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 명령 무시한 채 엘살바도르로 갱단 조직원 261명 강제 추방

외국인 적대법 근거로 전격 추방, 법원 가처분 명령에도 행정부 강행

[객원 에디터 9기 / 강세준 기사] 2025년 3월 16일,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자신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미국 내에서 추방된 총 261명의 갱단 조직원들이 온두라스를 경유해 엘살바도르 내 최고 보안 교도소인 CECOT에 도착했다고 발표하였다. 추방자 중 238명은 베네수엘라계 범죄조직 ‘트렌 데 아라과’ 소속, 23명은 엘살바도르계 갱단 ‘MS-13’ 소속으로 알려졌다. 이들 수감자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600만 달러의 재정 지원을 조건으로 1년간 수용될 예정이며, 수용 기간은 추후 연장 가능하다고 전해졌다. 

CECOT 교도소는 2023년 엘살바도르 정부가 조직범죄 및 폭력 사범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 설립한 시설로, 중남미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정기관 중 하나이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와 부켈레 대통령 간 회담의 결과로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추방이 미국 내 법적 절차를 위반한 채 이루어졌다는 점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798년에 제정된 ‘외국인 적대법(Alien Enemies Act)’을 근거로 추방을 단행했으며, 해당 법은 전시에 대통령이 미국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을 별도의 법적 절차 없이 구금하거나 추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의 적용 여부를 둘러싼 법적 논란이 제기되었다.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의 제임스 보즈버그 판사는 이와 관련하여 외국인 적대법의 전시 적용에 제동을 걸고, 추방 절차의 일시 중단을 명령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해당 명령은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의 요청에 따른 긴급 심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보즈버그 판사는 명령에 따라 미국 정부가 이미 이륙한 비행기를 회항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행정부 측은 비행기가 미국 영공을 벗어난 이상 법원의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추방을 강행하였다. 이에 대해 부켈레 대통령은 관련 보도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앗, 늦었네”라는 문구를 덧붙여 논란을 더욱 키웠다. 

더욱이, 이번 추방 대상자 중에는 실제로 갱단 활동과 무관한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인권 침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추방자들은 미국 내에서 망명 절차를 진행 중이었으며, 범죄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신 등의 외형적 특징을 근거로 갱단 구성원으로 분류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미국의 이민 절차 및 인권 보호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관련 단체와 법조계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미국의 이민 정책이 외교적, 그리고 법적 경계를 어떻게 넘나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전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적대법을 적용한 점, 또한 국내 법원의 명령을 무시한 채 실행된 강제 추방은 미국 헌법상 권력 분립 원칙과 국제법상 송환 절차의 적법성 원칙 모두에 도전하는 선례를 남겼다. 또한 엘살바도르 정부가 자국의 사법 주권 및 인권 보호 기준을 미국과의 협력 명분 아래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제기된다.

국제법의 관점에서도 이번 추방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국제난민협약에 따라 망명 신청자는 개별 심리 절차를 통해 송환 여부가 결정되어야 하며, 단지 문신이 있다는 이유나 외형적 정황만으로 갱단 구성원으로 분류해 강제 추방하는 것은 비례성과 비차별 원칙에 반한다. 미국이 인권 보호 의무를 가진 국가로서 이 같은 국제 규범을 무시할 경우, 자국의 인권적 권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국제 사회로부터의 외교적 비판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엘살바도르 측에서도 외교적 이익과 국내 통치 정당성 사이에서 복합적인 균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부켈레 대통령은 자국 내 치안 강화와 대미 협력의 성과를 부각하고자 했으나, 동시에 인권과 법치주의에 대한 엘살바도르 정부의 입장을 의심케 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부켈레 대통령이 법원 판결 직후 이를 조롱하는 듯한 언급을 SNS에 남긴 것은 사법 독립성과 국제적 법질서에 대한 경시로 보이며, 장기적으로 엘살바도르의 대외 이미지와 협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사건은 미국이 이민 문제를 단순한 범죄 관리나 안보 차원에서 접근할 경우, 인권 및 법치주의 원칙과 충돌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중남미 국가들과의 협력이 돈과 수감 장소의 교환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될 경우, 이는 새로운 형태의 ‘형사외교(criminal diplomacy)’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민자의 권리를 외교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와 학계, 그리고 인권 단체들은 이러한 사안을 보다 구조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Leave a Reply

Back To Top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