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함예은 기자] 미국의 방송사 CNN에 따르면 한글이 7번째로 많이 학습된 언어라고 한다. 기본자음 14자와 기본모음 10자로 구성된 총 24자의 음소문자로 이루어진 한글은 전 세계의 문자들을 통틀어 이집트 상형문자와 한자 그 어느 쪽에도 기반을 두지 않고 완전히 독자적으로 창제된 몇 안 되는 문자로 알려져 있다. 이 놀라운 문자는 단순한 문자의 창조를 넘어, 백성을 향한 깊은 사랑과 혜안을 보여준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담고 있다.
세종대왕은 1397년 조선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도(李裪)로, 어릴 적부터 유난히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해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왕위 계승권이 없는 셋째 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학문과 민생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세종은 어릴 적부터 백성들의 어려움을 직접 들으며 통치자로서의 책임감을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훗날 조선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무엇보다 백성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혁신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백성들의 삶을 세심히 관찰하고 그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통치자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글 창제이다. 당시 조선 사회는 한자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배우기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려 백성 대부분이 문맹 상태에 머물렀다. 세종은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문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그는 학자들과 함께 연구를 거듭한 끝에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이를 통해 백성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기록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세종은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백성들이 글을 배우기 어려움을 안타깝게 여겼다”며, 자신의 통치철학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경청, 실행, 그리고 신뢰’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항상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농업 기술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백성들의 요청에 응답해 《농사직설》을 편찬하고, 이를 통해 조선의 기후와 지형에 적합한 농업 기술을 제시했다. 또한, 그는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표적인 예로, 장영실을 비롯한 학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혼천의, 앙부일구와 같은 과학기구를 개발하게 함으로써 조선의 과학기술 수준을 크게 향상했다. 이처럼 세종은 실행력을 겸비한 지도자로, 단순히 명령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실질적 변화를 추구했다.
또한, 세종의 리더십에는 신뢰가 중심에 있었다. 그는 집현전을 설립해 학자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단순히 권위를 행사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학문적 토론을 장려하며 지혜를 모았다. 이러한 방식은 백성과 학자들 모두에게 신뢰를 얻었고, 정책의 효과성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했다. 세종은 또한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사용하며, 백성과 학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지도자였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업적은 지금까지도 깊은 영향을 미치며, 한글은 단순한 문자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의 리더십 철학은 ‘백성을 중심에 둔 정치’라는 이상을 오늘날 정치인과 국민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이자, 앞으로의 미래를 이끄는 길잡이다.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실행력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영감을 준다. 앞으로도 그의 정신을 본받아 한글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더 큰 발전과 화합을 이루어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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