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에서 기억까지 순간이동이 현실이 되지 못하는 과학적, 철학적 한계
[위즈덤 아고라 / 임지나 기자] 아침에 눈을 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학교 책상 앞에 앉아 있다면? 또는 지루한 수업을 마친 후 깜빡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바로 집 소파에 누워 있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런 ‘순간이동’에 대한 상상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과학으로는 그런 상상이 현실이 되기 어렵다. 과연 왜 그럴까? 단순히 기술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더 근본적인 장벽이 존재하는 것일까?
순간이동이라는 개념은 결국 어떤 물체 혹은 인간을 ‘분해’하여 그 모든 정보를 다른 공간으로 전송하고 그곳에서 ‘정확히’ 재조립하는 것이다. 이 개념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해 보이지만 이 과정을 구성하는 과학적 조건들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곧 복잡하고 압도적인 문제들에 부딪힌다. 특히 인간이라는 존재를 기준으로 보면 단지 눈에 보이는 형태만 복사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약 7×10^27개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그 원자들은 복잡한 화학 결합을 통해 세포, 기관, 신경망, 뇌 구조 등을 이룬다. 이 모든 화학적 구성 요소들을 ‘완벽하게’ 분해하고 그 결합 정보까지 담아내야만 재조립 시 본래의 상태를 재현할 수 있다.
여기서 화학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원자는 분자 내에서 특정한 에너지 준위와 방향성을 가진 결합을 형성한다. 이를 무작정 분해하면 단순한 원자들의 집합체로 돌아가고 다시 원래대로 재결합하는 과정은 단순한 조립이 아니라 수많은 전자 궤도, 이온 상태, 온도, 압력 같은 변수까지도 정확히 재현해야 하는 과업이 된다. 마치 부서진 도자기를 본드로 다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원자 단위로 완전히 갈아 분말로 만든 후 다시 원래의 예술품으로 되살리는 수준의 정밀함이 필요한 셈이다. 분자의 입체 구조까지 정확히 복원하지 못한다면 생리작용은 물론 존재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까닭때문에 화학적으로도 완벽한 순간이동은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더 복잡한 문제는 ‘감정’과 ‘기억’이다. 우리는 뇌의 전기적 신호와 화학적 전달물질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각하고 느낀다. 과학자들은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분자가 감정에 관여한다고 설명하지만 그것이 인간 고유의 감정과 기억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즉, 신경전달물질이 단지 ‘행복함’이라는 감정을 유도한다고 해도 내가 어제 느꼈던 슬픔, 오늘의 기쁨, 혹은 특정 상황에서의 두려움은 각기 다른 신경망의 패턴과 연결되어 있다. 이 수많은 변수들이 모두 원자 단위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 정보가 100% 분해되고 다시 복원될 수 있을까? ‘정보’는 보존될 수 있어도, ‘자아’는 과연 복제 가능한가? 순간이동이 구현된다 해도 그 결과물이 과연 ‘나’일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이론적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좇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연구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과 이를 바탕으로 한 ‘양자 텔레포테이션’ 실험이다. 1997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의 안톤 차일링거 교수는 양자 얽힘 상태에 있는 두 광자 중 하나의 상태를 측정하면 다른 광자에게 그 정보가 즉시 전달된다는 실험을 통해 ‘정보의 순간이동’을 최초로 구현했다. 이후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실험을 발전시켜 2000년대 후반에는 수 km 떨어진 위치에서도 얽힘 상태를 유지하며 정보를 전송하는 데 성공했고, 최근에는 중국과 유럽의 연구팀들이 위성을 이용해 지구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까지 정보의 순간 이동을 실험하기도 했다.
이 실험은 분명 의미가 깊다. 양자 얽힘은 두 입자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하나처럼 연결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이론적으로는 ‘실체’를 옮기지 않고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이 실험이 물체 자체를 이동시킨 것이 아니라 상태의 ‘정보’를 이동시킨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마치 누군가의 생각이나 계획을 메모지에 적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그 정보는 전달되었지만 원본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고, 복제된 대상은 원본의 내용을 따르지만 ‘존재’ 자체는 아니다.
더 나아가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실질적인 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양자 얽힘은 원자 이하의 입자 수준에서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극저온, 완벽한 진공 상태, 외부 간섭의 완전한 차단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열을 내뿜고,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열적이고 복잡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양자 얽힘 상태를 유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또, 얽힘을 활용해 순간이동을 구현하려면 사람을 구성하는 수천 조 개의 입자 각각이 서로 얽혀야 하며, 이들이 전송될 때마다 동시에 분해되고 동시에 조립되어야 한다. 이는 현존하는 양자 기술로는 완전히 불가능하다.
