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네이처]스포츠 도핑, 약물 사용은 어디서부터 선을 넘는 걸까?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스테로이드부터 유전자 편집까지, 우리는 어디까지를 ‘반칙’이라고 부를까? 

[위즈덤 아고라 / 오민경 기자] 스포츠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대한 무대다. 올림픽과 같은 세계 대회가 열릴 때마다 우리는 누군가가 새로운 신기록을 세우고 ‘불가능’에 대한 도전을 이루는 순간을 목격하곤 한다. 이러한 놀라운 성과 뒤에는 엄청난 양의 훈련과 노력이 숨어져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약물 악용, 즉 ‘도핑’ 문제는 오랜 스포츠 역사동안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도핑은 단순한 ‘반칙’과 부정행위를 넘어, 약리학, 윤리, 생물학, 그리고 공정성의 개념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이다. 스테로이드부터 유전자 편집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어디까지를 ‘치팅’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세계 반도핑기구(WADA)는 성능을 향상하는 약물을 사용하여 선수의 신체적 능력을 인위적으로 강화하는 행위를 ‘도핑’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 범위는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워, ‘도핑’이라는 개념 자체가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선다. WADA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등 여러 국제 체육 기구는 이러한 약물 사용이 선수들 간의 경쟁에서 불공정함을 초래한다고 판단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도핑 문제가 처음 조명된 것은 1960년 로마 올림픽이었다. 대회 첫날, 덴마크의 사이클 선수 크누트 에네마르크 옌센이 경기 도중 사망했고, 이후 부검에서 흥분제 계열인 암페타민을 과다 복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약물 복용의 위험성이 점차 드러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 동계올림픽부터 공식적으로 도핑 검사를 도입했다. 

또한 금지 약물은 20년 사이 급격히 늘었다. 세계 반도핑기구에 따르면 스포츠 선수들이 복용하거나 사용하면 안 되는 금지 약물은 1999년 40여 종에서 2021년 7월 29일 기준 800종으로 급증했다. 이는 2018년 열린 평창올림픽 때보다 300종이나 늘어난 수치다. 약물의 종류가 늘면서 빠른 분석속도가 요구되고 있다. 현재는 시료의 분석 속도가 초당 이온 600개 정도로 한 번에 150~200종의 약물을 찾아낸다. 

도핑 약물의 종류

도핑 약물은 크게 여러 종류로 나뉘며, 각 약물은 신체 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하여 스포츠 성과를 극대화한다.

  1. 단백동화 스테로이드(Anabolic steroids)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는 주로 근육량을 증가시키고 신체 성장을 촉진시키는 데 사용되는 약물이다. 이 약물은 인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합성 형태로, 골수에서 적혈구 생성을 자극해 혈액 내 산소운반 능력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산소가 근육으로 공급되어 근육의 지구력과 회복력을 향상한다. 이러한 효과는 선수들이 더 오랜 시간 동안 높은 강도의 훈련이나 경기를 소화할 수 있게 하여 가장 많이 악용되는 대표적인 약물이다. 따라서 세계 반도핑 기구는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를 상시금지약물 S1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보디빌딩, 역도, 단거리 육상 등 근력과 폭발적인 성과가 중요한 스포츠에서 주로 악용되며, 실제로 벤 존슨의 1988년 서울 올림픽 100m 사건, 그리고 MLB(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여러 도핑 스캔들이 존재한다. 벤 존슨은 1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스테로이드계 약물인 스타노졸룰에 양성 반응을 보여 결국 메달이 박탈되었다. 그러나 같은 경기에서 약물을 복용한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수년 후, 결승에 진출했던 8명의 선수 중 무려 6명이 약물을 사용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 경기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더러운 경주’라고 기억되었다.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 복용은 주로 근육의 빠른 성장을 촉진시키는 동시에, 과도한 체중 증가나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심장 질환, 간 및 신장 기능 장애, 그리고 정신적 불안정성(공격성 증가 등)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도 모든 경우에 불법적인 것은 아니다. 심각한 근위축증(근손실) 환자, 호르몬 결핍 환자, 또는 HIV/AIDS로 인한 체중 감소를 겪는 환자들에게 치료 목적으로 의사의 감독하에 의료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단, 이 경우에도 반드시 의사의 철저한 감독과 처방하에 사용이되어야 하며, 스포츠에서는 예외없이 금지된다. 

