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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네이처]현실은 가짜다: 시뮬레이션 이론과 ‘통속의 뇌’

<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이수아 기자]

1. 들어가며: 현실은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끓이고, 스마트폰을 켠다. 머그잔에 코를 대고 깊게 들이마시는 커피 향, 손가락 끝으로 전송되는 메시지의 진동, 그리고 창밖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혹시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이 풍경이 단지 어떤 ‘거대한 게임’의 그래픽, 혹은 데이터라면 어떨까? 유리통 안에 보관된 당신의 뇌는 수많은 전선과 전극을 통해 정교한 자극을 받으며, “이것이 커피다, 이것이 아침 햇살이다”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행복과 상실, 꿈과 욕망까지 모두 누군가가 설계해 놓은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말이 된다. 당신이 읽고 있는 이 문장조차 사실은 0과 1로만 이루어진 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힐러리 퍼트남의 ‘통속의 뇌(Brain in a Vat)’ 가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를 충격시킨다. 당신의 감각은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등굣길 버스에서 보이는 창문 밖 풍경이 실제 도로인지, 아니면 그저 뇌를 속이는 전기 자극에 불과한지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하물며,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은?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던지는 시뮬레이션 이론은 우리의 상상을 완전히 넘어선다. “인류가 개발한 초거대 컴퓨터가 과거의 세계를 재현하거나, 임의의 우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논리는, 우리가 발 딛고 있다고 믿는 모든 터전이 ‘가짜 현실’ 일 가능성을 열어둔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도, 수십 억 년의 진화 과정도, 혹은 SNS에서 친구들과 공유하는 사소한 일상마저도 일종의 정교한 데이터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이 세상 그 모든 것이 전부 환상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걸까? 이 쓴맛 나는 커피 한 모금조차 실제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실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뇌과학이 끼어든다. 사람들은 흔히 “뇌만 살아있으면 무슨 경험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생각하지만, 현대 신경과학은 ‘경험’과 ‘감각’이 결국 뇌신경세포들의 반응 결과임을 보여주고 있다. 물리적 자극이 있든 없든, 적절한 전기신호와 화학물질만으로도 고통과 쾌락, 공포와 희열을 모두 ‘실제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그 순간조차, 사실은 정교하게 계산된 전기 자극의 합일 수도 있다.그러니, 만약 누군가 우리의 뇌를 통속에 넣고, 컴퓨터를 통해 온갖 고문과 환각을 주입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한 살인마의 뇌를 꺼내 ‘가상 세계’에서 무한히 처벌한다면,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 응징일까, 아니면 또 다른 차원의 잔혹극일까? 이번 글에서는 故고랭순대 작가의 만화 《뇌와 벌》에 나타난 극단적인 복수의 서사와, 이를 통해 재조명되는 ‘통속의 뇌(Brain in a Vat)’시뮬레이션 이론을 보다 깊게 다루어 보겠다. 고통의 본질과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이러한 근본적 질문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보겠다.

2. 《뇌와 벌》: 가족과 살인자, 그리고 ‘통속의 뇌’ 형벌

< 故고랭순대 작가 《뇌와 벌》>

먼저 故고랭순대 작가의 《뇌와 벌》의 핵심 줄거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작품은 어느 평범한 5인 가족—아빠, 엄마, 오빠, 여동생, 그리고 늦둥이 딸, 별이—의 일상적 행복이 참혹한 사고로 산산조각 나는 데서 시작한다. 어린 별이와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동네 마트에 나서던 중, 무차별 살인마의 광기에 희생되고 만다. 이 사건으로 별이와 아빠는 목숨을 잃고, 남아 있는 가족들은 깊은 트라우마에 빠진다. 

