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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낙태권 폐지 초안 유출, 고조되는 갈등

< Illustration by Jiyun Kim >

[객원 에디터 3기/김유현 기자]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정치전문매체가 공개한 문서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임신 6개월 전까지는 미국 여성이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도록 한 1973년 ‘로 대(對)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49년 만에 뒤집어야 한다는 미국 연방대법원 의견서 초안이 유출된 것이다. 워낙 미감한 사안인 낙태 문제를 두고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을 중시하는 진보 진영과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 사건은 텍사스주를 떠도는 순회서커스단의 매표원 여성이 원고인 사건이다. 그녀는 어느 날 동네 불량배들에게 납치되어 윤간을 당한 후 임신을 하게 되었고 낙태를 위해 병원을 찾아갔지만 낙태를 금하는 텍사스주의 법 때문에 거절당하였다. 의사는 대신 소송을 제기하라며 변호사를 소개해주었고 결국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오게 됐다. 이 과정에서 로(Roe)는 출산을 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일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은 계속되었다.

유출된 초안이 확정될 경우, 보수 성향 지역에서 여성의 낙태를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입법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21년 9월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이유 불문하고 원천적으로 금지한 이른바 ‘심장박동법’을 시행한 텍사스주를 비롯해 플로리다주와 오클라호마주 등이 강력한 처벌 규정을 동반한 낙태금지법을 도입하고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3.3.3 법칙이다. 임신 초기 3개월은 여성의 권리를 더 우선시하며 여성의 독자적 결정으로 낙태가 가능하다. 임신 4~6개월은 산모의 건강에 위험이 있을 시 낙태가 가능하다. 이후 임신 6개월 이상이 되면 태아가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통증을 느끼므로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여 낙태가 어렵다. 이러한 결정은 미국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되고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 (Due Process Clause)에 의거하여 임산부는 낙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는 판결이다.

대법원 결정문 초안 전체가 유출된 것은 유례가 없을뿐더러 낙태권은 진보 보수 갈등의 핵심 쟁점이기 때문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유출된 판결문이 진본은 맞지만, 최종 판결은 아니다”라며 유출 경위와 진위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공동성명에서 “대법원은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미국인에게 50년 내 가장 큰 권리 제약을 가하려 한다. 로 대 웨이드를 뒤집으려는 시도는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3일(현지시각) 성명에서 낙태는 “여성의 선택권”이고 “근본적 권리”라며 기존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혀서는 안 된다고 뜻을 비췄다. 미 대통령이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한쪽을 옹호하는 입장을 밝힌것은 이례적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집권 민주당은 낙태권을 추가로 보장하는 법 입법에 나설 의사를 나타냈고 이에 야당 공화당은 “태아의 생명도 존중해야 한다”라며 초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해 CNN 등 언론에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 정치권의 변동을 예측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바이든 정권이 진보 지지층을 다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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