  1. 에리스로포이에틴Erythropoietin, EPO) 

에리스로포이에틴(EPO)은 신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여 체내 산소 운반 능력을 높여주는 동시에 근육과 조직에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한다. 이는 장시간 경기나 극단적인 운동을 할 때 지구력과 회복력을 극대화시켜 주어, 주로 사이클링, 마라톤, 크로스컨트리 등 지구력 스포츠에서 악용된다. 랜스 암스트롱은 투르 드 프랑스 7회 우승 경력을 박탈당했고, 평생 사이클 경주에 출전할 수 없는 제재를 받았다. 랜스 암스트롱은 시합 전에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미리 뽑아둔 자신의 혈액을 재투입하거나 조혈제인 EPO를 주사하는 형식으로 도핑을 했다. 이 약은 혈액의 점도가 과도하게 높아지게 만들어 혈전 형성의 위험을 증가시키고, 심각한 심장 및 혈관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지나치게 많은 적혈구가 생성되면 뇌졸중이나 심장마비와 같은 심각한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EPO는 특정한 의학적 상황에서는 필수적인 치료제로 활용된다. 만성 신부전 환자나 화학요법 중인 암 환자, 중증 빈혈 환자에게는 부족한 적혈구 생성을 보완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처방된다. 물론 스포츠에서는 도핑으로 간주되며, 치료 목적 외 사용은 엄격히 금지된다.

  1. 흥분제(Stimulants) 

흥분제는 증추신경계를 자극하여 신체의 피로감을 줄이고, 각성 상태를 유지하여 반응속도를 향상하는 약물이다. 특히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를 촉진시켜 신경계를 자극하고, 집중력 및 에너지 레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흥분제 약물로는 암페타민, 에페드린, 메틸페니데이트(리탈린) 등이 있으며, 주로 단기 폭발력이 요구되는 스포츠인 스프린트와 격투기, 집중력과 반응속도가 중요한 e스포츠 등에서 악용된다. 그러나 이들 약물은 일시적인 경기력 향상 이상의 대가를 요구한다. 흥분제의 사용은 지나친 각성 상태로 인한 불안, 불면증, 그리고 심박수와 혈압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 장기적인 사용은 정신적 의존성을 유발하고, 따라서 중독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한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 역시 약물 복용으로 커리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 후 실시한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 한 흥분제의 일종인 에페드린 양성 반응을 보여 대회에서 퇴출당했다. 2020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그는 생전에 “축구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었다”면서도 “만약 내가 마약에 중독되지 않았다면 선수 생활을 훨씬 더 오래 했을 것이다. 과거이지만 아쉽다”라고 후회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설적인 선수조차 흥분제 사용으로 한순간에 영광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은 도핑의 유혹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분제는 의학적으로 정당한 이유로 처방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나 기면증 환자들에게 리탈린 같은 약물이 집중력 개선 및 졸림 방지를 위해 사용되는 경우이다. 물론 이는 의료진의 엄격한 판단과 관리 하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경기 중 사용 시에는 치료사용면책(TUE) 승인이 필수적이다.

