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리즈 트러스 총리 44일만에 사임… ‘최단임 총리’
시장 역행하는 감세안으로 대혼란 초래… 거센 비판
[객원 에디터 4기 / 임소연 기자] 영국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 44일 만에 사임을 발표하며 최단기간에 재직한 영국 총리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현지 언론은 “영국 정치의 전례 없는 위기”라고 평가했다. 한편, 25일, 수낵 총리가 제57대 영국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20일(현지시간) 오후 1시 30분 총리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찰스 3세 국왕에게 사임한다고 밝혔다”라고 말했다. 트러스 총리는 “선거 공약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어서 물러난다”며, “다음 주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총리직에 머물겠다”라고 밝혔다.
트러스 총리는 지난달 23일 줄어드는 세수에 따른 구체적 대책 없이 450억 파운드 규모의 대규모 감세안만 발표해 금융시장 대혼란을 일으켰다. 이는 부자와 기업의 세금을 줄여주면 그들의 자본이 투자로 이어져 전체 경제가 크게 성장한다는 낙수 이론에 근거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는 시장 상황과 역행하는 행보를 보였다.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 발행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과는 반대로, 영국 국채 가격이 급락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각종 부작용이 이어졌다.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긴급 개입을 해야 할 정도였다.
현지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트러스 총리는 감세안을 발표한 콰시 콰르텡 재무장관을 경질하고 제러미 헌트 전 외무장관을 새 재무장관으로 세우며 신뢰 회복을 시도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헌트 장관이 오히려 이달 기존 감세안의 상당 내용을 철회하자 둘 사이의 대립각이 형성되었다.
수엘라 브레이버먼 영국 내무장관 사임도 이어졌다. 브레이버먼 장관이 “실수에 책임을 지겠다”, “현 정부 방향이 우려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19일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내각 붕괴 조짐이 보이자 결국 집권 동력을 잃었다.
트러스 총리는 보수당의 상징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추앙하며 ‘철의 여인’을 꿈꿨으나 금세 ‘좀비 총리’로 불리는 처지가 됐다. 이렇게 그녀가 불명예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지만 트러스 총리는 매년 11만 5천 파운드(약 1억 8천만 원)의 총리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지 등에 따르면 영국 총리는 퇴임 이후 매년 ‘공공직무비용수당(PDCA)’을 지급받을 수 있다. PDCA는 1990년 마거릿 대처 전 총리 퇴임을 계기로 만들어진 제도다. 총리들이 재임 이후에도 공적 활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불명예를 쓰게 된 트러스 총리가 퇴직수당을 받게 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1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가 “44일 만에 물러난 그(트러스)가 이런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라며 (트러스가 스스로) 사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트러스 총리의 후임에는 지난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트러스 총리에게 석패했던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맡게 된다. 그는 40대 지도자로,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며 영국 햄프셔주의 명문 사립고를 거쳐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엘리트이다. 지난 2015년 총선을 통해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으며 보리스 존슨 총리 후보를 지지한 인연으로 재무부 장관까지 올랐다. 수낵 총리가 현재 영국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 영국 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