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lustration by Yujin Jeon 2007(전유진)>
음악과 음악 장르가 식물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
[객원 에디터 9기 / 김지수 기자] 음악은 인간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기분을 고조시키는 것은 물론, 우울감과 불안을 완화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악의 영향은 과연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식물은 청각 기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리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생명과학 및 농업 분야의 연구들은 이러한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식물 역시 소리를 감지하고, 심지어 특정 음악 장르에 따라 생장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200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포도밭에서는 음악이 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기 위한 대규모 실험이 진행됐다. 실험에서는 포도나무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바로크 음악을 들려주고 다른 쪽은 무음 상태를 유지했다. 그 결과, 음악을 들은 구역의 포도나무는 더 빠르게 성장하고 수확량도 높았으며, 해충 발생률 또한 눈에 띄게 낮았다. 비슷한 연구가 한국 수원의 국립농업생명공학연구소에서도 진행되었다. 연구팀은 논 일부에 베토벤의 소나타를 들려준 뒤 작물의 유전자 발현 변화를 분석했고, 음악이 식물 생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각 기관이 없는 식물이 어떻게 음악에 반응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진동’에서 찾는다. 음악은 곧 공기를 매질로 전달되는 음파이며, 이는 물리적인 파동 형태로 존재한다. 인간은 고막을 통해 이를 인식하지만, 식물은 세포로 구성된 몸 전체가 이러한 진동에 반응한다. 음파가 세포벽을 흔들고, 이로 인해 세포질의 활동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호주의 한 실험에서는 옥수수에 한 방향에서 지속적으로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옥수수 뿌리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굽어 자라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는 식물이 단순히 자극을 받는 것을 넘어, 소리를 인지하고 이에 반응한 결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모든 음악이 식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음악의 종류에 따라 오히려 생장을 방해하거나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1970년대에 진행된 한 실험에서는 두 그룹의 식물에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한 그룹에는 브람스,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은 클래식 음악을, 다른 그룹에는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 등 록 음악을 들려준 결과, 놀라운 차이가 나타났다. 클래식 음악을 들은 식물들은 스피커 쪽으로 가지를 뻗었고, 덩굴은 스피커를 감싸기도 했다. 반면 록 음악을 들은 식물은 소리의 반대 방향으로 자랐으며, 잎은 비정상적으로 작아졌고 2주 내에 고사했다. 이는 음악의 음역대와 주파수 차이가 식물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음악은 현재 농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실제로 비닐하우스에서 하루 2~3시간씩 음악을 들려주었으며, 그 결과 작물의 생장률이 최대 44%까지 향상되고 병충해도 눈에 띄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배추와 오이에서 가장 뚜렷한 효과가 확인되었다. 이처럼 음악은 정서적 안정뿐만 아니라, 식물 생장 촉진과 병해 예방 등 농업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자극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