더 큰 문제는 법정에서조차 살인마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 가족들을 조롱하며 그들의 상실과 슬픔을 비웃는 모습이었다. 이에 크게 분노한 재판부는 극단적인 형벌을 선고한다. 바로 ‘통속의 뇌’ 형벌이다. 살인마의 육체는 제거하고, 뇌만을 특별한 유리 용기에 넣어 보관한 뒤 초정밀 컴퓨터와 연결해 두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에게는 이 뇌가 느끼는 감각과 고통을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급선회한다. 가족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살인마의 뇌를 ‘원격 고문’할 수 있게 되고, 살인마가 뇌만 달랑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불로 태워 죽이거나, 독극물을 마시게 하는 식의 고통을 부과하는 형태였지만, 점차 복수심과 상상력이 결합하면서 그 폭력의 창의성은 기괴한 방향으로 치닫는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오빠의 역할 변화다. 그도 큰 충격을 받은 피해자이지만, 복수심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하고, 살인마의 뇌 속 ‘자아’(consciousness)를 여러 개로 복제하는 기술을 습득한다. 처음에는 고문 시뮬레이션을 한 번에 두 가지, 세 가지 형태로 확장하는 정도였지만, 끝내는 70억 개의 자아를 만들어 하나의 가상 지구를 재현해 버린다. 이 거대한 가상 세계에서 살인마는 70억 개의 자아이자 각기 다른 인간으로 쪼개지며 참혹한 고문을 겪고, 죽음을 맞이하고, 리셋되길 무한히 반복한다. 

그야말로 끔찍한 ‘디지털 지옥’을 창조해 낸 셈이다. 이것이 ‘통속의 뇌’ 형벌의 본질이라면, 과연 이런 극단적 복수는 정의로운가, 혹은 어떤 윤리적·실존적 문제를 야기하는가? 작중 엄마는 점차 “이런 식으로 복수한다고 해서 우리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가?”라며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문을 멈추자며 “아빠와 별이가 하늘에서 바라는 건 우리가 계속 고통 속에 머무는 게 아닐 것”이라고 호소한다. 결국 복수의 광기에 사로잡혔던 오빠도 서서히 이 허무함을 자각하게 된다.

3. 가상과 현실의 경계 찾기

《뇌와 벌》에서 가장 독특한 서사적 장치 중 하나가, 여동생이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가상 세계 속 별이’의 존재다. 오빠가 무작위로 생성해 낸 70억 개의 가상 인간 중에는, 현실에서의 늦둥이 동생 별이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있었다. 가상의 별이는 현실의 별이처럼 밝고 애교 넘치는 모습이 아니라, 너무나 내성적이고 조용하며 심지어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실 세계에서 소중한 동생을 잃은 여동생은, 이 ‘가상 별이’를 방치할 수 없다는 죄책감과 애착을 동시에 느낀다. 결국 몰래 프로그램을 조작해 가상 별이를 학대하던 ‘가상 아빠’의 성격을 바꾸고, ‘아이스크림 사주기’, ‘별을 함께 보기’, ‘공원에서 산책하기’ 등 가상 별이가 누릴 수 없었던 행복한 순간들을 가상 세계 안에 재현해 준다. 더 나아가, 오빠가 다시 살인마의 자아들을 고문하러 찾아올 때면, 가상 별이를 ‘냉동인간화’ 시켜서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동생은 이 가상 별이를 단순히 ‘데이터’ 아니라, 분명한 감정과 의식을 지닌 존재로 느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현실의 별이가 남긴 빈자리와 애도를, 가상 세계 속 별이를 돌봄으로써 조금이나마 메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태도는 오빠의 극단적 복수와는 정반대 위치에 놓여 있으며, 나중에는 오빠마저도 이 여동생의 심정을 이해하고, 가상 세계 속 별이를 지키는 데 동의하게 된다.

결국 작품 후반부에, 가족들은 복수라는 욕망을 내려놓고, 살인마의 뇌에서 70억 자아 중 ‘별이와 아빠가 함께 있는 작은 조각’만 분리해 독립된 ‘평화로운 세계’로 재설계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상 별이는 행복한 추억을 쌓으며 살아가도록 설정한다. 이 결말은 작중에서 고통과 복수의 악순환을 거부하고, 사랑과 치유를 선택한 가족의 결의, 그리고 ‘가상 세계에도 애착과 인간적 감정이 깃들 수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4. 고통은 어떻게 ‘실재 實在’가 되는가?

