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글로벌]리튬 패권 경쟁 – 리튬 부국들이 직면한 딜레마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신승우 기자] 2023년 1월, 세계 최대 리튬 매장국 볼리비아는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이 주도하는 컨소시엄과 10억 달러 규모의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25년 볼리비아 법원은 이 계약의 중단을 명령했다. 외국 기업에 과도하게 유리한 조건이라는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세계 최대 리튬 매장지를 가진 나라에서 벌어진 이 사태는 오늘날 리튬 산유국들이 직면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리튬은 ‘21세기의 석유’로 불린다.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을 따라 형성된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그리고 칠레의 ‘리튬 트라이앵글’은 2023년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56%를 보유하고 있다. 볼리비아 2,100만 톤, 아르헨티나 2,000만 톤, 칠레 1,100만 톤으로 전 세계 1위에서 3위를 이룬다. 4위는 약 800만 톤의 호주로 큰 격차를 보인다.

그러나 매장량과 생산량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다. 연간 생산량 기준으로 오히려 호주가 약 8만 톤으로 세계 1위이며, 칠레가 2위, 아르헨티나는 4위에 머물러 있다. 세계 최대 매장국 볼리비아의 생산량은 공식 통계상 연간 1,000톤 미만에 불과하다.

세 국가는 극단적으로 다른 전략적 선택을 했다. 볼리비아는 자원 민족주의로 외국 자본을 배제했지만 생산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칠레는 외자 유치로 2위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환경 파괴와 사회적 갈등이라는 자원의 대가를 치르며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아르헨티나만이 전면 개방으로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렸지만, ‘자원 식민지’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이전 칼럼에서 다룬 ‘자원의 저주’가 리튬 시대에 되풀이되고 있다.

볼리비아: 자원 민족주의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은 해발 3,600미터 고원에 펼쳐진 세계 최대의 소금 평원이다. 이곳에는 최소 2,100만 톤의 리튬이 매장돼 있다. 이론적으로 볼리비아는 리튬 시대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22년 기준 생산량은 약 600톤 수준에 그쳤고, 2024년 볼리비아 정부 발표 기준으로도 약 2,400톤에 불과해 세계 통계에서 의미 있는 수치로 보이지 않는다.

세계 최대 매장국이 생산량에서는 미미한 이 상황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그 해답은 볼리비아의 역사와 정치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15세기 말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땅에 들어온 이후, 볼리비아는 포토시 은 광산을 중심으로 300여 년간 가혹한 수탈을 당했다. 독립 이후에도 주석, 천연가스 등의 자원은 해외 기업들이 개발했고, 그 혜택은 대부분 국외로 빠져나갔다. 이러한 경험은 볼리비아인들에게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았고, 자원에 대한 외국의 접근을 ‘수탈’로 인식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2006년에 집권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러한 정서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그는 “리튬은 볼리비아 국민의 것”이라는 명확한 자원 민족주의 노선을 택했다. 2008년 리튬 산업을 국유화하고 국영 기업 YLB를 설립해 리튬 생산과 개발을 독점시켰다. 외국 기업은 최대 49%까지만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그는 리튬 채굴부터 가공, 나아가 전기차 제조까지 볼리비아 국내에서 완결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상은 아름다웠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YLB는 대규모 리튬 추출에 필요한 기술, 경험, 자본을 모두 갖추지 못했다. 더구나 우유니의 리튬은 지하 염수 형태가 아닌 고체 소금층에 포함돼 있어 추출 공정이 훨씬 복잡하다. 리튬 농도 역시 약 0.035%로, 칠레 아타카마 염호의 0.15%에 비해 현저히 낮다. 마그네슘 함량이 높아 고순도 리튬을 얻기도 어렵다. 여기에 우기(12월~3월)에는 사막이 물에 잠겨 작업이 중단된다.