이러한 과학적 한계 속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정보의 양과 정확도다. 사람이 순간이동을 하려면 단지 물리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몸을 구성하는 모든 원자들의 위치 정보, 운동 상태, 에너지 준위, 그리고 분자 간 상호작용의 패턴까지도 완벽하게 스캔해야 한다. 이 작업은 단순히 ‘3D 스캔’을 넘어서, 전자 구름의 확률 분포까지 포함한 양자 상태의 복사를 의미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에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존재한다. 이는 어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원칙이다. 즉,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장비를 갖추더라도 어떤 원자의 상태를 완벽하게 측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원자들의 상태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복사하는 순간이동은 원리적으로 이미 한계를 가진 셈이다.
더해서, 이 모든 정보는 전송되어야 한다. 정보는 물리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디지털화되어야 하며 이를 다른 장소로 보내는 데 필요한 데이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물리학자 한스 모라벡의 추정에 따르면, 인간의 뇌 정보를 원자 수준까지 모두 디지털화할 경우 필요한 데이터 용량은 대략 10의 42제곱 비트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지구상의 모든 서버와 인터넷을 총동원해도 이 정보를 처리하는 데는 수천 년이 걸릴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 엄청난 데이터를 오류 없이 전송하고 해석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차원의 도전이 된다. 통신 신호의 작은 오류 하나만으로도 단백질 구조가 달라지거나, 기억이 왜곡되거나, 심지어는 DNA가 손상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다고 가정해보자. 물리적으로 완벽한 복제가 가능하고, 정보 손실 없이 모든 원자가 재배열된다면… 그 결과로 등장한 사람은 ‘과연 나’일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화학의 영역을 넘어 철학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감정, 기억, 인격이라는 것은 단순한 원자의 배열 이상으로 작용한다. 물론 뇌는 분자 수준의 신경전달물질로 작동한다. 세로토닌이 적으면 우울해지고, 도파민이 많으면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기억’은 단순한 화학 반응의 축적이 아니다. 기억은 경험을 통해 생성되고, 특정 맥락과 연관되어 저장된다. 이는 단백질의 배열, 시냅스 간의 신호 강도, 특정 회로의 반복된 사용 등 다양한 화학적, 물리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단지 ‘정보’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예를 들어, 내가 친구와 싸운 기억이 있다고 하자. 이 기억에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뿐 아니라, 말의 억양, 표정, 그날의 날씨, 당시의 감정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런 복합 정보가 정확히 저장된다고 해도, 그것을 동일하게 재현했을 때 ‘그 기억의 해석 방식’까지 똑같이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의 감정은 항상 ‘해석’에 의존하고, 그 해석은 현재의 정신 상태와 주변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순간이동이 완벽히 이루어진다 해도 그 감정 해석까지 동일하리란 보장은 없다. 결과적으로 ‘나는 나인가’에 대한 질문은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정보의 순간이동’이라는 개념을 점차 확장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실험 중 하나는 2020년 중국 과학자들이 수행한 지상에서 위성까지의 양자 텔레포테이션 실험이다. ‘모지앙’이라는 이름의 위성을 활용해 지상에서 위성까지 약 1,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광자의 상태 정보를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실험은 지구의 대기를 뚫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대상에게 얽힘 정보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실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양자 얽힘을 광범위하게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는 ‘정보’ 수준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실험에서 이동한 것은 광자의 상태를 구성하는 정보이지, 물리적인 물체가 아니다. 즉, 이것은 ‘디지털 복사’에 가까운 개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카메라로 어떤 장면을 촬영해서 다른 사람에게 사진 파일을 보냈다고 해서 그 장면 자체가 옮겨진 것은 아니다. 순간이동의 원리에 가장 가까운 현재 기술조차 결국은 정보의 ‘전달’일 뿐, 실체의 ‘이동’은 아니며, 복사된 정보는 기존 정보와는 다르게 존재한다.
이처럼 순간이동은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금 우리가 보유한 화학, 물리, 정보기술의 한계는 ‘순간이동’이라는 개념을 현실로 만들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이 모든 연구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양자 얽힘 연구는 미래의 양자 컴퓨팅, 양자 통신, 양자 암호화 등의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고, 실제로도 세계 곳곳에서 발전 중이다. 언젠가 순간이동이 가능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까지 순간이동은 저 머나먼 상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순간이동이라는 상상은 과학, 철학, 심리학, 정보이론까지 아우르는 다층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화학적으로 보았을 때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원자 단위로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일은 단지 복잡하다는 수준을 넘어 원리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기억, 감정, 자아라는 개념을 복사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기술 이상의 문제이다. 지금은 오직 실험실의 작은 광자만이 그 가능성을 살짝 보여줄 뿐이다. 언젠가 그 빛이 사람에게도 닿을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과학은 여전히 그 해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