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9기 / 정동현 기자]지난 2년간 일본은 쌀 부족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2022년과 2023년, 일본은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을 겪었고, 이는 전국 주요 산지의 벼 생산량을 급감시켰다. 특히 홋카이도(北海道)와 도호쿠(東北) 지방은 일조량 부족과 고온으로 인해 벼 알곡이 제대로 익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시장에 공급되는 쌀의 품질이 낮아졌고, 일부 품종은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는 비축미 방출과 수입 확대 등의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처방일 뿐 일 뿐, 기후 변화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네이처(Nature)》에 실린 한 연구는, 기후변화가 전 세계 식량 생산에 실질적 위협을 가하고 있음을 수치로 보여준다.
기후변화가 식량 위기를 앞당긴다
2025년 6월, 《Nature》의 “Impacts of climate change on global agriculture accounting for adaptation”는 기후변화가 전 세계 식량 시스템에 미치는 충격을 경고했다. 연구진은 12,000개 이상의 지역 농업 데이터를 분석하여, 지구 평균기온이 1°C 상승할 경우 전 세계 주요 곡물 생산량이 식품 열량 기준 약 4.4%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인당 하루 섭취 열량으로 환산할 경우, 약 120kcal가 줄어드는 셈이다.
연구는 단순한 기후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 농민들의 적응 방식까지 반영한 실증적 분석으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고온에 민감한 옥수수, 밀, 콩 등의 생산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부유한 선진 농업국일수록 생산 감소폭이 클 수 있으며, 북미 지역은 옥수수 생산이 최대 45%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포함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 농업이 주로 북위 30~50도의 고위도 지역에 위치해 지구 평균보다 더 큰 폭의 기온 상승을 겪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옥수수나 밀 같은 주요 작물은 고온 스트레스에 특히 민감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선진국의 농업은 단일작물 중심의 대규모 집약적 구조를 띠고 있어, 폭염이나 가뭄 등 기후변화에 대한 복원력이 낮고, 이로 인해 수확량 감소 폭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IPCC, 2021; Zhao et al., 2017; Altieri, 2009).
연구진은 농민들의 적응 노력, 이를테면 품종 변경, 파종 시기 조정 등 을 고려하더라도 기후 변화로 인한 충격의 1/3 정도만 완화 가능하다고 경고한다. 2100년까지 평균 온도가 4°C 이상 상승하는 극단적 시나리오(RCP8.5)가 현실화될 경우, 인류는 일일 식량 섭취량의 17.2%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식탁 위의 현실이다
일본의 쌀 부족 사태는 단지 한 나라의 농업 문제를 넘어,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고라는 점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식량은 그 어떤 자원보다 일상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취약하다. 특히 쌀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삼는 곡물이자,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생존과 직결된 식량이다.
왜 밀이나 옥수수가 아닌 ‘쌀’인가? 쌀은 고온과 수분 스트레스에 특히 민감한 작물이다. 일정한 수온과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 벼 재배 환경은 이상기후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23년 11월 일본 농림수산성 발표에 따르면, 2023년 벼 작황 지수는 전국 평균 96(평년=100)으로, 5년 연속 평년 이하를 기록했다. 특히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방은 90 이하로 급감했으며, 이는 고온과 일조량 부족으로 이삭 분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고온 피해로 ‘등외미’(비정상품 쌀)의 비율이 증가하며 품질 저하 문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쌀 재배는 너무 많은 ‘환경 조건’에 의존하고 있고, 그 조건들이 기후변화로 자주 깨지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1~2도의 기온 변화만으로도 이삭이 제대로 맺히지 않거나 쌀알이 덜 여물 수 있으며, 이는 수확량은 물론 품질까지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반면, 밀이나 옥수수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기후대에서 재배가 가능하고, 건조한 기후에도 적응성이 높은 편이다. 즉, 기후위기의 ‘최전선’에는 쌀이 있다.
특히, 세계은행에 따르면, 쌀은 전 세계 34억 명 이상이 주식으로 삼는 작물이며, 방글라데시, 필리핀, 미얀마, 라오스 등은 칼로리 섭취의 50% 이상을 쌀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고온과 홍수, 해수면 상승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어, 쌀 생산 위기는 곧 국가적 식량 위기로 직결된다.
실제로 방글라데시는 2022~2023년 연속으로 기록적인 몬순 홍수를 겪었고, 특히 실헷(Sylhet) 지역은 20년 만의 대홍수로 벼 모내기 철이 전면 중단되며 대규모 수확 손실이 발생했다(유엔 인도주의업무 조정국, UN OCHA Bangladesh Flood Report,2023).
2023년 태풍 ‘듀쿠(Doksuri)’로 루손섬 일대 벼 경작지 3만 헥타르 이상이 침수되고, 엘니뇨에 따른 이상 고온까지 겹쳐 수확량과 품질 모두 큰 타격을 입었다( 필리핀 농업부, Philippine Department of Agriculture, 2023)
2023년 미얀마 기후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 중부에서는 2023년 44도에 달하는 폭염이 10일 이상 이어져, 이삭 맺힘이 실패하고 ‘백미’ 발생률이 급증했으며, 불규칙한 강우로 일부 지역 논이 침수되는 피해도 있었다 (국제벼연구소, 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2023 )
라오스 남부 역시 2년 연속 홍수와 고온 피해로 벼 재배 시기가 지연되고, 일부 고지대 품종의 등숙률이 저하되어 저품질 쌀 비중이 증가했다. (유엔 식량농업 기구(FAO), 라오스 식량안보 현황 보고서, 2023) 등숙률이란 벼 등 곡식에서 이삭에 달린 낟알 중에서 실제로 쌀로 잘 여문 비율을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자들은 기온 상승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내일의 식탁에서 사라질 것은 쌀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추상적인 단어 뒤에 숨겨진, ‘식량감소’라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위기 앞에 서 있다. 일본의 이상기후와 쌀 부족 사태는 더 이상 미래의 예고편이 아니라, 이미 현실로 닥친 문제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만의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마주한 공통의 경고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이며, 이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식탁에서 시작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 수급 대응을 넘어, 기후적응형 품종 개발, 농업 재배 캘린더 재설정, 국제적인 식량 안전망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