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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글로벌] 미국 인권 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리더십

 < OpenAI의 DALL·E 제공 >

[ 위즈덤 아고라 / 함예은 기자]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세계 곳곳에서는 유색 인종을 향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지만, 전에 비하면 나아졌다는 평이 많다. 세계 곳곳에서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화장실이나 병원 같은 공공시설조차 함께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종차별의 시대를 살아가던 수많은 용기 있는 사람들의 희생 덕분에 유색인종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중동에서 벌어진 테러사건으로 이슬라모포비아 현상이 만연해지며 지구촌 곳곳에서는 특정 국가 및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많아지면서 각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1960년대 미국 인권 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리더십은 지금의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차별의 시대에 태어났다. 1929년, 미국에서도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이 특히 심했던 남부의 조지아 주에서 태어난 마틴 루터 킹은 일상 속 수많은 인종차별을 어릴 적부터 겪어왔다. 미국의 흑인 노예 제도는 1863년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일상 속에서의 인종적 차별은 계속 존재했다. 예를 들어, 버스의 경우 흑인과 백인의 자리는 분리되어 있었는데 만약 버스에 자리가 없는 경우 흑인은 자신의 자리를 당연히 양보해야 했다. 화장실 같은 필수적인 시설마저 분리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백인과 흑인은 화장실마저 분리되었기 때문에 흑인들에게는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던 그는 여러 가지 인종 차별을 경험했는데, 한 번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하자 백인 주인이 그를 쫓아낸 적이 있었다. 주인은 흑인들에게 장사를 하지 않는다며 정 사고 싶다면 뒷문으로 기어 들어오라는 말을 하며 그의 주문을 거부했다. 오직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스크림조차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없었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시내에 갔다가 구두 가게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백인 경찰이 아버지를 모욕하는 것도 보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이러한 인종 차별을 경험할 때마다 당당하게 백인에 맞서야 한다며 굳건하고 용기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킹은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고, 내 투쟁에 있어 그를 모범으로 삼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점점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가지던 킹은 1955년 있었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건’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앞서 말했듯, 당시 미국은 끔찍한 인종차별이 존재했던 시대를 살았다. 이 때문에 흑인들은 버스를 이용할 때, 당연시하게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등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 이 보이콧 사건의 중심인 로자 파크스는 일을 끝내고 버스에 탑승했으나 백인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운전기사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파크스는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파크스가 체포된 다음 날, 이러한 차별에 맞서기 위해 MIA (Montogomery Improvement Association) 즉 몽고메리 발전 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결의안을 제시했다. 그들이 제시한 건 “피부색과 관련 없이 모든 승객들은 선착순으로 자리에 앉아야 한다.” 등 공평히 버스를 사용할 권리를 주장하는 결의안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조건이 해결되기 전까지 버스를 타지 말자는 공문을 내렸다. 이 회의 당시에 새로 뽑힌 주최자가 바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다.

이 이후에도 마틴 루터 킹은 다양한 흑인 인권 운동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이러한 운동을 이끌 때 여러 가지 리더십 전략을 사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청중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청중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그들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습관을 길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며 직접 행동에 나설 수 있게 설득하는 등 많은 이들을 인권 운동에 참여시켰다. 

그의 또 다른 리더십 전략은 바로 일관성이다. 킹 목사는 “날지 못한다면 뛰고, 달릴 수 없으면 걷고, 걸을 수 없어 기어다니 더라도 무엇을 하든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변화는 필연적인 수레바퀴를 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서 온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일관성으로 인해 결론적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을 오늘날 매우 존경받는 리더가 되게 만든 대표적인 사건은 바로 그의 평화 대행진 연설에 있다. 1963년 8월 28일 노예 해방 100주년을 기념하며 워싱턴에서 열린 평화 대행진에서, 그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라는 제목으로 했던 연설의 일부로 글을 마무리하며 그의 리더십을 다시 한번 조명하겠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식들이 이 나라에 살면서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받게 되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빛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Darkness cannot drive out darkness only light can do that. Hate cannot drive out hate only love can do that.) 

지금 우리는 마틴 루터 킹은 열정적으로 싸우던 그 시대에 비해 많은 인식이 나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를 향한 혐오는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마틴 루터 킹의 리더십을 본받아 혐오 없는 세상을 꿈꿔보는 것은 어떤가? 

[위즈덤 글로벌]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데 힘을 기여하는 건 세계 곳곳의 훌룡한 리더들입니다. 이와 같은 리더들의 리더십을 다양한 측면으로 탐구하고, 역사적 사례를 통해 교훈을 도출하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함예은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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