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실존
[위즈덤 아고라 / 김정윤 오피니언 투고] 인간은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 동물이다. 인간의 본성 선하고,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사용하여 사람이 사는 세상, 즉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사회는 모든 인간들이 서로 협조하고 도와주며 이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추구미와 남들이 만든 기준과 평가에 따라 사람들은 종종 갖춰진 틀 속에 ‘나’의 존재의 의미와 ‘나다움’을 쉽게 잊기도 한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모두가 특정된 틀에 갖춰 현대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도치 않게 흘러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이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본인이 정말 원하고, 간절한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 과연 본인의 삶의 이유와 원동력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 “이방인”은 그의 모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 80km가 떨어진 장례식장을 가면서 시작된다. 양로원에 있던 그의 모친 사망 소식에 뫼르소는 정확히 어머니가 언제 사망했는지도 모른 채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며 무관심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또한, 장례식이 끝나자 이제는 열두 시간 동안 실컷 잘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기쁨을 느꼈다. 어머니 장례식에 찾은 노인들은 이상할 정도로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없는 무심한 태도를 보고 그를 소시오패스처럼 생각했다. 부모와 사이가 아주 안 좋았거나 불효자로 생각한 것이다. 뫼르소는 장례식장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의 여유로 태연히 장례식을 마친 후 마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장례식 바로 다음날 그는 여자친구인 마리와 함께 해수욕장을 가서 수영하고, 일광욕을 즐기고, 영화관에 가서 코미디 영황을 보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이후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뫼르소는 사장의 제안으로 수도 파리에서 더 좋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는데, 보통의 사람이라면 달려들 기회를, 뫼르소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알제에서 일하든 파리에서 일하든 별 차이가 없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여자친구 마리는 뫼르소와의 결혼을 제안하자, 뫼르소는 마리를 끔찍이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을 한다고 했다.
한편, 뫼르소는 같은 아파트 이웃인 레몽과 친분이 있었는데, 이때 레몽은 여자관계가 복잡한 젊은 남자였다. 레몽은 자기와 헤어진 옛 애인을 괴롭혀달라며 글솜씨가 좋은 뫼르소에게 대신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뫼르소는 딱히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고,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여 레몽을 도와줬다. 며칠 뒤, 레몽은 그의 친구인 마송이 운영하는 별장에 함께 놀러 가자고 제안했고, 마리와 함께 별장에 놀러 갔다. 다 같이 해수욕장에 가서 여유를 즐겼지만, 그들을 미행했던 레몽의 정부의 오빠와 그의 일행이었던 아랍인과 마주치자, 레몽과 뫼르소는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우다가 칼에 찔려 병원에 가게 됐다. 뫼르소는 너무 피곤하여 혼자 있고 싶어 해변에 갔는데, 전에 만났던 무리 중 한 명의 아랍인을 마주치게 된다. 뫼르소는 그와 싸움을 벌일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아랍인이 단도를 쥐고 위협적으로 뫼르소에게 다가가자, 뫼르소는 레몽에게 위험해서 뺏은 총으로 아랍인을 쐈다. 권총으로 아랍인을 쏘고, 쓰러진 그의 몸에 다시 총을 이어 쏘았다. 이후 뫼르소는 재판에 회부되는데, 그 당시 프랑스인이 아랍인을 죽이는 것은 가벼운 처분으로 풀려날 일이었지만, 검사는 뫼르소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유로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아랍인을 쏜 이유가 ‘햇빛’때문이라고 주장했고, 어머님의 장례식장에서 한 행동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사형 집형 전 뫼르소의 사형 선고를 받게 된 이유와 그가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보며 결국 사형을 끝으로 이방인은 끝나게 된다.
