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9기 / 조예서 기자] 1995년, 일본 오키나와 해안에서 잠수하던 다이버들이 바닷속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바다 모래바닥 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동시에 기묘한 원형 무늬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이 모래무늬는 해류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채로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2011년, 일본의 해양 생물학자 요지 오노(Yoji Ono) 박사와 연구팀이 해저 촬영을 통해 이 현상의 주인공을 밝혀냈다. 그들은 카메라를 설치해 관찰한 끝에, 이 복잡한 무늬가 바로 새롭게 발견된 복어(Pufferfish)의 한 종, 일명 ‘예술가 복어’가 만든 것임을 알아냈다. 연구에 따르면, 수컷 복어가 짝을 찾기 위해 지느러미를 이용해 바다 바닥의 모래를 퍼올리며 정교한 원형 패턴을 그려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복어의 몸집은 작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 ‘모래 예술’은 자신의 몸길이의 15배가 넘을 정도로 거대했다. 작은 생명체가 남긴 거대한 예술 작품에는 짝을 찾으려는 진심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구조물이 완성되면, 암컷 복어가 다가와 그것을 관찰했다. 하지만 암컷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신비로운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다만 분명한 건, 그들의 작품은 볼 때마다 놀랍고 아름답다는 점이다.
암컷은 원형 무늬의 중심에 알을 낳고, 수컷은 외부에서 그것을 수정시킨다. 이후, 사람과는 다르게, 암컷이 아니라 수컷이 남아서 긴 시간 동안 알을 지켜주는 방식이었다. 자연은 참 다양하다.
흥미로운 건, 이 복어들이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 저런 무늬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컷은 이 원형 구조 자체를 활용해 미세한 퇴적물을 가운데로 끌어모았는데, 이게 단순 장식이 아니었다.
과학자들이 유체역학 실험을 해보니, 이 원형 구조 덕분에 중심부의 물속 흐름 속도가 무려 25%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바로 그곳에 알을 낳기 때문에, 알이 해류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재밌게도, 암컷이 이 무늬를 단순히 ‘예뻐서’ 좋아한다고는 아무도 단정 짓지 못했다. 어쩌면 진짜로 중요한 건 장식이 아니라 그 기능일지도 모른다. 역시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에 달렸다”는 말처럼, 우리 눈엔 예술 작품처럼 보여도 복어에겐 생존과 번식의 일부였던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멋진 구조물은 오래가지 못한다. 해류가 지나가면서 다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들기까지는 무려 7~9일이나 걸렸지만, 복어는 한 번 만들고 끝내지 않았다. 한 번 무너진 장소는 퇴적물이 이미 다 흐트러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 또다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만 했다.
결국, 수컷 복어는 사랑을 위해 같은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 바닷속에는 말없이 지어진, 작고도 위대한 사랑의 흔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