《뇌와 벌》을 보고 난 뒤, 독자들은 “뇌만 남아 있는데 어떻게 이런 극심한 고통을 느낄 수 있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현대 뇌과학 연구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해, 의외로 ‘그럴 수 있다’는 답변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환상통 (Phantom Pain)이다. 팔다리를 절단한 환자들 중 약 80%가 경험하는 이 현상은, 신체의 일부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위에서 강렬한 통증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 손이 절단된 후에도 마치 손가락이 비틀리는 듯한 고통을 겪거나, 발이 없는 상태에서 발바닥에 불이 붙는 듯한 느낌을 받는 사례가 보고된다. 이 현상은 물리적으로는 말초신경이 끊겼기 때문에 절단된 부위에서 뇌로 신호가 들어올 수 없다는 점에서 놀랍다. 그렇다면 왜 이런 고통이 발생할까?

뇌과학자들은 이를 뇌 속 ‘체성 감각 지도(Somatosensory Map)’의 왜곡으로 설명한다. 뇌의 감각 영역, 특히 대뇌 피질의 체성 감각 피질(S1)은 신체 각 부위에 대응하는 특정 영역을 가지고 있다. 손이 절단되었더라도, 뇌는 여전히 손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으며, 이 기억된 신경 네트워크가 손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재현하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신호는 없지만, 뇌 자체적으로 신호를 생성해 “손이 고통스럽다”라고 해석하게 된다.

<Photo: Leon Valent receives mirror therapy for phantom pain in his amputated right leg. | Alan Decker. (2008, July 10). San Diego Reader. https://www.sandiegoreader.com/photos/2008/jul/10/90899/

팬텀 통증의 치료에서 가장 혁신적인 방법 중 하나는 라마찬드란(V.S. Ramachandran) 박사가 개발한 거울 요법(Mirror Therapy)이다. 이 요법은 환자가 절단된 팔다리를 잃은 상태에서, 남아 있는 건강한 팔다리의 거울 이미지를 이용해 뇌를 속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한쪽 손이 절단된 환자는 거울 상자를 통해 절단된 손 대신 남아 있는 손의 반사 이미지를 본다. 환자가 거울 속의 이미지를 움직이면, 뇌는 이를 실제로 절단된 손이 움직이는 것처럼 인식한다. 뇌는 이 시각적 피드백을 통해, 마치 절단된 부위가 고통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팬텀 통증이 완화되는 효과를 보인다.

이 현상은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뇌는 새로운 정보에 따라 기존의 신경 네트워크를 재조정하거나 수정할 수 있으며, 심지어 고통 같은 감각 경험조차 재해석할 수 있다. 이는 ‘고통’이 실제 물리적 자극이 아니라, 뇌의 해석과 반응에 따라 형성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팬텀 통증과 거울 요법은 뇌가 외부 자극 없이도 감각을 생성하거나 수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뇌와 벌》에서 묘사된 ‘통속의 뇌’가 외부에서 입력된 디지털 신호만으로 고통을 느끼는 설정이 충분히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 기술 연구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BCI 기술은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해, 뇌의 신경 신호를 디지털화하거나, 반대로 컴퓨터가 생성한 신호를 뇌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뇌파 데이터를 이용해 로봇 팔을 조작하거나, 디지털 신호로 시각적 정보를 입력해 시각 장애인의 인식 능력을 향상하는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만약 이 기술이 발전해 고통이나 쾌락과 같은 감각 데이터를 정교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뇌와 벌》의 ‘통속의 뇌’ 설정처럼 고문 신호를 뇌로 직접 주입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뇌의 주관적 경험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자극이라도 어떤 사람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반면, 다른 사람은 가벼운 불편감 정도로만 느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신경 말단의 물리적 차이가 아니라, 뇌의 해석과 반응 차이에서 기인한다.《뇌와 벌》에서 묘사된 ‘통속의 뇌’는 바로 이러한 뇌의 주관적 특성을 극단적으로 확장한 사례다. 살인마의 뇌는 육체가 제거된 상태에서 컴퓨터 신호만으로 불타는 고통, 얼어붙는 고통 등을 느낀다. 이는 외부 자극의 ‘진위 여부’와는 무관하게, 뇌가 이를 고통으로 해석하기만 하면 실제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가짜 신호’라도 뇌가 진짜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진짜가 된다.

