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고 있던 사람들… 참전 용사 예우의 현실

< Illustration by Serin Yeo 2008(여세린) >

[객원 에디터 10기 / 최서연 기자]“친구들 생각이 나 소주를 매일 6병씩 마셨다. 친구들 생각이 나니까 술만 마시게 된다. 고생 많이 했다.”

이는 한 월남전 참전용사의 고백이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총성과 포탄 대신 반복되는 불면과 불안, 그리고 일상 속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트라우마가 그들을 괴롭힌다.

이 참전용사는 전쟁 중 먼저 떠난 전우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매일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나라를 위해 싸웠던 시간은 끝났지만, 전쟁의 기억은 그의 일상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한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들이 많지만, 우리가 그들의 이후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트라우마와 생활고, 그리고 충분하지 않은 예우 문제는 여전히 현재의 이야기다.

참전했지만, 유공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

현행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유공자 등록은 본인이나 유족이 직접 신청해야 하며 유형도 18가지로 세분돼 있다. 하지만 참전했다고 해서 모두가 자동으로 국가유공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의 경우 실제로 신청 가능한 항목은 사실상 ‘전상군경’뿐이다. 법에는 ‘참전유공자’라는 항목도 존재하지만, 이는 6·25전쟁과 베트남전 참전자로 적용 범위가 한정돼 있다. 즉 분명 전투에 참여했지만 법이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다.

무공훈장을 통한 인정 역시 쉽지 않다. 제1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고속정에 탑승했던 수병들 가운데 훈장을 받은 인원은 없었고, 무공훈장은 간부들에게만 수여됐다. 일부 장병이 무공포장을 받았지만 이 역시 유공자 요건 충족 여부를 두고 별도의 심사를 거쳐야 했다. 그 결과 전투에 참여했던 일부 참전용사들이 당시 받은 위로금은 1인당 20만 원에 그쳤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현재 생존해 있는 6·25 참전용사들은 약 3만 명이다. 그렇다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들의 상황은 나을까.

국립영천호국원 관련 기사에서는 6·25전쟁 당시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전인호(78) 씨가 2평이 채 되지 않는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밥상도 없이 바닥에 앉아 저녁을 해결하는 사연이 소개됐다. 또 다른 92세 참전용사는 연로한 나이에도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훈장과 명예는 있었지만 일상의 삶은 여전히 빠듯했다.

현재 참전명예수당은 2025년 기준 월 45만 원으로 과거에 비해 인상됐지만 1인 가구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당은 ‘예우’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생활 전반을 책임지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시간이 지난 뒤 찾아온 고통, 지연성 PTSD

생활고뿐만 아니라 참전용사들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지연성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다. 전투 직후에는 증상이 뚜렷하지 않다가 수년 또는 수십 년이 지나 불면, 공황, 기억 회피, 대인기피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다.

최근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 8명이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전원 비해당 판정을 받았다. 보훈 당국은 PTSD 발병과 전투 간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결정서에는 ‘학업과 취업을 수행했음’, ‘사회생활에 뚜렷한 어려움이 확인되지 않음’ 등의 사유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잦은 이직과 대인관계 단절, 반복되는 불면과 불안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다고 호소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상처는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렵고 시간이 지날수록 전투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과정도 더욱 까다로워진다.

현재 일부 참전용사들은 행정심판을 진행 중이지만 인용률이 낮아 실질적인 구제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에서는 지연성 PTSD를 전상으로 인정해 장애보상 대상에 포함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 대치 속에서 논의는 빠르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예우는 기억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 뚜렷해진다. 미국은 보훈부(VA)를 중심으로 참전 기록과 의료 기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장애 보상금과 보훈 연금을 지급한다. 또한 물가 상승률을 급여에 자동 반영하는 제도를 통해 실질적인 생활 보장을 목표로 한다. 사망 이후에도 배우자에게 유족 보상이 이어진다.

한국 역시 2026년부터 참전유공자 사망 후 배우자에게 월 10만 원을 지급할 계획이지만 실질적인 생계 보장 수준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참전용사 예우 문제는 단순히 과거를 기리는 일이 아니다. 이는 국가가 희생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현재의 문제다.

홍성신문 인터뷰에서 한 6·25 참전용사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참전용사에 대해 소홀한 부분이 크다. 나라를 지켜냈던 사람은 우리지만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다. 소중함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후의 삶에 대한 책임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미 끝난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이 누군가는 아직도 그 전쟁 속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는 일은 단순한 추억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어떤 나라를 선택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참전용사 예우를 둘러싼 논의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Leave a Reply

Back To Top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