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를 맞고도 살아남는 나무가 있다?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알멘드로 나무의 생존 전략

[객원 에디터 9기 / 김지수 기자]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번개가 나무에 미치는 영향이 대체로 부정적이라고 여겨왔다. 실제로 번개는 특정 수종에 더 큰 피해를 주어, 탄소 저장 능력을 약화시키고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벼락에 맞은 나무는 내부 조직이 손상되어 양분을 제대로 운반하지 못하게 되며, 이로 인해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 매년 수억 그루의 나무가 이러한 낙뢰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러한 통념과 달리, 오히려 번개를 이롭게 활용하는 나무가 발견되었다. 파나마 열대 우림에 서식하는 ‘알멘드로 나무(Dipteryx oleifera)’는 번개를 맞고도 멀쩡히 살아남을 뿐 아니라, 주변 경쟁자들을 제거하며 번개를 생존 전략으로 활용한다. 이 나무는 어떻게 자연의 가장 위협적인 힘 중 하나를 생존 도구로 삼을 수 있었을까?

열대우림에서는 서늘하고 건조한 지역과 다르게 나무에 번개가 떨어져도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그러나 고온의 낙뢰는 나무 내부의 수분을 급격히 증발시켜 조직 손상을 유발하고, 심할 경우 고사로 이어질 수 있다. 에반 고라 미국 캐리 생태계 연구소 연구팀은 파나마 바로 콜로라도 섬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에서 고전압 낙뢰를 맞고도 생존한 알멘드로 나무를 발견했다. 이후 연구팀은 낙뢰 지점을 정밀하게 기록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하고,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총 94건의 낙뢰 사례를 분석하며 알멘드로 나무와 인근 나무들의 피해 양상을 추적했다. 

그 결과, 알멘드로 나무는 다른 수종에 비해 현저히 높은 ‘낙뢰 내성’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됐다. 실제로 번개를 직접 맞은 9그루의 알멘드로 나무는 잎이 다소 떨어지는 수준의 경미한 손상만 입었으며, 생존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면 같은 환경에서 번개를 맞은 다른 나무들은 평균보다 6배 더 큰 손상을 입었고, 잎과 가지의 40% 이상이 손상되었으며 그중 64%는 2년 이내에 고사했다. 연구팀은 알멘드로 나무의 넓은 수관이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전기 전도성을 높이고, 이로 인해 전류가 나무를 관통하는 동안 피해를 최소화한 것으로 보았다.

<2019년 번개를 맞은 직후의 알멘드로 나무와 2년 뒤의 모습 – 동아사이언스 제공>

알멘드로 나무는 단순히 낙뢰를 견디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번개를 통해 주변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 특히 이 나무에 얽혀 자라며 성장과 번식을 방해하는 덩굴식물인 딥테릭스 리아나(Dipteryx liana)는 번개로 인한 감전으로 개체 수가 약 7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번개에 의해 발생한 수백만 볼트에 달하는 전류는 알멘드로 나무를 타고 흐르며 가지 끝에서 방출되고, 이 전류는 인근 나무의 가지로 전달돼 평균 약 9.2그루의 나무가 감전돼 고사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로 인해 알멘드로 나무 주변의 식물 밀도가 낮아지고, 햇빛 확보 경쟁에서 절대적인 이점을 얻게 된다. 실제로 알멘드로 나무 인근에 자란 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무보다 고사 확률이 48%나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해 알멘드로 나무의 번식 성공률을 최대 14배까지 증가시킨다고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알멘드로 나무는 평균 300년의 수명 동안 약 5회 번개를 맞을 확률이 있으며, 이는 생존과 번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에반 고라는 “번개가 없었다면 알멘드로 나무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번개가 이 나무의 생태적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했다. 알멘드로 나무는 높은 수고와 넓은 수관을 가져 낙뢰에 더 잘 노출되며, 실제로 연구 기간 중 어떤 개체는 5년 사이 두 번이나 번개를 맞은 사례도 확인되었다. 이는 알멘드로 나무가 번개를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잘 유도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식물의 진화뿐만 아니라, 번개와 같은 자연의 힘이 식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새롭게 조명했다. 특히 번개를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생태계의 중요한 요소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의 교란 생태학자 앨런 캐런은 “이 연구 결과는 매우 참신하며, 식물 진화에 대한 지식에 크게 기여했다”라고 평했다. 연구팀은 앞으로도 알멘드로 나무와 유사한 번개 내성을 지닌 수종을 추가로 탐색해, 식물과 자연 간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더욱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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