대성 (relative simultaneity) 개념도 오감도의 시각적 구성을 통해 관찰될 수 있다.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같은 사건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개념처럼, 『오감도』의 숫자 배열은 독자에게 각기 다른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이상의 시는 이러한 상대성 원리를 문학적으로 재해석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삼차각설계도와 4차원

삼차각설계도는 1931년 조선과 건축 10호에 발표한 이상의 시이다. 2021년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삼가각설계도>와 <건축무한육면각체>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삼차각은 4차원의 공간상의 방향을 초구면좌표계로 나타낼 때 활용되는 3개의 각도를 의미한다. 육면각체는 각진 4차원 도형, 무한육면각체는 무수히 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4차원의 도형을 의미한다. 우리는 3차원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4차원은 3차원의 공간을 볼 수 있는 세계이다. 시간이 빠르게 흐리기도 하고, 느리게 흐르기도 하고, 공간이 휘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4차원의 공간을 볼 수는 없지만 4차원에서 3차원의 세계의 모든 방향을 볼 수 있다고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사각의중의사각의중의사각의중의사각의중의사각”이라는 시구는 공간의 차원을 순차적으로 확장시켜 최종적으로 4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사각형을 구현한다. 육면각체는 각진 4차원의 도형이고 무수히 많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의 이 시들에는 3차원 물체에 대해 물체의 시간 변화까지 따른 4차원의 공간에서 설계하고 건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학과 과학의 경계

이상은 문학에서 과학적 사고의 틀을 넘나들며, 그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시인이다. 그의 작품인 오감도에서 나타나는 숫자적 배열과 기하학적 구조는 단순한 문학적 실험을 넘어, 물리학과 수학적인 관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문학은 과학의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동시에 과학은 그 자체로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탐구하는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상의 시가 제시하는 ‘삼차각설계도’와 ‘4차원’이라는 개념들은 단순히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과학의 복잡한 이론과 맞닿아 있다.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현대 물리학의 개념들을 시적으로 풀어내며, 그는 문학과 과학을 양자역학처럼 얽히고 풀리는 실체로서 묘사하였다. 이로써, 문학과 과학은 서로 별개의 영역이 아닌, 현실을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공통된 목표를 지닌 두 가지 상호 보완적인 방식임을 입증한다.

결국, 문학과 과학의 경계는 우리가 설정한 한계에 불과하다. 이 두 영역은 서로를 넘어서는 상호작용을 통해 더 깊은 진리와 이해를 향해 나아간다. 문학과 과학을 결합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 넓고 풍부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문학과 과학을 결합하여 어려운 과학 개념을 더 쉽게 접근하고 문학을 이해하는 독특하고 혁신적인 새로운 관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위즈덤 네이처] 현대 사회의 놀라운 발전 뒤에는 여러 소재와 화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부터 더 깨끗한 에너지를 위한 배터리까지! 이 모든 것은 작은 분자들이 이루어낸 과학적인 산물입니다. 최근에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작은 나노의 세계까지 도달한 나노 기술과 분자 설계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생활에 어떤 물질의 기술들이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해 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이채은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와 함께 일상을 구성하는 신소재 기술들과 응용의 깊은 세계를 탐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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