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네이처]영화 “패왕별희” 속 드러나는 애착유형과 성격
애착유형, 성격에 영향을 미칠까?
‘패왕별희’ 속 숙명적 사랑이 드러내는 인간 심리의 심연
[위즈덤 아고라 / 이수아 기자] 사랑은 인간이 깊이 간직한 강렬한 감정이다. 감정의 흐름은 우리 삶을 끌어당기는 강물과도 같다. 때로는 황홀한 폭포처럼 우리를 사로잡고, 때로는 조용한 개울처럼 안심을 안겨준다. 그러나 때론 파도와 같은 도전에 직면하게도 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은 다양한 변수와 감정에 직면한다.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이에 대처하고,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방어기제를 마련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영화 ‘패왕별희’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사랑과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탐구하며, 우리 자신에게 의미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두 소년, 두지와 시투의 이야기로 북경 경극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한 겨울날, 어린 두지는 엄마 손에 이끌려 경극학교에 처음 발을 딛게 된다. 그러나 두지의 작은 몸집은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런 두지를 호기심 가득한 시투가 지켜주며 친구로 받아들인다. 함께 자라면서 사형과 사제로서의 긴밀한 유대를 형성하고 그들의 우정은 ‘패왕별희’라는 중국 전통 경극의 주인공으로 이어진다.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연기하는 파트너로서 두지는 여주인공을, 시투는 남주인공을 맡게 된다. 오랜 연습과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며 둘은 10년 지기의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우정을 느끼지만, 두지는 시투에게 더 깊은 감정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우정은 훗날 시투가 주샨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의 특성과 기질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지는 관계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높은 민감도를 보인다. 한편, 주샨은 두지의 질투와 시기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워하며 위기감을 느낀다. 시투는 이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주샨과 두지 각각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그 역시 자신의 감정을 소홀히 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애착유형이란 무엇일까? 애착 유형은 어릴 때 주된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경험과 기억에 따라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패턴을 말한다. 유명 정신분석가 존 볼비(John Bowlby)와 유아 심리학자인 메리 앤즈워스(Mary Ainsworth)는 우리가 어린 시절 양육자와 형성하는 관계가 일생 동안 지속되는 애착 패턴의 토대가 된다고 주장했다.
앤즈워스와 그의 동료들은 12~18개월 영아를 대상으로 낯선 상황 (Strange situation) 실험을 통해 애착 유형을 조사했다. 실험은 총 8단계로 구성된다: 1. 어머니와 아기가 방에 함께 있는다. 2. 낯선 사람이 방에 들어온다. 3. 어머니가 방을 나간다. 4. 아기와 낯선 사람이 혼자 남는다. 5. 어머니가 돌아와 낯선 사람이 나간다. 6. 어머니와 아기가 혼자 남는다. 7. 낯선 사람이 다시 들어온다. 8. 낯선 사람이 아기를 위로한다.
낯선 상황 실험은 아기가 보이는 행동과 반응을 통해 애착 유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 안정형 (약 60%): 아기는 어머니와 있을 때 편안해하고, 어머니가 떠날 때 불안해하지만 돌아오면 위로를 받고 다시 편안해졌다.
- 불안-회피형 (약 20%): 아기는 어머니와의 상호작용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낯선 사람에게도 무관심하거나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 불안-저항형 (약 15%): 아기는 어머니가 떠날 때 매우 불안해하고, 돌아온 후에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거부하거나 화를 내는 행동을 보였다.
- 혼란형 (약 5%): 아기는 일관성 없는 행동을 보이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혼란과 불안감을 드러냈다.
현대 애착 이론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로서의 유대를 바탕으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이는 정서 조절, 생존에 대한 공포의 향상, 그리고 적응과 성장의 증진이다. 이러한 애착 행동과 정서는 인간을 비롯한 사회적인 영장류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며, 조절될 수 있다.