  1. 베타 차단제(Beta Blockers) 

베타 차단제는 중추신경계의 베타 수용체를 차단하여 심박수를 낮추고 손 떨림을 줄이는 효과가 있어 긴장감이 높은 상황에서 안정된 신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긴장과 스트레스가 많은 사격, 양궁, 다트와 같은 정밀 스포츠에서 주로 악용된다. 대표적인 베타 차단제인 프로프라놀롤은 긴장감을 줄이고 손 떨림을 완화시켜 선수들이 보다 안정적인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베타 차단제는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억지로 억제하므로, 심박수 저하로 인한 혈압 문제나, 지나치게 긴장을 완화시켜 경기에서의 역동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다만, 베타 차단제는 본래 고혈압, 심부전, 부정맥, 협심증 등 심혈관계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로 널리 사용된다. 또한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환자에게도 일시적인 증상 완화를 위해 처방되기도 한다. 스포츠에서는 특정 종목에 한해 금지되며, 의료적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TUE(치료사용면책)를 통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이 외에도 이뇨제, 성장 호르몬 등 다양한 도핑 약물이 존재한다. 이뇨제는 주로 빠른 체중 감량이나, 약물의 흔적을 희석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 성장 호르몬은 근육 성장과 회복을 촉진시켜 신체능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된다. 

지속적인 생물학적 발현,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도핑

또한, 과학기술 발전과 함께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도핑도 주목을 받고 있다. 유전자 도핑은 DNA 자체를 조작하여 신체능력을 향상하는 방식으로 아직 초기 단계지만 미래의 도핑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전자 도핑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약물을 주입하는 방식이 아닌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해 특정 유전자를 체내에 삽입하거나, 기존 유전자의 발현을 인위적으로 조절한다는 점이다. 이 방식은 신체를 단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생물학적 발현을 초래할 수 있어, 그 효과 또한 훨씬 더 은밀하고 강력하다. 일반적인 도핑 약물은 일정시간 내 체내에서 분해되고 배출되는 반면, 유전자 도핑은 세포 수준에서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더 오랜 시간 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전자 도핑에 사용될 수 있는 유전자들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적혈구 생성을 조절하는 에리스포에이틴(EPO) 유전자이다. 이 유전자가 체내에 삽입되면 혈액 속 산소운반 능력이 향상되어 지구력 종목에서 상당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현재는 EPO를 주사로 투입하는 형태의 도핑이 논란이 되고 있으나, 유전자 도핑을 통해 EPO를 직접 체내에서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은 탐지하기가 훨씬 어렵다. 그러나 유전자 도핑을 통해 우리 몸의 약 10조 개에 달하는 모든 세포를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주사하면, 유전자가 교정되는 범위는 주사 부위 주변의 제한된 세포에만 그친다. 따라서 육상선수의 경우, 다리 근육처럼 특정 부위에만 도핑 효과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주요 유전자는 IGF-1(인슐린유사성 성장인자 1)이다. 이 유전자는 근육 성장과 회복을 촉진하며. 근육량 증가와 회복 시간 단축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해당 유전자의 과잉 발현은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어,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 외에도 미오스타틴 억제 유전자도 주목을 받고 있다. 미오스타틴은 근육 성장 억제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이 유전자의 작용을 차단하면 이론적으로 거의 무제한으로 근육을 증식시킬 수 있다. 이는 신체를 거의 ‘초인적인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으나, 동시에 관절 손상, 심혈관계 부담, 신체 불균형 등 치명적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러한 유전자 도핑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탐지가 어렵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도핑은 혈액이나 소변 검사를 통해 비교적 쉽게 검출이 가능하지만, 유전자 도핑은 유전자 자체가 체내 세포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처럼 위장되기 때문에, 외부 삽입 여부를 판단하기 극히 어렵다. 이를 위해 세계 반도핑기구는 차세대 유전자 시퀀싱 기술과 바이오마커 분석, 선수생체여권(Athlete Biological Passport) 기반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기술적으로 완전한 탐지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유전자 도핑은 일명 ‘스텔스 도핑(Stealth Doping)’이라고도 불리며, 스포츠 공정성에 대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간주된다.

윤리적 측면에서도 유전자 도핑은 스포츠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스포츠는 선수의 노력, 극복, 공정한 경쟁을 기반으로 한 문화인데, 유전자 도핑은 이러한 가치들을 무너뜨리고 인위적인 결과에 의존한 조작된 승부로 전략시킨다. 또한 부유한 국가나 개인이 첨단기술에 먼저 접근함으로써 보다 불공정한 경쟁 환경이 조성되며, 이는 스포츠의 평등성과 포용성을 위협한다. 

