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우성훈 기자] 우리 몸의 세포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다. 호르몬, 성장인자, 신경전달물질 같은 신호 물질이 세포 표면의 수용체에 붙으면 그 정보는 세포 안으로 전달되어 특정 반응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세포가 분열을 시작하거나, 단백질 합성을 늘리거나, 반대로 활동을 멈추는 식이다. 이 과정이 바로 신호전달이다. 문제는 이 신호가 항상 정확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메시지가 왜곡되거나 과하게 전달되면 세포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세포 신호전달(cell signaling)은 생명체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수용체–전달 단백질–전사 인자에 이르는 단계적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생명과학 교과서에서는 이를 ‘신호전달 경로(signal transduction pathway)’라고 부른다.
신호전달이 엉키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수용체의 이상이다. 수용체는 신호를 받는 안테나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 구조가 변형되면 신호가 없어도 계속 반응하거나 신호가 와도 반응하지 않는다. 특히 일부 수용체는 신호를 받은 뒤 세포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표면으로 돌아오는데, 이 과정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으면 세포는 계속 같은 신호를 받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렇게 되면 세포는 멈춰야 할 상황에서도 계속 반응을 이어간다. 문제는 이 신호가 꺼져야 할 순간에도 계속 유지되는 경우다. 정상 세포에서는 신호 전달이 충분히 이루어지면 이를 차단하는 조절 단백질이 작동해 반응을 멈춘다. 하지만 이러한 조절 장치에 이상이 생기면 세포는 신호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자극을 받고 있다고 인식한다. 특히 인산화 반응을 되돌리는 탈인산화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호는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
대표적인 예가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변이로, 일부 암에서는 이 수용체가 리간드 없이도 지속적으로 활성화되어 세포 증식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세포 안 신호 전달 경로가 매우 복잡하다는 점이다. 하나의 신호가 여러 단계를 거쳐 전달되다 보니 중간 단계에서 작은 오류가 생겨도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인산화 과정이 반복되는데, 이 균형이 무너지면 신호가 과도하게 증폭되거나 반대로 차단된다. 한국 연구진은 이런 인산화 조절이 무너질 경우 세포 성장 신호가 과도해질 수 있다는 점을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특정 암세포에서 신호가 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중요하다. MAPK/ERK 경로와 PI3K-AKT 경로는 대표적인 성장 신호 경로로, 실제 많은 항암제가 이 경로의 특정 키나아제(kinase)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신호전달 이상과 질병의 관계를 다룬 연구가 활발하다. 서울대와 성균관대 연구팀은 면역세포에서 신호 전달이 과도해질 경우 염증 반응이 멈추지 않는 현상을 관찰했다. 정상이라면 외부 자극이 사라지면 신호도 꺼져야 하지만, 신호 조절 장치가 망가진 세포는 계속 염증 신호를 보낸다. 이런 현상은 자가면역 질환이나 만성 염증과도 연결된다. 연구팀은 정상 세포와 신호 조절 단백질이 결손된 세포를 비교해, 동일한 성장 인자를 처리한 뒤 신호 단백질의 활성 시간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정상 세포에서는 자극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인산화된 단백질의 양이 감소했지만, 이상 세포에서는 인산화 상태가 장시간 유지되었다. 이는 신호를 꺼야 할 단계에서 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최근 면역학 연구에서는 NF-κB 신호 경로의 과활성이 만성 염증 질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신호전달이 엉키는 문제는 약물 치료와도 깊이 관련된다. 어떤 약은 특정 신호만 차단하려고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여러 경로에 동시에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국내 연구진은 세포 안에서 신호가 어떻게 분기되는지를 분석해, 약물이 어느 단계에서 어떤 경로를 건드리는지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는 더 정확하고 부작용이 적은 치료 전략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최근에는 단일 표적을 막는 방식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전체의 균형을 조절하는 ‘시스템 약리학(system pharmacology)’ 접근도 주목받고 있다.
결국 신호전달 오류는 세포가 메시지를 잘못 읽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신호가 너무 강해도, 너무 약해도, 혹은 꺼지지 않아도 문제가 된다. 이 작은 오류들이 쌓이면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신호를 처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작은 어긋남이 반복되면 결국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 수용체의 위치 변화, 신호 전달 단계의 과도한 증폭, 또는 신호 종료 실패 같은 문제들은 모두 세포가 메시지를 잘못 해석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면 왜 같은 자극이 어떤 세포에서는 정상 반응을, 다른 세포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신호전달이 엉키는 순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세포가 어떻게 판단을 내리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생명과학에서는 신호전달을 단순한 선형 경로가 아니라, 피드백과 상호작용이 얽힌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이해하려는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