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김정윤 오피니언 투고] 지난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세계의 장기적인 경제적, 정치적 격차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가 집필한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국가 간의 빈부 격차를 정치적 요소와 경제적 개념에 빗대어 분석한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비슷한 나라들끼리도 경제적 성과는 왜 엇갈리는지에 대해 그는 한국을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한과 한국은 어두컴컴한 북쪽과 환하게 불을 밝힌 남쪽이 대조를 보여주면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다. 로빈슨 교수는 핵심적인 차이로 국가의 운영 방식과 정치 제도의 질을 강조했다. 한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포용적 경제 제도를 이룬 민주주의를 토대로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반면, 북한은 착취적 제도를 이뤄 공산주의로 인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제도가 국가의 경제 성장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과거 예시를 들어 설명하면서 성공의 열쇠로서 포용적 제도의 중요성을 명확히 하며, 경제적 번영을 이루기 위해 정치적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가 끝난 2024년 초, 한국 경제가 회복할 조짐이 보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와 자동차 판매가 늘면서 연간 수출액은 2024년 6,838억 달러로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반도체 중에서도 HBM이라고 하는 고사양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요를 견인할 정도로 한국 경제가 코로나 여파에서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반기 이후, 한국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 자동차 역시 무역 전쟁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피하지는 못했는데,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는 국내외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경제적 위기는 환율 시장에 즉각 반영되었다. 산업 현장에서 소음과 진동을 줄여주는 장비를 만드는 한 중소 수출기업은 베트남과 중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중동과 동남아시아 시장에 완제품을 만드는데, 원화 가치가 급감하면서 수입 원자재 비용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계엄 이후 원·달러 환율이 연일 고공 행진을 이어가며 한때 15년 9개월 만에 최고치인 1,486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자연스럽게 자영업자들의 폐업으로 연결됐는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점포 철거비를 지원하지만 폐업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20억 원에 달하는 2024년 예산이 모두 조기 소진됐다. 급격히 상승한 폐업은 사실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현상이다. 상권 내에서 한 자영업자가 점포를 폐업한다면 근처에 있는 점포 자영업자는 고객이 감소하기 때문에 상권이 위축되며, 이런 폐업이 계속된다면 이들은 대출을 갚지 못해서 은행 부채가 쌓이게 되고, 궁극적으로 전체적인 경제가 흔들리게 된다.
국제결제은행이 발표한 GDP 대비 가계대출 규모는 2014년만 해도 주요 43개 나라 중 14번째로 높았지만 2022년 5위까지 올랐다. 한국 경제는 현재 너무 빠른 속도로 개인 부채가 늘고 있다. 이는 쉽게 말해 국민이 개인 대출을 많이 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채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가계는 원리금 부담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소비 위축이 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대출 부담으로 집이 경매에 들어가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2024년 12월엔 전국적으로 아파트 3,500여 건이 법원 경매로 나와 4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개인 부채가 생기는 과정은 집값이 5억 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예전에는 채무가 4억 원 정도였으며 본인 집을 팔고 채무를 변제하고도 1억 원이 남지만, 지금은 집값이 5억 원이면 채무가 67억 원 이상 되기 때문에 채무를 변제할 수는커녕 빚을 지는 상황이 된다. 국민 개인의 경제력이 안 좋아지면서 전반적으로 올해 한국 경제 전망 역시 부정적이다. 지난 2024년 11월 한국은행 경제 성장률 전망은 1.9%였지만 2025년 1월 1.61.7%로 하향 조정됐다. 기획재정부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024년 7월 2.2%에서 2025년 1월 1.8%로 낮췄고, 주요 해외 투자 은행들도 줄줄이 낮춰 잡고 있다. 한국 경기 불황 속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인구 구조이다. 고령화 시대를 마주한 우리 사회는 동시에 인구 감소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많은 젊은 층들이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저출산 문제가 계속되면서 전국 곳곳 빈집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부산은 전국의 특·광역시 중에서 빈집이 가장 많은 도시다. 1990년대 388만 명에 달하던 인구는 지속적인 감소세 속에 지난해 330만 명까지 감소했다. 빈집은 무려 1,300채 이상이 되어 지역 사회에서만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57%가 소멸 위험 지역으로 나타났다.
현재 인구 감소와 유령 도시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급되고 있는 방안은 바로 기술 개발을 통한 혁신이다. 대전 카이스트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여 미래의 인구 구조 변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라이더와 같은 애완 로봇을 개발하고 배터리 효율을 위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적용하여 세계 최초로 마라톤 완주에 성공한 로봇이 되었다고 한다. 이 대학교에서는 성공보다 실패의 가치에 주목시키기 위해 실패주간 행사를 열고 있다. 이렇게 카이스트는 학생들이 미래를 위한 기술 개발을 장려하는 것과 동시에 과정을 이해하고 창의적인 접근법을 길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말한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인구 통계학이 국가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각한 문제로 언급되는 한국의 낮은 출산율도 사실 어떻게 보면 생산 가능 인구에 대한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경제 성장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상황에 적응을 한다면 인구 구조 문제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삶의 우선순위를 다르게 정하듯이 한국도 우선순위를 인구 구조가 아닌 기술로 바꿔 다시 한번 혁신을 일으킨다면 예전엔 생산 가능 인구로 이뤄낸 기술 발전이 기술만으로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또한, 인구가 작다는 것은 현재와 동일한 기술력을 갖췄을 때 오히려 좋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기술 혁신이 소외된 계층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제도와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보상과 제도를 통해 공동의 이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정부가 안정적인 정치 환경을 시민들에게 제공하여 끊임없는 발전을 향한 사회를 조성하는 역할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