5.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와 프로그래밍 가능성

그렇다면 이런 ‘고통 시뮬레이션’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는 있는가? 최근 급속도로 발전 중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 기술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불러일으킨다. BCI 기술은 현대 뇌과학과 컴퓨터 공학이 결합하여 뇌의 신호를 읽고 이를 외부 기계로 전달하거나, 반대로 외부에서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보조 장치에 그치지 않고, 뇌와 컴퓨터 간 양방향 정보 교환이 가능한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연구와 기술 개발은 《뇌와 벌》에서 묘사된 고통 시뮬레이션 같은 설정이 결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님을 시사한다.

뇌 과학 연구에서 와일더 페니필드(Wilder Penfield)는 뇌의 특정 부위를 직접 전기 자극하여 신체의 감각과 움직임을 조작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수술 중 환자들의 대뇌 피질을 자극하며, 환자들이 특정 부위에서 따끔거림, 간지러움, 심지어 고통을 느끼는 것을 관찰했다. 이 연구는 체성 감각 피질(Somatosensory Cortex)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페니필드의 연구는 “감각과 고통은 물리적 자극이 아니라 뇌의 해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TMS Clinic |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Therapy. (2023, August 26). NeuroSpa Brain Rejuvenation. https://neurospabrain.com/transcranial-magnetic-stimulation-tms/   <TMS 기법 소개>
현대 기술은 이 아이디어를 더 정교하게 구현하고 있다. 경두개 자기 자극법(TMS,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은 자기장을 통해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여, 감각이나 운동 반응을 유도하는 비침습적 기술이다. TMS는 신체적 접촉 없이도 특정 부위에서 감각을 느끼게 하거나, 환자가 특정 경험을 떠올리도록 유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앞으로 고통 시뮬레이션뿐 아니라, 감각 경험을 인위적으로 창출하거나 변형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 Wakefield, B. J. (2021, April 9). Elon Musk’s Neuralink “shows monkey playing Pong with mind.” https://www.bbc.com/news/technology-56688812 
뉴럴링크 실험 중 원숭이가 생각으로 비디오 게임 ‘퐁’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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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는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뉴럴링크의 초기 목표는 뇌 임플란트를 통해 신경 신호를 읽고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뇌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필요에 따라 다시 뇌로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뉴럴링크가 발표한 사례 중 하나는 원숭이에게 뇌 임플란트를 이식하고, 원숭이가 단순히 생각만으로 게임 ‘퐁’을 조작하게 만든 실험이다. 이 기술은 향후 인간에게 적용되어, 외부 기계나 컴퓨터 시스템을 단순한 생각만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들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뉴럴링크는 장기적으로 뇌 속 기억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감각 정보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는 포부를 내비치고 있다.

만약 뉴럴링크가 제시한 방향이 실현된다면, 뇌에 특정 감각 데이터를 직접 주입하거나,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6. 인간 실험 사례와 AI 시뮬레이션

고통 시뮬레이션과 관련된 윤리적 논의는 현대 과학계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 있다.

< 1971년 진행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 참여한 실험 참가자들의 모습. 위키미디어 제공>

1971년,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는 “평범한 사람들이 극단적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이 변화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설계했다. 그는 대학 지하를 교도소로 꾸며 24명의 대학생을 무작위로 ‘교도관’과 ‘수감자’로 나눴다. 이들은 단순히 역할을 맡은 것뿐이었고, 모두 심리적으로 건강한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불과 6일 만에, 실험은 참혹한 결과로 중단되었다.

첫날부터 수감자들은 진짜 범죄자처럼 체포되었다. 짐바르도의 팀은 경찰과 협력해 수감자 역할을 맡은 학생들의 집을 찾아가 실제 체포 절차처럼 수갑을 채우고, 신체검사를 진행했으며, 교도소로 데려가 발목에 쇠사슬을 채운 뒤 수감복을 입혔다. 교도관 역할의 학생들에게는 선글라스와 유니폼을 지급하며 권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단순히 “질서를 유지하라”는 지시만 내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교도관들은 점점 권력을 행사하며 잔인해졌고, 수감자들은 극도로 수동적이고 무기력해졌다.