소설 속 제목, 그리고 소설 내내 강조된 ‘이방인’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 즉 사회에서부터 결핍된 소수의 인원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흔히 이방인이라는 단어 자체의 정의는 다른 나라나, 도시 등 다른 소속에서 온 사람을 말하는데, 소설 속 사건들의 맥락에서는 뫼르소의 생각과 행동이 남들이 생각하는 기준된 태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뫼르소가 이방인이 된 이유 또한 보편적으로 사회가 인식하는 핵심과 어떠한 문제 해결 방법의 접근 방식, 또는 사고방식이 그는 남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뫼르쇠가 모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히려 장례식장에서 마신 커피 한 잔과 장례식 이후 마음 편히 잘 수 있다는 생각이 타인의 관점에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식이라며 혀를 차겠지만, 반대로 뫼르소는 일부러 보여주기 식으로 슬픔을 토해내는 것 자체가 가식이고 거짓된 표현이라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어머니 장례식에 찾은 노인들을 보면서 뫼르소는 그들이 자신을 심판하기 위해서 거기에 와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인상을 이미 알아차렸을 수도 있지만 뫼르소는 본인에게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 그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원래 하던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더불어, 여자친구인 마리와의 대화에서 마리가 뫼르소의 사랑의 진심과 결혼을 언급하여 그녀가 원한다는 결혼을 하겠다는 부분 역시, 타인의 관점에선 뫼르소가 수동적이며, 삶의 의욕이 상식 밖이라는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뫼르소는 실제로 본인의 감정이 확실하지 않았고 마리와의 교제가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감각해 보이지만 진심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뫼르소는 여러 상황에 대해서 본인이 생각한 그대로의 솔직한 행동을 한 것이었지만, 그 행동이 타인이 봤을 때 정서적으로 사회의 기준과 달랐기 때문에 뫼르소를 이상한 시선으로 본 것이다. 사회가 정한 규정에 따라 우리의 가치관은 정해지게 마련이다. 결국 사회가 만든 진리의 연장선인 법과 제도는 결국 인간이 만든 기준이자 신념이다.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의미가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이 남들을 평가할 때 사용되고, 궁극적으로 기준 일반화되어 신념으로 변하면서 결국 시대마다, 문명마다 진리가 바뀌게 된다. 남들의 기준과 평가에 따라 본인의 성공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절대적으로 본인 행복의 기준을 만들고,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현재의 삶을 깎아내리는 것처럼, 뫼르소는 어쩌면 부조리한 사회를 이미 깨닫고 본인만의 삶의 기준을 만들어 남들과는 다르게 사는 방향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뫼르소가 사형선고를 받은 이유는 그가 모친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뫼르소가 재판부에 회부되었을 때 처음 재판은 그가 아랍인을 살인한 사건부터 진행되었지만, 재판 막바지에는 평소 뫼르소의 행동과 태도 등, 다소 냉소적이고 공감능력이 부족해 보였던 그의 모습들을 증거로 사람들은 뫼르소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뫼르소가 모친의 장례식에서 울지도 않았다는 것부터, 태연하게 수영장에 가고, 여자친구를 만나서 영화를 보고, 레몽의 정부를 괴롭히는 것에 도와줬다는 것까지 뫼르소의 장례식 이후 행동으로 쟁점이 옮겨갔고, 방청객들은 그를 미친 사람, 짐승만도 못한 사람 취급을 했다. 사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그의 행동과 표현을 뫼르소를 소시오패스로 각인시킨 것이다. 뫼르소의 살인동기는 딱히 없었고 그는 그저 싸움 중 레몽이 사람을 죽일까 봐, 사고를 막기 위해서 그의 권총을 뺏았었고, 태양빛이 무엇보다 싫었는데, 아랍인의 칼에 햇빛을 비췄고, 그 햇빛이 너무 눈 부셔서 총을 쏜 것이다. 결국 뫼르소는 아랍인으로부터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햇빛이 거슬렸기 때문에 권총을 쏜 것인데 재판에서 햇빛 때문에 총을 쐈다는 뫼르소의 주장은 하찮은 이유로 사람을 죽인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진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재판에서 그와 똑같은 행동과 이유를 말했을까? 만약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은 법정에서 다른 이유를 되어서 우발적 살인을 강조하고, 변명하여 남들이 듣기 좋아하는, 타당한 상황을 꾸며내서 감형을 받아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뫼르소는 알제리에 사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중형을 피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뫼르소는 본인 삶의 기준을 만들었고,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배심원들이 고정관념으로 남아있는 시선과 다른 발언을 했고, 그 다른 발언이 법정에서의 배심원단의 관점을 잣대로 해석하여 그들은 그를 위험한 이방인으로 여겨 사회의 부조리함을 진리로, 대중적인 평가로 인식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뫼르소가 수동적이며, 냉소적, 무의욕, 무감각함과 공감능력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나 역시 법정에서의 배심원단과 유사하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뫼르소 삶이 일반적이지 않고 약간의 허무주의적이라고 느껴졌지만 그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 기준적인 평가와 다를 뿐 오히려 사회의 부조리함을 인식하는 이에 대해 반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만든 가장 원초적인 이치인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라는 신념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라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나쁜 사람이 번개를 맞으면 도리에 맞다고 흔히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번개는 자연현상일 뿐 사람의 태도에 영향이 없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옳고 도덕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도덕적 신념은 언제까지나 인간이 인식하는 가치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에 가까워지는데,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는 성공한 삶을 살고 누구는 실패한 삶을 살고 결국은 동일하게 죽는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가장 큰 부조리함인 셈이다. 이 소설을 통해, 나도 사회의 기준에 물들여져가고 있다는 것을 뫼르소를 바라보는 편협된 생각으로 알게 되었다. 진리가 아닌 것도 세상의 기준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윤리와 도덕도 인간이 만든 규칙인데 과연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 옳은 걸까라는 질문과 동시에 개개인의 암묵적으로 시선이 만든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나만의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