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라이벌,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Illustration by Jimin Lee

by Jihoo Ha (Dubai International Academy Year 9)

르네상스 시대는 유럽 역사에서 중세 시대를 지나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근대 시대를 말한다.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부흥시키자는 사상을 기반으로 한 혁신운동이다. 중세 시대는 이민족의 침입과 잦은 전쟁, 흑사병 등 많은 고통이 있었으며, 무역은 끊기고 인간의 창의력은 사라졌다. 이로 인해 문화와 예술, 과학의 발전이 없는 암흑의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아픔 속 종교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커졌다. 하지만, 지중해 무역이 다시 시작되던 14세기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더 독립적인 사상을 가졌으며, 몇몇 부유한 가문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들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 라이벌이었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라파엘로 산치오는 유명한 예술가들이었다. 두 사람은 율리오 2세의 초대로 로마에 도착해, 시스티나 성당에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미켈란젤로는 유명한 조각가였다. 25세에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피에타(성모 마리아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조각상)를 만들었고, 인체 해부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이 작품 통해 사실성 있는 사람의 몸과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자신의 무덤 조각을 부탁했지만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무덤 스케치에 감탄하여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받은 미켈란젤로는 조각이 아닌 회화를 부탁했다는 이유로 피렌체로 도망쳤다. 율리오 2세는 그런 미켈란젤로에게 편지를 보냈고, 미켈란젤로는 다시 돌아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프레스코화를 그리기로 결정했다. 

프레스코 화는 회반죽 벽에 그려지는 벽화 기법으로 먼저 석회 반죽을 만들고, 밑그림을 그린다. 그다음에, 검은색 가루를 발라 스케치를 벽면에 넣은 다음, 마르기 전 채색을 해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21미터나 되는 천장 높이를 닿을 수 있게, 아치형의 계단인 비계를 사용했다. 그가 그린 프레스코화는 해와 달과 초목의 창조, 빛과 어둠의 창조, 아담의 창조 등으로 채워졌다. 16세기에는 성당에 누드화가 금지되었는데, 율리오 2세는 인체의 자연스러움과 움직임을 중요시한 미켈란젤로에게 누드화를 허락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작품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피렌체의 시민봉기에서 시민군 편을 든 자신이 동지들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으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신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천국과 지옥에 놓는 무려 400명이 등장하고, 13.7미터가 되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는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지난 시간을 후회하며 자기 자신을 흉측하게 그렸다.

미켈란젤로보다 여덟 살 적은 라파엘로도 르네상스 미술의 이상인 조화, 균형, 절제의 미덕을 가장 잘 구현하기로 유명한 화가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그리스의 지식인들과 자신이 등장하는 ‘아테네 학당’이다. 그도 율리오 2세의 초대로 시스티나 성당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라이벌 관계는 조르조 바사리가 기록해놨다. 밤에 몰래 라파엘로는 성당에 들어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봤는데, 그가 그린 사람의 인체를 본 라파엘로는 감동받았고, 그 모습이 떠나지 않았던 그는 이후 ‘보르고 화재’를 그렸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모든 사람들이 근육이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어서 현실적이지 않았다.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미술을 못 따라간다는 걸 알았고, 아류 작가 혹은 이인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라파엘로는 자신 만의 특유의 표현기법을 찾았다. 특히, ‘성 베드로의 해방’은 빛과 어둠이 표현이 잘 되어, 자연스럽고 사실성이 빛나는 작품이다. 천사에게서 나오는 빛이 병사들의 투구에 비치고, 병사가 들고 있는 횃불도 다른 병사의 갑옷에 비치는 빛의 반사를 이용해 사실성을 강조하면서 그만의 기법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라파엘로의 마지막 작품인 ‘그리스도의 변용’은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 달라고 하는 엄마를 보여준다. 37세의 어린 나이에, 열병으로 사망하며 마지막 작품은 제자들이 마무리해줬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는 성격과 미술적인 표현기법에 차이가 있었다. 라파엘로는 사교성이 좋은 성격으로 늘 조수들과 같이 작업을 했고 미켈란젤로는 반대로 혼자 일하는 것을 선호했다. 미켈란젤로는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로 같이 미술을 하기 위해 초대한 조수들의 그림을 보고 실망하여 쫓아냈다. ‘라파엘로의 로지아’는 한쪽에 벽이 없는 복도 같은 방이다. 이 방의 천장은 62개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는데 라파엘로가 직접 그린 작품은 없고, 자신이 뽑은 장인들의 작품이 있는 곳이다. 그는 그림은 그리지 않고, 이 사람들을 지시하고 아이디어를 냈다. 이 두 명의 라이벌은 비슷한 점은 있었다. 둘 다 자신의 작품들의 통해 인간의 감정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미켈란젤로는 ‘아담의 창조’를 통해 신과 인간은 동등하다는 르네상스의 정신을 보여주었고, 라파엘로는 그리스도의 변용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전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유명한 작품인데, 원래의 스케치에서는 계단 발치 부분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완성된 그림에는 그 계단에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보인다. 라파엘로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해서 자신만의 미술의 표현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준 라이벌, 미켈란젤로한테 감사하여 그의 모습을 그려 넣은 것이다. 

르네상스는 근대의 정신이 태어난 시대다. 근대의 정신은 사람들을 신에게 덜 의존하고 이성이 중심이 되어 지금의 과학과 기술들이 발전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예술을 통해 이 정신의 시작점이었고 현재 과학을 기반으로 한 모든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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