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네이처]뇌의 시상하부 자극으로 마비 환자의 보행 회복 실현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하지후 기자]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교통사고 낙상 스포츠 부상 등으로 인한 척수 손상으로 인해 일상적인 보행조차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척수 손상은 뇌에서 내려오는 운동 명령이 신체로 전달되지 못하게 하여 마비를 초래하고 이는 단순히 신체 기능 상실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자존감 사회성 심리적 안정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물리치료나 약물요법 보조기기 사용 등 기존의 재활 방식은 일정 수준의 기능 보존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완전한 회복을 이루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는 전통적으로 식욕 체온 수면 감정 등 다양한 생리적 기능을 통제하는 핵심 부위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그 기능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스위스 로잔대학교병원(CHUV)과 스위스연방공대(EPFL)의 신경과학자들이 주도한 연구에 따르면 시상하부 중 외측 시상하부(lateral hypothalamus LH)의 글루타메이트성 뉴런(LHVglut2)이 척수 손상 이후에도 보행 기능 회복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뇌와 척수 간 신호 전달이 완전히 끊긴 것이 아니라 특정 회로가 여전히 잔존하며 자극을 통해 활성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이론은 동물 실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됐다. 연구진은 광유전학(optogenetics)이라는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생쥐의 외측 시상하부의 특정 뉴런을 선택적으로 자극했다. 빛을 이용하여 뉴런의 흥분을 조절하는 이 기술을 통해 연구진은 뉴런의 자극 강도에 따라 생쥐의 보행 속도와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일부 생쥐들이 단순히 걷는 것을 넘어 점프까지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이 뉴런의 활동을 억제하자 즉각적으로 보행 기능이 저하되었고 이는 해당 뉴런이 실제로 운동 기능 회복의 핵심 조절자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심부 뇌 자극(Deep Brain Stimulation, DBS) 기술을 활용하여 사람에게도 해당 뉴런을 자극해 보행 기능 회복을 시도했다. 만성적인 척수 손상을 앓고 있는 두 명의 환자에게 DBS 전극을 외측 시상하부에 삽입한 후 자극을 가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환자들은 즉각적으로 하체 감각이 돌아왔다고 보고했고 심지어 ‘걷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중 한 명은 수 주 내에 자극 없이도 스스로 걷기 시작했으며 이는 신경 자극이 단기적 효과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회복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와 동시에 EPFL의 Grégoire Courtine 교수와 Jocelyne Bloch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또 다른 혁신적 치료법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8년 척수에 무선 임플란트를 삽입받은 David Mzee가 다시 걷게 된 사건이 있다. 또 2023년에는 파킨슨병을 앓던 62세의 환자 Marc가 신경 임플란트를 통해 ‘동결’ 상태 없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된 영상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기술의 핵심은 유연한 전극을 환자의 척수에 직접 삽입하여 손상 부위를 우회해 뇌의 신호를 사지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자신의 생각만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인간의 신경계 복원 기술이 기존의 의학적 상식을 뛰어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신경 자극 기술은 단순한 전기 자극을 넘어서 인간 고유의 보행 신호를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데까지 발전하고 있다. Courtine 교수는 2003년 박사과정 시절부터 보행을 가능하게 하는 뇌-척수 신호의 패턴을 연구해 왔으며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과 AI 분석이 현재의 맞춤형 자극 기술로 이어졌다. EPFL의 또 다른 교수 Stéphanie Lacour는 고도로 유연한 전극을 개발하여 척수 표면인 경막(dura mater)에 직접 부착 가능한 임플란트를 설계하였고 Bloch 박사는 이를 환자의 뇌와 척수에 정밀하게 삽입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이는 신경 과학 공학 의학의 융합이 만들어낸 놀라운 성과다.

NeuroRestore 센터에서 진행되는 이 연구는 단순히 임플란트를 통한 신호 전달에만 머물지 않다. Courtine과 Bloch는 손상된 척수의 신경섬유를 재생시키기 위한 유전자 치료와 재활 훈련을 병행하는 ‘이중 전략’을 제안한다. 동물 실험에서는 이미 마우스의 척수에서 신경섬유 재생이 확인되었고 이러한 생물학적 재생 전략이 향후 인간에게도 적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Courtine은 “미래에는 생물학적 재생과 신경 보철 기술을 동시에 활용하여 척수 손상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금까지 연구들은 ‘회복 불가능’이라는 신경과학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시상하부 자극 연구는 기존의 재활 치료를 넘어 뇌 척수 사지 간의 단절된 연결을 다시 이어주는 길을 열고 있으며, Courtine과 팀이 개발한 신경 임플란트 기술은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치료 지평을 제시하고 있다. 아직은 일부 임상 시험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크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공상 과학처럼 느껴졌던 신경 회복의 기술은 이제 실제로 마비된 환자들에게 ‘다시 걷는 삶’을 선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의학적 발전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끈질긴 도전이 이룬 과학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위즈덤 네이처] 현대의학과 생명과학은 더 이상 별개의 분야가 아닙니다. 세포 하나, 유전자 하나에 숨겨진 작은 변화가 질병을 유발하고 그 변화의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이 치료의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인공심장의 원리부터 의료분야에 적용되는 나노로봇까지 복잡한 과학을 쉽게 풀어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하지후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로 과학의 언어로 생명과 우리 몸을 이해하는 기사를 만나보세요. 

Leave a Reply

Back To Top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