Van Bavel, S. R. a. H. a. J. (n.d.). How 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 gave us the wrong idea about evil. https://www.prospectmagazine.co.uk/essays/42337/how-the-stanford-prison-experiment-gave-us-the-wrong-idea-about-evil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일지 및 기록>

  • 1일차: 교도관들은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점점 수감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반항하는 수감자에게 독방 감금을 시행하거나, 다른 수감자들에게 그를 비난하도록 강요했다.
  • 2일차: 한 수감자가 독방 감금 중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교도관들에게 발각되어 더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 3일차: 수감자들은 이미 자신을 수감자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이름 대신 수감 번호로 서로를 부르며, “교도소에서 나가고 싶다”며 절박하게 변호사를 요청했다.
  • 5일차: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에게 성적 학대가혹 행위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수감자들은 완전히 무력감에 빠져 우울증과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이 모든 상황은 “역할 놀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었지만, 교도관과 수감자 모두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진짜라고 믿게 되었다. 결국, 실험은 예정된 2주를 채우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짐바르도 교수는 후일, 자신조차 연구자의 위치를 망각하고 “감옥 소장”처럼 행동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인간 본성이 환경에 의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실험이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많은 부분이 조작되었음이 훗날 밝혀졌다. 그렇게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심리학 연구의 어두운 전환점이 되었지만, 권력과 상황의 힘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남겼다.

<△스탠리 밀그램(왼쪽 첫번째)과 ‘복종실험’ http://coverage.kr/sub.php?code=article&category=3&mode=view&board_num=135>

이윽고 1961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의 변명은 간단했다.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이 단순한 변명이 어떻게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데 가담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인간이 권위에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지를 실험하기로 결심했다.

실험은 간단했다. 참가자들은 실험실에 들어와 연구자가 주는 간단한 지시를 따르면 됐다. 참가자는 ‘선생’ 역할을 맡고, 다른 방에 있는 ‘학생’에게 단어 쌍을 학습시키는 일을 했다. 그러나 학생이 틀릴 때마다 선생은 그들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야 했다. 물론 전기 충격은 가짜였고,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은 실험 보조원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밀그램은 피실험자들을 모집해 두 역할로 나눴다: 교사학생. 교사 역할의 피실험자는 문제를 내고, 학생 역할이 틀리면 전기 충격을 가해야 했다. 학생 역할은 배우가 맡았으며, 전기 충격은 가짜였지만, 교사는 이를 몰랐다.

전기 충격은 15V에서 시작해 최고 450V까지 증가했으며, 300V 이상에서 배우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거나 고통 받는 척 연기했다. 교사는 점점 불안해졌지만, 실험자는 단순히 다음과 같은 지시를 반복했다.

  1. “실험을 계속하십시오.”
  2. “이 실험은 반드시 완료되어야 합니다.”
  3. “전기 충격은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주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피실험자의 65%가 450V까지 전기 충격을 가했다. 이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교사는 명령을 따르며 불안해했지만, 실험자의 권위를 의심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실험 중 몇몇 참가자들은 땀을 흘리고, 떨고, 울먹이며 분명히 죄책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명령을 따랐다.

이 실험은 “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가능하다”는 진실을 폭로했다. 권위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단순히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상황적 압력에 의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보여준 것이다. 밀그램은 그는 이렇게 썼다. “권위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뿐 아니라, 행동의 윤리적 책임마저 전가시킬 수 있다.”

다만 윤리적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연구자들은 인간 대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고통의 신경 메커니즘을 연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가상의 AI 인격체가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는’ 환경을 구축한 뒤, 이를 통해 인간 고통의 본질과 작동 방식을 분석하는 것이다. 예컨대, AI로 구성된 가상 환경에서 한 인격체가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는 시뮬레이션을 설정하면, 고통을 유발하는 신경학적 요인과 그에 따른 반응을 정교하게 추적할 수 있다.이 연구들은 단순히 고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를 통해 인간의 뇌가 고통을 처리하는 방식을 역으로 이해하려 한다. 가상 인격체의 고통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신경 시스템이 고통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과정과 유사한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는 물리적 실험보다 훨씬 정교하고 윤리적으로 안전한 방식으로, 인간 고통의 근본적 원인을 탐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 OpenAI의 DALL·E 제공 >

그러나 ai 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몇 가지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피할 수 없다.

