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9기 / 김지수 기자]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외부에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식물처럼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 햇빛만으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음식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자연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신비로운 생물이 존재한다. 언뜻 보면 나뭇잎처럼 보이는 푸른 민달팽이(Elysia Chlorotic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생명체는 식물처럼 햇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생성하며, 심지어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다. 이러한 놀라운 능력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푸른 민달팽이는 주로 대서양 해안과 카리브해에서 발견되며, 나뭇잎과 유사한 외형 덕분에 ‘바닷속 나뭇잎’이라 불린다. 이 생명체의 몸은 햇빛을 에너지로 바꾸는 태양전지판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며, 해조류로부터 수백만 개의 색소체를 뽑아와 광합성에 이용한다고 한다. 색소체는 광합성을 담당하는 세포 기관으로, 엽록소를 포함하면 엽록체라 불린다. 미국 럿거스대 연구팀에 따르면, 푸른 민달팽이는 해조류를 섭취하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해조류의 세포 외벽에 구멍을 내고, 엽록체를 포함한 색소체를 추출해 자신의 세포 내부에 저장한다. 이 과정은 ‘색소 도둑질’(kleptoplasty)이라 불리며, 이를 통해 투명했던 푸른 민달팽이의 피부도 초록빛을 띠게 된다.
푸른 민달팽이의 광합성 능력은 단순히 엽록체를 저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엽록체는 원래 숙주인 해조류의 세포핵에서 공급되는 단백질이 있어야만 장기간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푸른 민달팽이는 해조류에서 엽록체뿐만 아니라 일부 유전자를 함께 흡수해 체내에 유지하며, 이를 통해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인 광합성이 가능하도록 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획득한 유전자가 일부 자손에게까지 전달된다는 점도 밝혀졌다. 따라서 푸른 민달팽이는 최대 6~8개월 동안 먹이를 섭취하지 않고도 광합성만으로 생존할 수 있다. 데 파시 쉬 바타차리야 럿거스대 생물학 교수는 “일반적으로 식물이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는 핵이 필수적이지만, 푸른 민달팽이는 해조류의 세포를 빨아들이면서 색소체만 저장하고 핵은 소화해 버렸는데도 광합성이 가능하다”며, 이 원리를 완전히 밝혀낼 수 있다면 미래에는 인간도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얻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한편, 푸른 민달팽이처럼 조류를 섭취해 광합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류와의 공생을 통해 광합성을 하는 ‘종속영양체’ 특성을 지닌 동물도 있다. 바로 점박이 도롱뇽(Ambystoma maculatum)이다. 점박이 도롱뇽은 북미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으로, 조류와 공생하며 광합성의 혜택을 받는 유일한 척추동물이다. 이들은 단세포 녹조류인 오오필라 암블리스토마티스(Oophila amblystomatis)와 공생 관계를 형성하며, 이 조류는 도롱뇽의 알 내부에서 자라면서 광합성을 수행한다.
점박이 도롱뇽은 녹조가 많은 저산소성 연못에 알을 낳고, 알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점액질 보호막을 형성한다. 이때 공생 조류는 도롱뇽의 알 내부에서 광합성을 통해 부족한 산소를 보충해 주고, 도롱뇽의 배아는 조류의 성장에 필요한 이산화탄소와 질소 화합물을 제공한다. 이 공생 관계는 도롱뇽의 알이 성공적으로 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점박이 도롱뇽의 배아 내부에서도 공생 조류가 증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외부 미생물이 동물 세포 내부로 침입하면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만, 점박이 도롱뇽의 배아는 조류와의 공생을 받아들이는 독특한 생존 전략을 보인다.
그렇다면 인간도 광합성이 가능할까? 푸른 민달팽이나 점박이 도롱뇽과 같은 동물의 사례를 보면, 유전자 획득이나 공생 관계를 통해 식물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해 보인다. 만약 인간이 엽록체를 주입받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단 몇 시간의 일광욕만으로 체내에서 직접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 매우 효율적일 것이다. 또한, 소량의 물과 영양소만으로 생존이 가능해져 식량 부족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이 실현되기에는 여러 과학적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광합성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는 약 3,000∼3,500개에 이르지만, 인간이 보유한 유사한 유전자는 100여 개에 불과하다. 즉, 최소 2,900개 이상의 식물 유전자가 인간의 체내에 존재해야만 광합성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게다가 인간의 신체 구조는 광합성을 위한 최적의 형태가 아니다. 예를 들어, 광합성을 위해서는 넓은 표면적이 필요하지만, 인간의 피부 면적과 색소량으로는 충분한 에너지를 얻기 어렵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광합성을 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자연 속 일부 동물들은 광합성이라는 놀라운 능력을 통해 생존하고 있다. 과연 미래에는 인간이 자연의 이 능력을 응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