이러한 도핑 방식들은 각기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운동 성능을 향상할 수는 있으나 그 사용은 인체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스포츠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와 검사 기술의 발전이 요구된다. 

도핑 검사에서의 적발을 피하기 위한 전략

동시에 도핑 검사에서의 적발을 피하기 위한 전략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마이크로도징(Microdosing) 기법은 소량의 약물을 자주 복용하여 체내에서 남는 약물의 농도를 낮추고 검출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특히 소변이나 혈액 검사를 통해 검출 가능한 약물의 최소 검출 한계를 교묘히 회피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도핑 검사에서는 혈중 에리스로포이에틴(EPO) 농도가 특정 수치 이상일 경우 양성 반응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EPO를 극미량씩 수시로 주입하면, 이 수치는 임계점 이하로 유지되면서도 적혈구 수 증가 효과는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다. 마이크로도징은 체내 약물의 반감기와 대사 경로의 대한 정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동하며, 선수는 약물이 체외로 배출되기 전과 경기 일정, 도핑 검사 시기 등을 계산해 가며 복용 시점을 조율한다. 

이러한 기법은 기존의 도핑 탐지 기술로는 식별이 어려운 수준의 미량 약물을 투입하기 때문에, 검출을 위한 기술적 대응이 뒤쳐질 경우 무력화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사이클링과 같은 종목에서는 마이크로도징이 널리 퍼진 전략으로 악용되어 왔으며, 이는 선수들의 혈액 수치는 장기간 추적하는 생체여권(Athlete Biological Passport, ABP) 제도의 도입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마이크로도징에 대응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기존보다 5분의 1 수준의 적은 양으로도 약물을 탐지할 수 있는 ‘액체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LC-MS)’를 개발했다. 이 분석기는 기존 장비에 비해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이전까지 탐지가 어려웠던 약물 350~400종을 판별할 수 있으며, 분자 질량을 소수점 네 자리까지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정밀도를 자랑한다.

도핑기준, 치료적 사용 면책 제도의 한계점

도핑 논란의 핵심 중 하나는 단순한 ‘금지’ 약물 사용이 아니라, 어떤 약물이 ‘치료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용이 운동 성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의 대한 문제이다. 어떤 약물은 명백한 금지 약물로 간주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의학적으로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다. 문제는 이 정당한 사용이 실제로는 경기력을 향상하는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을 다루기 위해 세계 반도핑기구는 치료적 사용 면책 제도(Therapeutic Use Exemption, TUE)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선수가 금지 약물이 필요하다는 의학적 증거를 제시할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사용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치료 목적사용면책 제도의 승인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사용하지 않으면 선수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가? 
  2. 질병회복 외에 경기력 향상이 없는가? 
  3. 합리적인 대체약물이 없는가? 

하지만 이 제도가 실제로 공정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6년 한 러시아 해커 집단 ‘Fancy Bears’가 세계 반도핑기구(WADA)를 해킹하면서 폭로한 TUE 관련 문건들이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유명 선수들의 TUE 신청기록과 의학정보가 유출되었고, 이 정보가 국제 사회에 공개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유출된 문건들에 따르면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와 그녀의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 체조 금메달리스트 시몬 바일스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여러 차례 금지 약물에 대한 TUE를 승인받았던 사실이 드러났다.