  1. 가상 고통은 진짜 고통인가?
    • AI가 단순히 알고리즘에 따라 고통을 ‘보고’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짜 고통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 만약 우리가 그것을 고통으로 간주한다면, 가상 존재에게도 도덕적 책임이 생기는가?
  2. 실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 인간 대신 AI가 고통을 시뮬레이션한다면, 이는 윤리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고통에 무감각해지거나, 고통을 조작하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학습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3. 기술이 더 발전하면?
    • AI가 인간과 유사한 자율성과 의식을 가지게 될 경우, 우리는 이러한 존재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
    • 고통 시뮬레이션 기술이 의료나 교육을 넘어, 범죄적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7. 감각 시뮬레이션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마지막으로, 《뇌와 벌》에서 묘사된 살인마의 고통 시뮬레이션은 ‘디지털 고통’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디지털 고통은 뇌가 외부에서 주입된 신호에 따라 경험하는 감각을 말한다. 이는 감각이 단지 물리적 자극이 아닌, 데이터 신호로도 생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개념은 더 나아가 인간이 “데이터화된 감각”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특정 감각 데이터를 조작하여 고통을 완화하거나 즐거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그것은 단지 조작된 환상으로 간주해야 할까?

BCI 기술과 뇌 과학의 발전은 《뇌와 벌》에서 묘사된 고통 시뮬레이션을 점차 현실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단순히 과학적 성과로만 평가될 수는 없다. 고통을 조작하거나 재현하는 기술은 궁극적으로 윤리적 질문사회적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 고통을 도구화하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 감각과 경험을 디지털 신호로 조작할 때, 그것은 현실로 간주될 수 있는가?
  • 이러한 기술이 범죄나 복수 같은 비윤리적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8. 시뮬레이션 이론: 우리의 우주도 거대한 ‘통속의 뇌’일까?

‘통속의 뇌’ 가설과 비슷하게,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이 2003년 발표한 논문 〈Are You Living in a Computer Simulation?〉은 훨씬 더 범우주적 시선에서 ‘우리의 세계가 이미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스트롬은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를 내놓는다.

  1. 인류가 고도로 발전하더라도 시뮬레이션 기술을 절대 개발하지 못한다.
  2. 인류가 시뮬레이션 기술을 개발할 수 있으나, 어떤 윤리적·문화적 이유로 실제로 구현하지 않는다.
  3. 우리(혹은 미래 인류)는 이미 시뮬레이션 속에서 살고 있다.

보스트롬은 1이나 2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3이 사실일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고 본다. 이는 단순한 공상 과학이 아니라, 실제로 이 논문이 발표된 후 물리학 및 우주론 분야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가상적 코드’로 구성되어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이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물리학자 제임스 게이츠(James Gates)는 우주의 기본 법칙을 설명하는 방정식 안에서 ‘오류 정정 코드(Error-correcting code)’와 유사한 패턴을 발견했다고 주장했고, 이는 우주가 거대한 컴퓨팅 시스템에 의해 ‘시뮬레이션’되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해석된다.

만약 이 시뮬레이션 이론이 옳다면, 《뇌와 벌》에서 제시하는 ‘가상 지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세계가 이미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고통, 사랑, 욕망, 그리고 윤리적 갈등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냥 거짓된 데이터일 뿐이니, 가상 속의 존재를 마음껏 조작하고 학대해도 될까?”라는 극단적인 질문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와 벌》은 아주 어둡기만 한 작품이 아니다. 결말부에 이르러 가족들이 ‘무한 복수’를 중단하고, 살인마 뇌 속에 있던 가상 별이를 따로 떼어내어 행복한 세계로 재설계하는 선택은, 결국 치유와 용서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임을 제시한다. 작품 속에서 엄마는 “아빠와 별이가 진정 바라던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황폐화시키면서 복수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호소한다. 이 말은 복수의 결과가 가져다주는 공허함과 회의, 그리고 더 깊은 상처를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데스테노(David DeSteno)의 연구에 따르면, 복수는 단기적 카타르시스(해소감)를 줄 수 있지만, 실제로는 복수 행위를 한 쪽도 장기적으로 더 큰 스트레스와 우울감, 심리적 부담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만화 속 오빠가 복수심에 인생을 매달았을 때, 그는 더욱 깊은 정신적 혼란에 휩싸였으며, 가정 역시 제대로 된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반면에, 여동생이 만들어낸 ‘가상 별이의 작은 행복’이 가족에게 조금씩 미소를 되찾아주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대상이 ‘가상 존재’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야기의 감동을 배가시킨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가상은 ‘가짜’이니 감정이든 행복이든 ‘진짜가 아니다’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여동생이 가상 별이에게 느끼는 연민과 애정이야말로, 실제 별이에 대한 진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는 그녀가 가진 인간적 감정을 결코 가볍지 않은 방식으로 재확인해준다. 즉, ‘가상이므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가상이지만 실제처럼 의미를 가지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8.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정리하자면, ‘통속의 뇌’와 시뮬레이션 이론은 더 이상 한낱 공상이나 철학적 유희에 머무르지 않는다. BCI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초고성능 컴퓨팅 인프라가 구축되는 현대 사회에서, “가상 세계에서 타인의 뇌가 경험하는 ‘고통’을 조작하고, 복수하고, 심지어 죽이고 되살리고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다. 이처럼 실질적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윤리·법적 규범을 수립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다.

