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시대의 위대한 과학 기술이 담긴 금속활자의 발견
1600여 점의 금속활자
11월 3일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
서울 한복판에서 발견된 금속활자
[객원에디터 2기 /김소현 기자]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과 수도문물연구원은 3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지 5개월 전에 발견된 인사동 발굴 유물 1755점을 모두 선보이는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을 개최한다.
지난 6월에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복판에서 세종 시대의 과학 기술이 담긴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과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 등 다양한 금속유물들이 발견된 것이다. 금속활자란 글을 인쇄하기 위해 금속으로 만들어진 글자틀을 말한다. 금속활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로 이어져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난 6월에 출토된 금속활자에는 한자 활자 총 1000여 점과 한글 활자 600여 점이 나왔다. 조선 전기의 다양한 활자가 이렇게 한 장소에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딘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지하 8층, 지상 17층 건물을 지으려 공사하던 서울 한복판이었다. 문화재 보존과 도심 개발 사이에서 고민하던 서울시는 ‘공평동 룰’이라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는 지하는 그대로 보존하되 손해 보는 층만큼 건물의 넓이나 건물의 층수를 추가로 허용하는 방안이다.
1600점이 넘는 금속활자 중에 48점은 1434년에 만든 갑인자로 확인되었다. 1450년대 독일 구텐베르크의 성서본 금속활자보다 10년 이상 앞서는 현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세계적인 발견이었다.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한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한글 활자 약 30점만 현존한다고 알려졌는데 이보다 빨리 만들어진 조선 전기 활자가 이번에 발굴된 것이다. 또한, 세종이 지시해 신숙주·박팽년 등이 1448년 편찬한 운서인 ‘동국정운’(東國正韻) 표기법을 사용한 활자는 물론, 다양한 크기의 한글 활자가 확인됐다.
금속활자의 발명과 사용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원하였다. 그러나 그 초기의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간 주장한 말로는 ‘11세기 기원설’. ‘1102년 기원설’, ‘12세기 중엽 기원설’이 있으나 모두 올바른 고증을 거친 것은 아니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에서 금속활자는 세계 인쇄문화사 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크게 발달하였다.
이번 전시에는 금속활자 이외에도 과학사 분야에서는 매우 중요한 유물로 평가되는 ‘일성정시의, 물시계 부품인 ‘일전’, 휴대용 무기인 승자총통과 소승자총통, 동종 등도 함께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