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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지워진 유령 아기들

< Illustration by Yujin Jeon 2007(전유진) >

[객원 에디터 6기 / 함예은 기자] 세상에 태어났지만 출생 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아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꼭 세상에서 지워진 것처럼, 이름이나 생일 같은 정보조차 찾기 힘들다. 이러한 아이들을 출생 미등록 아동이라고 한다. 이렇게 출생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아동은 의무교육이나 의료서비스 등을 받을 수 없어 학대의 위험에 노출되곤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미등록 아동의 학대 피해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332명의 출생 미등록 아동이 학대받았는데, 이 중 대부분이 방임 학대 (83.4%)에 해당한다. 학대 피해자들의 대다수는 영유아라는 것이 알려지며 미등록 아동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2018년에 일어난 “수원 영아살해” 사건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며 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시 한번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보건복지부의 정기감사 기간에,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미출생 아동 중 약 1%를 무작위로 선정해 표본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한 부모가 그 조사에 협조를 거부하자 결국 당국이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이 신고를 통해 수원시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두 명의 아기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1%의 표본조사를 했을 뿐인데 미등록 아동이 살해된 채 발견된 것을 보아 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보건복지부는 다른 미등록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사를 통해 2015~2022년 사이에 태어난 미출생 아동 2123명 중 249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지며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또한, 살아남은 미출생 아동이라고 해서 평범하고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를 살해하거나, 불법 입양되거나, 염전 노예로 착취당하는 등 범죄에 노출된 사례가 많았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투명 아동은 유아기에 기초교육과 양육을 받지 못하고, 성장기에는 ‘자신이 누구인지’와 같은 정체성과 소속감을 느낄 수 없어 더욱 사회의 음지로 파고든다”라고 짚었다. 또한, 김영미 아동학대 전문 변호사는 “정상적으로 출생신고가 된 아동들과 달리 교육 등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한 투명 아동들은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며 “불이익을 받았을 때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돼 취약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출생 아동들은 불법 입양 혹은 매매의 대상이 되기 쉽다. 실제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이 입양 관련 글이 게시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5년, 한 여성은 온라인에서 자신을 ‘교육자 집안’이라고 속이고 친모에게 95만여 원을 주고 미등록 아이 1명을 샀다. 소셜미디어가에서 아이를 사고파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관으로 임산부들은 연계하는 방법도 있지만, 부담으로 연락이 두절되는 임산부가 적지 않아 어려움이 크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수원 영아살해”사건을 기점으로 사회 보장 급여법 시행령 개정에 속도를 내겠다 밝혔다. 이는 출생 후 12시간 내 실시해야 하는 B형 간염 예방접종을 위해 출생신고 전, 신생아의 성별과 생년원일 등의 정보를 기입한 임시 신생아 번호에 산모의 정보도 함께 포함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임시 신생아 번호가 부여된 아동이 보호 대상으로 편입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출생통보제를 시행할 예정이라 밝혔다. 출생통보제란 산모가 출산을 한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제도다. “수원 영아살해” 사건의 경우, 아이를 병원에서 출산했으니 만약 병원에서 바로 출생 신고로 이어졌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기대에서 비롯되었다. 현행 출생 신고제의 허점을 이 제도로 통해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출생 통보제는 2024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런 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치 않은 임신을 했거나, 안전한 환경에서 출산하기 어려운 임산부를 지원하거나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며, 태어난 아기를 보호하고 가정을 지원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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