세레나 윌리엄스의 경우,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여러 차례 TUE 승인을 통해 코르티코스테로이드 계열의 금지 약물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는 면역 반응 억제하고 염증을 줄이는 데 사용되는 프레드니손(Prednisone) 스테로이드를 부상 치료용으로 허가받아 복용해 왔다. 그러나 이 약물은 일반적으로 근육 회복을 촉진시키고 통증을 줄이며, 간접적으로 경기력 유지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세레나가 실제로 병을 앓고 있었는지, 아니면 운동능력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사이먼 바일스의 경우, ADHD 치료 약물인 메틸페니데이트(리탈린)에 대해 여러 해 동안 TUE를 받아왔는데, 이 약물은 경기 중 집중력 향상 효과도 있기 때문에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들이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고 정식 절차를 거쳐 허가를 받았지만,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왜 특정 선수들만 반복적으로 예외를 받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비슷한 시기, 영국 사이클링 대표팀 소속이었던 브래들리 위긴스(Bradley Wiggins)도 논란에 중심에 섰다. 그는 2011년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 참여하기 직전, 치료적 사용 면책을 통해 트리아믹시놀론 아세토니드(Triamcinolone Acetonide), 일종의 강력한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위긴스 측은 알레르기성 비염과 천식 치료 목적이었다고 주장했지만, 트라이믹시놀론은 일반적으로 빠른 체지방 감소, 체중 조절과 회복력 강화에 효과적인 약물로 분류된다. TUE 승인 시점이 경기 직전이었다는 점에서, 위긴스가 해당 약물을 ‘의료 목적’으로 복용했는지, 아니면 경기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했는지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이 논란은 2018년 영국 의회 보건위원회 보고서에서 ‘TUE 제도를 이용한 경계선상 도핑의 대표 사례’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세계 반도핑기구의 TUE 정책은 약물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윤리적인 안정자치로 설계되었지만, 실제로는 ‘합법적 도핑(Legalized Doping)’이라는 회색지대를 만들어냈다는 비판도 있다. 

도핑은 불리한 유전적 조건을 보완하는 ‘형평성 도구’? 

또한 도핑이 ‘부정행위’로 간주되어야 되는지 조차도 윤리적인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모든 스포츠가 본질적으로 공정한 경쟁을 전제로 하지만, 현실에서는 선천적인 유전자 차이, 경제적 지원, 훈련 환경 등 수많은 요소가 선수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 2013년에 세상을 떠난 핀란드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에로 멘튀란타는 독특한 유전적 특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적혈구 생성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어, 일반인보다 혈중 산소를 약 1.5배 더 많이 저장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탁월한 지구력을 발휘하며 1960년과 1964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포함해 총 7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멘튀란타처럼 특별한 유전적 돌연변이는 없더라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 중에는 이른바 ‘유전자 금수저’들이 존재한다. 1998년, 런던대학교의 휴 몽고메리 교수 연구팀은 ‘앤지오텐신 전환 효소(ACE)’ 유전자가 인간의 지구력과 순발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ACE 유전자는 크게 II형, ID형, DD형으로 구분되며, 장거리 육상 선수들은 대체로 지구력이 뛰어난 II형이나 ID형 유전자를 갖고 있는 반면, 단거리 선수들은 빠른 폭발력을 지닌 DD형 유전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PO 도핑으로 논란이 된 사이클리스트 랜스 암스트롱은, “나는 내게 주어진 유전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같은 시대의 경쟁자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싸우기 위한 선택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일부 선수들은 도핑을 단순한 반칙이 아닌, 유전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보완하기 위한 ‘형평성 도구’로 바라본다. 

도핑의 미래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단순한 규칙 위반이 아닌, 공정성의 정의의 가치의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도핑 논쟁은 어디까지를 정당한 경쟁으로 볼 것인지, 누가 그 기준을 정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유전자 편집 기반 도핑부터, 현재는 실험 단계에 있지만 향후에는 실제 스포츠에서도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뉴로도핑(Neurodoping) 기술은 e스포츠와 같은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뇌 기능을 강화하여 반응 속도와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연구 중에 있다. 약물 검출을 피하려는 기술과 검출 기술의 진화가 맞물려, 도핑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시대에서 ‘깨끗한 경기’의 기준은 과연 어디에 그어야 할까? 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약리학, 생명윤리학, 철학 등에서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위즈덤 네이처]약리학이란 생체 내에서 약물이 작용하는 방식이나 그 효과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다양한 약물을 개발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개인 맞춤형 약과 신약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약리학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약리학은 생명과학과 화학이 결합된 흥미로운 분야로 인류의 건강과 직결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오민경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를 통해 약리학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탐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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