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약이 되는 대변이식: 말기 암환자에게 새 희망이 될까?
[객원 에디터 8기 / 정동현 기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 개똥처럼 일상에서 흔하게 버려지는 것도 막상 필요해서 찾으면 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당연히 속담일 뿐 어떻게 똥을 약으로 썼을까 싶지만, 허준의 유명한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보면 흰 개의 똥으로 어혈을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래도 약재가 귀하고 치료가 쉽지 않았던 과거에 치료 목적으로 다양한 재료와 방법들이 사용되었고, 이러한 방편으로 개똥마저 실제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흔하고 가치 없어 보이던 똥이 현대 의학에서 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전망이다.
지난 8월 14일 셀 호스트 앤 마이크로브(Cell Host & Microbe: 셀의 자매지)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와 광주과학기술원(GIST) 연구팀이 대변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을 통해 암 환자들에게서 면역항암제 치료 효과가 다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연구는 면역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13명의 전이성 고형암 환자에 대한 임상연구로 면역항암제 치료 효과가 좋은 환자의 대변의 미생물을 이식한 결과 절반의 환자에게서 치료 효과가 다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항암제에 내성이 생겼다는 것은 항상 치료의 진전이 없는, 암 말기 환자들을 의미한다. 연구에 따르면 13명 중 1명은 치료가 됐으며, 5명은 암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안정적인 상태를 보였다고 밝혔다. 해당 임상 연구는 세계 최초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대변 이식 전 13명의 환자에게 경구 항생제를 투여해 기존에 환자의 장내 미생물을 제거하였다. 이후 공여받은 건강한 대변에서 채취한 미생물만을 분리해 대장 내시경을 통해 환자에게 이식하였다. 추가로 항암 치료와 함께 6∼8주마다 컴퓨터 단층촬영(CT)을 병행하여 암 상태를 추적 관찰하였다. 결과적으로 대변이식 후 1명의 전이성 간암 환자에서 암 크기가 48% 감소하여 부분 관해(암이 부분적으로 줄어든 상태)가 나타났다. 또한 5명의 환자에게서 항암 치료 효과가 다시 나타났으며 더는 암이 진행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대변 이식 후 장내 미생물 구성 변화 분석 통해 대변이식이 장 내 환경을 개선시켜 면역항암제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변 이식의 치료 효과를 높이는 유익균을 새롭게 발견하였고 ‘프레보텔라 메르데 이뮤노액티스(Prevotella merdae Immunoactis)’로 이름 지었다. 장내 미생물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입증하였다.
대변이식의 진화
대변이식은 2012년 2월 호주와 미국 공동 연구팀의 ‘네이처 미생물학회지(Nature Microbiology)’ 연구 발표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토마스 보로디(Thomas J. Borody) 호주 소화기질환센터 센터장과 알렉산더 코럿(Alexander Khoruts)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정제해 위막성 대장염(pseudomembranous colitis) 환자의 장에 이식했는데, 90%가 완치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Clostridium difficile, 대장의 가장 긴 부분인 결장에 감염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에 눌려 증식하지 못했던 유익균이 활동할 수 있는 장 내 환경을 만들어 면역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후 2022년 12월에는 스위스 페링(Ferring)의 리바이오타(Rebyota)가 미생물총 이식치료제로서 미국 FDA의 첫 승인을 받았다. 대변 미생물이 그 치료 효과를 입증받게 된 것이다.
지난 2022년 노르웨이 스토드 병원(Stord Hospital)의 맥도 엘살히(Magdy El-Salhy) 교수는 대장염 환자들의 대변이식 후 장기 추적 관찰 연구에서 3년 차 반응률이 71.8% 정도였으며 특별한 부작용도 발견되지 않아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2012년 호주와 미국 공동연구의 첫 수술이 있은지 십 년이 지나 나온 노르웨이 팀의 연구는 그 사이에 대변이식술이 안정궤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국가 ‘대변은행’ 설립 필요성
대변이식은 염증성 장질환 장애 개선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면역력, 암 연구로까지 연구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장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유산균과 같은 유익균과 더불어 유해균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균들 사이의 균형이 무너져 유해균이 과다해질 경우 장 내 균형을 잃게 되어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게 된다. 면역세포의 약 70~80%가 장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을 수 있는 대변이식은 다양한 질병 치료에 희망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변이식은 많은 임상을 통해서 안전성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건강한 대변의 공급과 관리가 현재 겪는 문제 중 하나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중국 등에서는 이미 대변은행이 운영 중에 있으며, 한국에서도 혈액은행, 정자은행과 같은 대변은행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013년 미국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 대변은행 “오픈바이옴(OpenBiome)”은 설립 초기에 건강한 대변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회당 약 40달러를 지불한다고 알려졌다. 바이오옴 홈페이지에 따르면 기증을 위한 건강검진에 통과하는 지원자는 전체의 3%에 불과할 정도로 그 기준이 까다롭다고 알려졌다. 또한 2013년부터 미국 50개 주와 해외 1,100개 이상의 의료 기관과 협력하여 40,000개 이상의 치료법을 제공하였고, 미국에서의 대변이식 관련 치료 중 혹은 완료된 실험의 34% 정도가 바이오옴을 통해서라고 밝혔다.
이러한 대변은행의 필요성과 더불어 제대혈처럼 자신의 대변을 채취해놓아야 한다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2022년 하버드 의대 스콧 와이즈(Scott Weiss)와 리우양유(Yang-Yu Liu)는 자가 대변이식(autologous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에서 기증자가 나이가 더 젊고 건강할 때 대변 샘플을 수집한 다음, 그 샘플을 미래의 치료를 위해 보관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보관된 대변은 미생물 군집을 회복, 회춘(rejuvenating)시킬 수 있으며, 비만에서 천식에 이르는 다양한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바야흐로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는 한국 속담이 적절하게 들어맞는 시대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