영장류는 진화하면서 개인 또는 집단의 생존을 위해 유리한 사회적 행동을 선택해 왔다. 예를 들어, 걸음마를 하는 영아들의 친숙한 사람들에게 머무르려는 행동은 초기 적응 환경에서 안전 이득을 가져왔다. 이러한 안전 이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정신분석가 존 볼비는 수렵채집인 사회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애착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접근 대상 탐색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애착의 초기 민감기는 생후 6개월에서 2~3년 사이로 정정되었으며,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생애 초기 관계 외에도 이후의 관계가 사회성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바로 아기가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도파민과 옥시토신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면서 뇌의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애착 형성에 기여한다. 반면, 양육자로부터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거나 학대를 경험한 경우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 분비가 증가하고 뇌의 해마, 편도체와 전두엽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편도체(amygdala)는 두려움과 불안과 같은 감정을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뇌 영역이다. 안정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편도체 활동이 비교적 적은 반면, 불안-몰입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편도체 활동이 과도하게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불안-몰입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위협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후각 피질(piriform cortex) 은 감각적 기억과 감정과 관련된 뇌 영역이다. 안정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양육자와의 긍정적인 감정적 경험과 관련된 후각 기억을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후각 기억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특히 부정적인 감정과 관련된 후각 기억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안정적인 양육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편도체와 해마가 건강하게 발달하여 감정을 잘 조절하고 긍정적인 기억을 형성하게 된다. 반면, 불안정하거나 학대적인 양육 환경에서는 편도체와 해마가 손상될 수 있으며, 이는 불안, 공포, 부정적인 기억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두지는 불안-회피형으로 분류된다. 타인과의 친밀감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타인에 대한 의존성을 피하고 독립성을 중요시 여기지만, 동시에 관계에서 인정받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두지의 경우, 어린 시절 부모의 냉대와 거부, 그리고 경극관 사부들의 학대로 애착유형이 형성된 것이다. 경극을 제외한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등 시투를 제외한 타인과의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가 가진 불안-회피형 애착의 공통적 특징으로는 타인과의 친밀감을 회피하고 정서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다. 이러한 특징은 편도체의 과활성화와 관련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편도체는 감정 처리와 스트레스 반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 부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타인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증폭된다. 이는 안전하지 않은 애착 관계에서 형성된 부정적 정서 기억이 편도체에 각인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전전두엽 피질의 기능 저하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서적 반응을 적절히 조절하기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불안-회피형 애착 유형의 사람들은 타인과의 친밀감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안정형 애착의 대표적 특징은 시투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안정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은 어릴 때 주된 양육자가 자신의 감정적 욕구에 반응하고 일관된 양육을 제공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타인을 신뢰하며,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또한, 갈등이 발생했을 때 건설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한다. 뇌 영상 연구에서는 안정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전측 전두엽 피질과 선상핵이라는 뇌 영역이 더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측 전두엽 피질은 감정 조절과 사회적 인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면, 선상핵은 보상과 동기 부여와 관련된 뇌 영역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안정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유지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불안-저항형 애착은 주요 양육자가 일관성 없는 양육 방식을 보일 때 형성된다. 보호자의 교육이 일관적이지 않고 혼합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주된 양육자가 자신의 감정적 욕구에 일관적으로 반응하지 않았거나, 지나치게 보호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불안정한 내면적 표상을 형성하게 된다. 불안-저항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편도체 활동이 과민해져 끊임없이 위협을 느끼고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불안정한 양육 환경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고,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까운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거부당하거나 버림받을까 봐 불안해하고,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밀어내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분노, 슬픔, 기쁨 등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거나 감정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으며 순간적인 충동에 따라 행동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버림받을까 봐 불안해하고,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확인하려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 또한, 질투심이 강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 경향이 있다. 뇌 영상 연구는 혼돈형 애착 유형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발병률이 증가할 위험이 높다고 밝혔다. 그리고 편도체와 후해마라는 뇌 영역이 더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불안-저항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경험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불안-저항형의 특징은 등장인물 주샨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 시투는 주샨과의 사랑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주샨은 시투와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불안감을 느끼고, 두지를 경쟁상대로 보며 자신의 불안정한 감정을 시투에게 투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성과 연민, 동지의식을 갖기도 하며 양면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혼돈형 애착 유형은 심각한 학대 또는 방치 경험을 겪은 아이들이 형성하는 애착 유형이다. 세상을 혼란스럽고 자신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불안과 공포를 동시에 경험한다. 연구는 혼돈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위협과 불안에 대한 반응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편도체가 과활성화 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의 기능이 저하돼 과거의 학대 경험을 기억하고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주요 특징으로 끊임없이 위협과 불안을 느끼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세상이 혼란스럽고 무조건적이라고 느낀다. 자아상 혼란 역시 동반되는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지닌 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 대인관계 형성에서도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 McEvoy et al. (2010)의 연구는 혼돈형 애착 유형을 가진 성인이 불안과 우울감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으며, 자살 시도를 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Dozier et al. (2011)의 연구에서는 혼돈형 애착 유형을 가진 성인이 관계에서 불안정성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으며, 연인으로부터 학대를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 역시 발견했다.
앞서 말한 불안정 애착의 행동양상은 인지 행동 치료로 인해 개선될 수 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인지하고, 건강한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와의 상담 및 인지 행동 치료는 불안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편도체 활동을 감소시키고, 해마와 전두엽 기능을 개선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무의식적인 갈등을 탐색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고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다. 자아상 혼란을 해소하고, 타인과의 관계 형성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다. 반복 경두 자극 등의 방법을 통해 뇌 활동을 조절하고, 불안정 애착 유형과 관련된 뇌 영역의 기능을 개선하는 치료 방법 또한 존재한다. 사람들에게서 불안 증상을 감소시키고, 감정 조절 능력을 향상하는 효과를 보여주는 일부 연구 결과가 있다.
끝으로, 사랑이란 때로는 무대 위의 연기처럼 아름답고, 때로는 현실 속에서의 고통과 같이 아프다. 영화는 중국의 격동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진정한 이야기는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있다. ‘패왕별희’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많다. 우리가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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