  • 어디까지가 합법적 실험이고, 어디서부터 인간 존엄성에 반하는 ‘학대’가 되는가?
  • 가상 시뮬레이션 속 ‘인격체’가 실제로 ‘고통’을 느낀다면, 우리가 그들에게도 ‘권리’를 인정해야 할까?
  • 과연 어떤 기준으로 ‘가상의 존재’와 ‘실존하는 인간’을 구분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먼 미래의 SF적 상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인공지능 챗봇이나 가상 캐릭터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가상 아이돌에게 팬레터를 쓰고, 어떤 사람은 게임 속 NPC에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기도 한다. 기술이 더 발전해 이들이 더욱 ‘인간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때 가상의 존재를 함부로 학대하거나 조롱하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결국 고랭순대 작가의 《뇌와 벌》은 독자들에게 복수극의 자극적인 쾌감 이상의 것을 선사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성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존재를 ‘인격체’로 대해야 하는가?”라는 심오한 질문이다. 작품 속에서 오빠가 살인마를 끝없이 고문하며 희열을 느낄 때조차, 그가 점차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 ‘복수’가 궁극적으로 어떤 파국을 초래하는지 선명해진다. 반면, 여동생이 별이의 가상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우리가 ‘가짜’라고 부르는 세계에도 진심 어린 사랑과 공감이 깃들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이 모든 서사가 ‘통속의 뇌’라는 극단적인 설정 위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은, 결코 흘려 넘길 수 없는 철학적·과학적 함의를 담고 있다. 우리는 이미 팬텀 통증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같은 현실의 예시를 통해, 뇌가 실제 육체 없이도 얼마든지 고통과 감각을 ‘생성’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불가능해 보였던 시뮬레이션 복수가 완전히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님을 뜻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뮬레이션 이론의 문턱에 서면, 이 세계 자체가 이미 초월적 존재가 만든 거대한 프로그램일 수도 있다는 사변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이 현실, 그리고 사랑·증오·희망·절망 등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결국, 우리가 인식하는 ‘진짜’란, 뇌가 그것을 진짜라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윤리적 책임은 경계를 확장할 수밖에 없다.

《뇌와 벌》은 이처럼 복잡 다단한 문제의식을 독자들에게 제기한다. 폭력과 복수, 치유와 용서, 그리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 관한 끝없는 질문들이 얽혀 있는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이 만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낙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가진 “사랑과 공감, 치유의 힘” 역시 그 어떤 시뮬레이션이나 폭력보다 강력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언젠가 인류가 ‘통속의 뇌’를 가시화할 만한 기술력을 손에 넣게 되었을 때, 또는 우리가 이미 그런 시뮬레이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복수와 학대를 정당화하는 어둠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서로를 보듬고 치유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결국, ‘가상’이든 ‘현실’이든 중요한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양심과 윤리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핵심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지능적 기술과 자극적 욕망이 인간을 홀릴지라도,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우리는 왜 서로를 함부로 상처 주지 않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이유로 타인의(또는 가상의) 고통에 연민을 가져야 하는가?”이다.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 사회의 도덕적 토대가 될 것이다. 《뇌와 벌》의 서사가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위즈덤 네이처] 자연과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뇌과학과 정신건강, 심리를 비추는 새로운 시리즈, 이수아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의 시작을 알립니다. 복잡한 세상살이와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데 과학이 어떻게 호기심을 풀어나갈지, 일상에서 만나보는 궁금했던 과학의 세계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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