기술적 난제를 해결할 외국 기업의 참여를 제한한 대가는 컸다. 약 20년에 걸친 개발 시도에도 불구하고, 2023년까지 연간 생산량은 600톤 수준에 머물렀다.

최근 들어 볼리비아도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외화 보유액이 고갈되자 실용주의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2023년 1월 CATL이 주도하는 CBC 컨소시엄과 1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25년 포토시 지방법원은 이 프로젝트와 러시아 국영 기업 로사톰의 리튬 개발 사업에 대해 중단 명령을 내렸다. 계약 조건이 외국 기업에 과도하게 유리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갈 경제적 이익이 불충분하다는 이유였다. 사업은 다시 불확실성에 빠졌다. 자원 민족주의의 이상은 분명하지만, 기술과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칠레: 환경과 개발의 줄다리기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이다. 어떤 지역은 수백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바로 이 극단적인 건조함이 리튬 생산의 축복이 되었다. 아타카마 염호의 지하에는 약 1,100만 톤의 리튬이 매장돼 있으며 농도도 앞서 설명했듯이 높다. 칠레는 리튬 트라이앵글 국가 중 가장 먼저 리튬 상업화에 성공한 국가였다. 1979년 피노체트 군사 정권은 리튬을 전략 자원으로 지정했지만 동시에 외국 기업에 특별 채굴 계약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1984년 미국 기업 Albemarle, 1993년에는 칠레 중국 합작기업 SQM이 아타카마 사막에서 대규모 생산을 시작했다. 이 두 기업은 칠레 국영 개발청(CORFO)으로부터 채굴권을 임대받고 사용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칠레의 리튬 생산량은 1990년대 연간 수천 톤에서 2010년대 연간 2만 톤을 넘어섰고, 2018년에는 세계 2위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리튬 생산에는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리튬 1톤을 생산하는 데 약 200만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아타카마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인데, 지하수를 끌어올려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리튬을 추출하다 보니 지하수가 급격히 고갈되기 시작했다. 오아시스들이 말라가고, 플라밍고와 같은 안데스 지역 동물들의 서식지가 파괴되었다. 특히 이 지역의 원주민인 아타카메뇨는 생존 기반 자체를 위협받았다. 그들은 주로 농업과 목축으로 살아가며 물 없이는 불가능하다. 2010년대 중반부터 환경단체와 원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칠레 법원은 여러 차례 리튬 채굴 사업에 중지 명령을 내렸다. 2022년 집권한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는 리튬 정책을 전면 재검토했다. 환경 보호를 강화하고, 국영 기업 Codelco 가 51%의 지분을 갖는 공기업 민간 합작 모델을 제시했다. 리튬의 부분적 국유화였다. 환경을 보호하고, 국가가 리튬 산업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의도는 분명히 좋았으며, 정당성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외국 기업들의 투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Albemarle은 5억 달러 규모의 증설 계획을 보류했고, SQM도 신규 프로젝트를 연기했다. 더 큰 문제는 기존 생산마저 환경 규제 강화로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 사용량을 줄이려면 새로운 직접 추출(DLE)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데, 이는 아직 상업적으로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그 결과 칠레는 세계 2위 생산국의 지위는 유지하고 있으나, 시장 점유율은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다. 호주와 중국이 기술력을 앞세워 질주하는 동안, 칠레는 환경 보호와 경제 개발이라는 ‘자원의 딜레마’에 빠져 성장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칠레의 사례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자원 개발과 환경 보호, 경제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맞출 것인가? 선진국들은 자국의 환경 기준을 강화하면서, 개발도상국들에는 빠른 자원 공급을 요구한다. 이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칠레는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외국 자본 유치의 대가

아르헨티나 북서부 안데스산맥에는 수십 개의 염호가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약 2,000만 톤의 리튬이 매장돼 있어 볼리비아에 이은 세계 2위 규모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아르헨티나는 이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만성적인 경제 위기와 초인플레이션, 정권 교체 때마다 바뀌는 정책이 투자자들을 주저하게 했기 때문이다. 2001년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 이후 아르헨티나의 국가 신용도는 바닥을 쳤고, 외국 기업들은 투자를 꺼렸다. 설상가상으로 아르헨티나는 연방제 국가여서 광물 자원에 대한 권한이 주 정부에 있다. 각 주마다 다른 세제와 규제를 적용하다 보니 일관된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어려웠다.

