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자극, 그 이상
<Illustration by Jessica Kim 2009(김지우) >
[객원 에디터 10기 / 박주하 기자] 최근 방송사와 OTT 플랫폼에서 연애 프로그램, 이른바 ‘연프’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양이 늘어난 것을 넘어 종류도 다양해져 그 화제성과 사회적 영향력은 ‘문화적 현상’이라 불릴 만큼 증폭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화면 속 출연진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함께 울고 웃고, 이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시킨다. 이처럼 방송 콘텐츠를 넘어 새로운 유행을 이끌어가는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2022년에만 방송사와 OTT에서 공개된 연애 프로그램의 수가 30개가 넘을 정도다. 모든 방송의 흥행이 시청자들의 수요와 반응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수치는 프로그램의 인기를 명확히 보여준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2030 청년 10명 중 4명은 추후 연애 프로그램 시청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이 증명하듯 이미 이 콘텐츠를 즐기는 젊은 세대는 상당하다. 그렇다면 왜 연애 프로그램은 이토록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서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청자들의 감정적 갈증을 공략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인간이 느끼고 받길 원하는 보편적이고 강력한 감정이기 때문에, 화면 속 출연진들이 사랑을 주제로 교류하며 감정적 변화를 겪는다. 이후 시청자들은 자신의 연애 세포가 자극되는 경험을 통해 그 감정을 대리적으로 충족시키고, 출연진들이 느끼는 설렘·질투·고민 등 복잡한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현실에서는 해보기 힘든 자극적인 상황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이러한 몰입 과정 속에서 특정 출연진에게 깊이 이입해 응원하거나 팬층이 나뉘는 등 다양한 파생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다른 방송보다 더 높은 공감대를 얻어내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출연진들이 ‘일반인’이라는 점이다.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평범하게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던 10대부터 30대의 남녀다. 이들의 연령층과 상황은 주요 시청자들의 연령층 및 현실과 매우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예인이 등장하는 꾸며진 방송이 아닌, 시청자들과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진솔한 감정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기 쉽고 공감대가 더욱 탄탄하게 형성된다.
더 나아가 연애 프로그램은 드라마틱한 서사가 극대화되도록 연출된다. 첫 만남과 데이트, 선택의 순간까지 감정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제작진들은 마치 드라마처럼 편집을 한다. 음악, 자막, 조명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몰입감을 높이고 갈등 상황에서는 긴장감을 조성한다. 예측할 수 없는 첫 만남, 예쁜 장소에서의 데이트, 질투와 오해의 순간을 거쳐 마지막에 서로를 선택하는 과정은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담아 시청자들의 환상을 자극하며, 누구나 꿈꾸는 연애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이렇게 공감하기 쉽고 현실에 있을 법한 상황을 다루지만, 동시에 흔하지 않은 자극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연애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흥미를 위해 현실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 출연진을 놓는다. 예를 들어 현재 시즌 4까지 방영된 대표적인 연애 예능 ‘환승연애’는 이별한 커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지나간 과거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거나 재결합하는 프로그램이다. 구연인과 새로운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며 설렘과 질투를 느끼는 감정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전 연인과 새로운 출연자들이 함께 생활하며 사랑을 찾는 설정 자체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이처럼 연애 프로그램은 보편적인 감정을 공략해 몰입도를 높이면서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특별한 상황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강렬하고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성공한 연애 프로그램은 어느덧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방송을 시청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출연자를 응원하며 팬심을 드러내고, SNS에서 숏폼으로 바이럴되는 등 다양한 소비 양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프로그램 속 ‘사랑’의 모습과 현실의 사랑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화제성과 자극을 위해 영상을 편집하고 연출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연애를 시작할 때 필요한 긴 고민의 시간이나 감정의 숙성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삼각관계 같은 자극적인 장면이나 짧은 기간의 격렬한 감정만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들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극적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게 해, 화면 속 감정의 흐름에 깊이 몰입하게 만들고 현실 연애에서도 비슷한 속도와 강렬한 설렘을 기대하는 착각에 빠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대체로 천천히 쌓이고, 때로는 오해를 풀기 위한 대화와 시간, 감정 정리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연애 프로그램을 연애의 기준으로 삼으면 실망을 경험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