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글로벌]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으로 분석한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갈등
[위즈덤 아고라 / 전시현 기자]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넘어가면서 세계화는 종식의 위기를 맞고 있다. 미중국 패권전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고 있고, 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국가들은 그동안 인류가 신념과 정의를 기반으로 만든 시스템을 외면하고, 다소 야만적일 수 있는 각자도생의 길로 가려고 한다. 이미 곳곳에서는 2차 대전 중의 전체주의나 국가지상주의를 보는 듯한 목소리들이 들리고 있다. 마치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에서 질서가 무너질 때 야만적인 행동을 했던 아이들처럼 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파리대왕’에서 순수하고 어렸던 아이들은 질서가 없는 무인도에서 떨어지자 차츰 인간성을 상실하면서 야만인이 되어갔다. 이 소설은 현재 우리 사회의 질서와 인간의 본능과 본성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소설은 한 외딴섬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흔적이나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무인도에서 랄프는 민주적인 투표로 리더가 되고 소년들의 역할을 나누어 구조될 수 있도록 협력을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년들을 보고 구조할 수 있도록 불을 지피는 역할을 맡았던 잭은 이 임무를 버리고 자신을 따르던 몇 명의 소년들과 마음대로 멧돼지를 사냥하러 간다. 모두가 동의했던 규칙을 어긴 잭을 향해 랄프는 화를 내고, 잭은 사과를 하지만 싸움이 일어나 결국 잭은 자신을 따르는 소년들과 따로 집단을 형성해 소년들은 분리되고 만다.
어느 날, 소년들은 어느 조종사의 시체를 보고 괴물로 착각하게 된다. 괴물이 공격할 것이라는 공포감으로 휩싸인 잭의 집단은 얼굴에 칠을 하고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사냥을 한다. 그러던 중 사이먼은 모두가 두려워하던 괴물이 실은 조종사의 시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소년들에게 알리려 했지만, 겁에 질려버린 잭의 집단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이먼을 괴물로 착각하고 춤을 추며 그를 밟아 죽여버린다. 또한 랄프를 따르던 피기도 잭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점점 더 야만적인 행동을 하게 된 잭의 집단은 결국 랄프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를 쫓으며 온 섬을 헤맨다. 랄프가 숨자, 그들은 급기야 섬에 불을 질렀고, 랄프를 잡으려는 순간, 큰 불로 인해 소년들이 발견되고, 소년들이 구조되면서 랄프가 피기에 대한 애도를 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단순한 아이들의 폭동을 그린 것 같은 이 소설 안에는 사실 많은 의미들이 숨겨져 있다. 랄프는 민주적인 질서와 체제를 뜻하고, 잭은 인간의 야만성과 본능을 뜻한다. 잭과 랄프의 갈등은 질서가 없는 곳에서 나오는 인간의 본능과 이에 맞서는 민주적 체제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질서가 없는 무인도에서 민주주의는 곧 패배하고 만다. 아이들의 힘과 욕망을 향한 싸움을 통해 골딩은 인간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본질을 보여준다. 민주주의가 흔들리거나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승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민주주의 체제는 쉽게 무너졌을까? 또한, 민주주의를 표시하는 랄프는 좋은 지도자였을까?
잭은 야망이 있었고, 매우 살육적인 행동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했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본능을 호소하고, 자기를 합리화시키며, 자신을 어기면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힘을 과시하며 아이들을 조종했다. 반면, 랄프는 합리적인 체제를 통해 협력하고 원칙을 지키려고 했지만, 정작 그도 소년들을 똑같이 대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피기를 뚱땡이라고 놀리는 별명 ‘피기’로 불렀고, 잭이 피기에게 음식을 주려고 하지 않을 때 그를 말리기는커녕 자신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또한, 잭이 질서를 파괴했을 때,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즉,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그도 완벽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아이들이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 형성한 두 집단은 서로 다른 지향점과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경쟁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화의 종식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랄프는 꼭 미국의 모습을 보는 듯하고, 잭은 러시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잭은 폭력을 쓰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했다. 모두가 정해놓은 규칙을 어겼지만, 모두를 위해 사냥을 했다는 핑계로 행동을 합리화하려 했다. 이는 러시아가 자신이 저지른 전쟁을 합리화하는 과정과 닮아있다. 푸틴도 우크라이나 내에 있는 러시아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군사작전이라며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랄프도 잭의 불만들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서구 세계가 저지른 착오들이 있었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생긴 NATO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미국과 NATO는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NATO는 이후에도 계속 동진을 했다. 푸틴은 이를 지적하는 발언을 했지만, 이미 서방 세계와 민주주의가 승리한 줄 알았던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급기야 2019년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NATO을 선언하자, 결국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리더로서 러시아를 협상 파트너로 생각하며 그의 말을 경청하고 협의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만약 랄프가 리더로서 잭의 집단의 말을 귀 기울여 의견을 존중하며 해결책을 제시했다면, 랄프의 이상적인 세계 질서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랄프와 미국 둘 다 많은 희생과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물론 공포심을 조성하고 폭력을 써서 권력을 빼앗은 잭과 러시아도 잘못이 크다. 러시아는 전쟁을 시작해 세계 평화에 금을 냈고, 잭도 질서를 깨트리면서 아이들을 야만인으로 만들었다. 소설에서 아이들이 결국 서로를 사냥하게 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세계화는 종식을 맞이하고 있다. 무역을 하고 도움을 주면서 하나였던 국가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협력을 그만두었다.
<파리대왕>은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면서 질서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랄프, 즉 미국이 세운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세계 질서는 모두가 노력을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어야 지속이 가능하다. 즉, 현재 만들어진 민주주의 질서는 우리 모두의 결과물이지 미국만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국의 이익만을 내세우게 된다면, 잭, 즉 러시아와 같이 반항하는 이들이 생기면서 하나였던 공동체가 나뉘고, 결국 인간의 악한 본성이 나와 혼돈과 무질서한 사회가 생길 수밖에 없다. 1900년대에 쓰인 <파리대왕>은 현재 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을 주면서 앞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청과 협동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위즈덤 글로벌] 국제관계에서 벌어지는 중요 이슈 및 글로벌 리더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칼럼을 연재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전시현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로 세상의 소식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