이 절박함이 돌파구를 만들었다. 2015년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가 집권하면서 대대적인 경제 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리튬을 전략 자원으로 지정하되 외국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이중 전략을 택했다. 인센티브는 파격적이었다. 리튬 채굴에 대한 사용료는 3% 수준으로, 칠레(4~7%)나 볼리비아(7%)보다 훨씬 낮았다. 환경 규제도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외국 기업은 100% 지분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이익을 자유롭게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의 리튬 생산량은 2020년 6,000톤에서 2024년 7만 1,000톤으로 증가해 세계 4위로 도약했다. 정부는 2032년까지 리튬 수출액이 약 113억 달러(16조 6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아르헨티나는 가치사슬의 최하단에 머물러 있다. 리튬을 채굴해 탄산리튬, 수산화리튬, 염화리튬 등으로 1차 가공한 뒤 한국, 중국, 일본으로 수출할 뿐이다. 배터리 생산이나 전기차 산업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부가가치의 대부분은 외국 기업이 가져간다. 포스코의 옴브레 무에르토 프로젝트에서 생산된 수산화리튬은 한국으로 운송돼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의 배터리 공장에서 사용된다. 리튬 원료 수출국으로서 막대한 물량을 공급하지만, 정작 배터리와 전기차 생산에서 발생하는 고부가가치는 한국과 중국이 독점하는 구조다. 2023년에 집권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더욱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더 완화하고 리튬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르헨티나는 세계의 리튬 공급처가 될 것”이라는 그의 선언에 대해 비판자들은 ‘자원 식민지로 가는 길’이라고 경고한다. 20세기 라틴아메리카가 커피와 설탕을 헐값에 수출하며 원료 공급지로 전락했던 역사가 21세기 리튬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다.

자원의 저주인가 축복인가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는 같은 자원을 두고 다른 선택을 했다. 볼리비아는 자원 민족주의로 외국 자본을 배제했지만, 기술과 자본 부족으로 저조한 생산력을 보인다. 칠레는 한때 자본 유치로 성공했지만, 환경 보호와 국유화 강화로 인해 경쟁력을 위협받았다. 아르헨티나는 가장 급진적인 개방으로 생산량을 늘렸지만, 가치사슬 최하단에 머무른다는 점이 ‘자원 식민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직면했다. 세 나라 모두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나 모두 문제에 부딪혔다. 이는 3회 차 칼럼의 석유로 인한 ‘자원의 저주’가 21세기 리튬의 ‘자원의 저주’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석유 시대의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가 겪었던 문제들이 리튬 시대에도 반복되고 있다. 자원은 그 자체로 축복도, 저주도 아니다. 그것을 다루는 국가의 전략이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리튬 트라이앵글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경쟁을 살펴볼 것이다. 미국, 중국, 유럽. 그리고 한국이 왜 남미의 소금 사막을 주목할까? 리튬 패권 경쟁은 21세기 국제질서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가? 강대국들 사이 우리나라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가? 자원 공급국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을 둘러싼 자원 수요국들의 이야기를 해볼 것이다. 

[위즈덤 글로벌] 국제 사회에서의 권력은 역변하는 정치, 경제, 외교적 요소로 인해 형성됩니다. 본 칼럼 시리즈는 글로벌 권력 구도부터 자원 외교, 금융 관계, 안보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국제 정세를 조명합니다. 시대별 주요 사건과 현상들을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복잡한 경제, 정치외교적 현상을 쉽게 전달하고,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위즈덤아고라 신승우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 칼럼을 통해 정치, 경제, 외교의 연관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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