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2000년 전 붉은 와인, 하지만 레드와인은 아니다?
[객원 에디터 7기 / 정동현 기자]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스페인의 한 고대 로마시대 무덤에서 2000년 전의 와인이 발견되었다. 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등의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2019년 집을 수리하던 중 우연히 발견된 이 무덤에는 유골함과 함께 붉은 액체가 담긴 유리 항아리가 있었다. 2019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세비야주 카르모나 마을에서 어느 가족이 오래된 주택을 보수하다가 무덤을 발견하여 신고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무덤 내부에는 벽면을 파서 만든 움푹한 공간인 8개의 벽면장 중 6개에서 유골함을 발견했다. 약 2000년 전 조성된 로마시대 무덤의 유골 항아리 안에서 붉은 액체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액체가 응결이나 홍수로 인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뒤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호세 라파엘 루이즈 아레볼라(José Rafael Ruiz Arébola, 스페인 코르도바대 교수) 연구팀은 최근 로마시대 무덤 유골 항아리 안에 담긴 액체를 분석한 결과 이 액체가 화이트 와인이라고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오른쪽 8번째 벽면장에 있던 유골함에서 폴리페놀(Polyphenols), 탄닌(Tannins) 등 오늘날의 와인과 매우 유사한 화학 성분이 포함된 액체를 발견했는데, 연구팀은 액체가 붉은색을 띠지만, 레드 와인의 주요 색소인 안토시아닌이 분해될 때 형성되는 시링산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 이를 화이트 와인일 것으로 결론 내렸다.
안토시안(Anthocyanin)은 포도 껍질에 들어있는 붉은 색소인데, 함유된 안토시아닌의 함량이 높을수록 와인의 색상이 붉게 나타난다. 안토시아닌은 식물이 자외선이나 바이러스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내는 푸른빛이 도는 붉은 자주색의 천연 성분으로 시력 개선 등의 효과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포도 껍질에는 안토시아닌 색소와 떫은맛을 지닌 타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두 성분이 레드 와인에서 특히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링산은 올리브, 대추야자, 향신료, 호박, 아사이 야자, 꿀, 적포도주 등 여러 과일에서 발견되고 식초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레드 와인에서 발견되는 말비딘(Malvidin-3-glucoside)이라는 화합물이 분해되면서 시링산이 방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말비딘은 안토시아닌 색소로 당과 결합하여 식물에 존재하는데, 레드 와인의 색깔을 이루는 주요 성분으로 레드 와인의 가장 많은 양, 최소 절반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발견된 2000년 전의 와인이 붉은빛을 띤 이유가 와인 속 안토시아닌(Bounded Anthocyanin)이 시간이 지나 오랜 숙성 탓으로 추측하였으나, 실제 분석에서는 레드 와인의 주요 성분인 안토시아닌(과 관련 성분)이 발견되지 않음으로써 화이트 와인이 산화를 통해 붉은빛을 띠게 된 것으로 추측하였다.
또한 이 와인에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미네랄소금 성분이 같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피노 와인(fino wine:주스를 발효시켜 화이트 와인을 만든 후 오크통에서 숙성)과 유사한 미네랄 소금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 팀은 현재 어느 지역 와인과 가장 비슷한지 알아내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분석해야 할 이 지역 와인의 종류가 수백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번 스페인 레드 와인의 발견으로 가장 오래된 와인의 기록이 깨지게 되었다. 이전에 발견된 가장 오래된 와인은 1867년 독일 슈파이어(Speyer) 시 팔츠역사박물관(Historical Museum of Pfalz)에 보관 중인 4세기 경 슈파이어 와인 병 와인이었다. 이 와인은 1699년 전에 제작된 걸로 추정되며, 유리병에 밀봉된 채로 발견되었으며 지금도 따지 않은 채로 박물관에 전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