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다 경험, 혼자보다 함께… ‘펀런’ 문화로 진화하는 러닝 열풍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10기 / 장희주 기자]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러닝 크루’ 모임이 급속히 확산되며 달리기와 마라톤이 하나의 사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지난 YTN 마라톤대회에서는 참가자 10명 중 6명이 MZ세대였으며, 2024 서울하프마라톤에서도 전체 참가자 2만 4천 명 중 2030 세대가 66%를 차지할 정도로 주요 마라톤 대회마다 젊은 층의 뜨거운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마라톤이 빠른 기록이나 완주에 초점을 맞췄다면, 요즘 MZ세대는 달리기를 매개로 사람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달리면서 운동 목표를 공유하고 격려하는 ‘러닝 크루’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펀런(Fun Run)’이나 ‘슬로 러닝(Slow Running)’ 등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기록 경쟁보다 참여 그 자체의 즐거움에 무게를 두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러닝 크루 회원들은 “혼자 뛰면 달리다가 멈추고 그랬는데 확실히 같이 달리다 보니까 좀 길게 달릴 수 있고, 뛸 때는 너무 힘들어도 다 뛰고 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개운해진다”며 함께 달리기의 매력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유통·스포츠 업계는 국내 러닝 인구를 “약 1,000만 명 수준으로 추정한다”고 분석하며, 러닝화 시장 규모 역시 1조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조사 결과 국내 운동화 시장 규모는 2021년 2조 7,761억 원에서 2023년 3조 4,150억 원으로 커졌으며, 2024년에는 4조 원 안팎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러닝화 열풍은 매출 수치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신세계백화점은 9월 스포츠 슈즈 장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5.5% 성장했으며, 롯데백화점 20%, 현대백화점 76% 등으로 스포츠 슈즈 매출이 급등하였다. 패션플랫폼 무신사는 지난 7월부터 최근 3개월간 러닝화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고가 러닝화의 인기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엘리트 선수들과 마스터스 고수들이 신는 최상급 레이싱화부터 막 러닝을 시작하는 입문자를 위한 러닝화까지 구분한 ‘러닝화 계급도’가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이러한 MZ세대의 러닝 트렌드는 첨단 기술과 결합하며 더욱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워치, GPS, 생체 데이터 측정 웨어러블 기기 등이 달리기의 일상화와 전문성을 이끌고 있다. 달리기 경로를 SNS에 인증하거나, 자신에게 맞춤화된 AI 코칭과 실시간 건강정보를 받는 등 IT와 결합된 새로운 마라톤 경험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GPS 전문 브랜드 가민의 스마트워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가민은 작년 글로벌 매출에서 전년 대비 20% 증가한 약 82억 달러(약 8조 원대)의 실적을 달성했다. 러닝 앱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는데, 나이키런클럽과 러너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런데이’는 올해 7월 기준 각각 33만 명, 34만 명의 월 이용자 수를 기록하며 러닝 앱의 대중화를 보여주고 있다.
기록에 치중하기보다 대회 자체를 즐기려는 참가자들이 많아지면서, 이색 요소가 더해진 마라톤 대회들 또한 인기를 끌고 있다. ‘금천구청장배 건강 달리기 대회’는 참가비 1만 원을 내면 대회가 끝난 뒤에 수육이나 막걸리와 같은 먹거리를 제공해서 ‘수육런’으로 불린다. 갖고 싶은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완주하면 담은 물건을 주는 배달의민족의 ‘장보기 오픈런’, 빵을 더 건강하고 맛있게 먹기 위해 달리는 ‘빵빵런’ 역시 MZ 세대가 주목해 인기를 끈 이색 마라톤 대회이다. 쇼핑한 물건을 들고 뛰는 ‘쇼핑런’, 건물 계단을 오르는 ‘수직 마라톤’ 등 개성 넘치는 마라톤 이벤트가 속속 등장하면서, 러닝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기업이 마케팅을 통해 공략하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문화 현상으로의 확장과 함께, 사람들의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생겼다. 최근에는 러닝복과 러닝 용품을 일상복에 매치하는 ‘러닝코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다. 단순히 운동복을 넘어 전문화된 러닝웨어와 러닝기어를 패션 아이템으로 소화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어 ‘러닝코어룩’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패션 브랜드들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젝시믹스의 러닝 전용 라인 ‘RX’는 출시 1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며 브랜드 실적 회복에 기여했고, 안다르는 자체 개발 원단을 활용한 ‘런부스트 컬렉션’을 출시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뿐만 아니라 뉴발란스, 아식스, 호카, 온 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운동 능력을 향상해 주는 기능성뿐만 아니라 브랜드만의 고유한 디자인을 앞세워 러너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러닝 열풍의 배경에는 미디어, 특히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크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달리기에 도전하는 모습은 젊은 층에게 직접적인 동기를 주었고, 유튜브와 숏폼 콘텐츠를 통해 달리기 챌린지가 빠르게 확산됐다. 특히 MZ세대는 SNS에 자신의 러닝 기록을 인증하고, ‘#런스타그램’ 등 다양한 해시태그와 함께 경로·패션·크루 활동 등을 공유하며 러닝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만들고 있다. 러너들의 게시물은 이미 수백만 건에 달하며, 이러한 ‘공유’ 문화가 달리기를 단순한 운동이 아닌 경험·놀이 문화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다.
주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은 러닝을 핵심 전략 분야로 삼고 신제품 개발은 물론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중심에는 *‘브랜드 주도 러닝 커뮤니티’*가 있다. 푸마의 ‘런푸마팸’, 나이키의 ‘나이키 런 클럽’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이 일제히 커뮤니티 기반 러닝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대형 유통업체 마케팅 담당자는 “러닝크루 한 곳을 공략하면 수십~수백 명의 활동원에게 동시에 브랜드를 알릴 수 있다”며 “러닝 마케팅은 집단적 경험과 공감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간 ‘러닝’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이자 트렌드가 되었다. 자연과 함께하며,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인 점이 큰 장점이다. 또한 시간과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많은 장비가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에 가볍게 즐기기 좋은 취미로 인식되었다.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마다 도시 곳곳에서 러너들이 달리는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러닝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그에 맞는 노력도 받쳐주어야 모두의 문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처럼, 러닝 크루 열풍이 순간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되는 건강한 ‘트렌드’로 자리 잡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러닝과 마라톤 열풍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