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어떻게 ‘행복지수 아시아 1위’가 되었나
대만 ‘열린 정책’으로 신뢰와 자유 확대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선정
[위즈덤 아고라 / 전시현 기자] 지난 3월 발표된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대만은 중동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올해 대만의 행복지수는 6.512점으로 전체 146개국 중 26위였다. 중국(72위)은 물론 일본(54위), 한국(59위)도 멀찌감치 따돌렸다. 대만은 2018년 이후 4년째 높은 행복도를 유지하고 있다.
유엔 행복보고서는 행복도를 설명하는 지표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 구매력 평가 기준), 사회적 지지(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줄 사람 여부), 기대수명, 삶에서의 선택 자유, 관용(지난 한 달 동안 기부 여부), 부패 인식(부패가 만연하다고 생각하는지 여부) 6가지를 이용한다.
대만은 이 가운데 사회적 지지와 관용, 선택의 자유 3가지 항목에서 한국보다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행복 조사와 함께 실시하는 갤럽의 긍정·부정 감정 조사에서도 하루 전에 웃거나 즐거운 일, 흥미로운 일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를 평가하는 긍정 정서에서 대만은 41위로 한국(117위)을 크게 앞섰다.
처음부터 대만이 아시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 2013년 행복 보고서에선 한국과 대만이 둘 다 행복지수 6.2점대로 세계 40위권이었다. 그러나 이후 두 나라의 방향이 엇갈렸다. 한국은 행복지수가 크게 떨어져 순위가 내려간 반면 대만은 지수와 순위가 계속 상승세를 탄 것이다.
2013년,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며 중국은 “대만 독립은 죽음의 길”이라며 대만을 향한 지속적인 협박을 시작하였고,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압박도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대만인들의 행복지수가 상승한 비결은 무엇일까?
국회 미래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2016년 국민당에서 민주진보당으로의 정권교체였다. 보고서는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청년들이 대만섬을 귀신이 들린 저주의 섬, 즉 귀도라고 자조할 정도로 대만인들 사이에선 사회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이잉원 총통 집권 이후 최저임금법 등 친서민 정책과 반도체와 같은 핵심산업의 전략적 육성을 통해 경제와 사회의 활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여 대만인들의 행복지수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종호 센터장은 “6가지 행복 지표의 변화를 연도별로 살펴본 결과 대만인들의 행복지수 상승을 이끈 것은 물질적 생활 수준과 사회적 지지, 선택의 자유 3가지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높은 경제성장에 따른 생활수준 향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지난 2년 동안 사상 최장, 최고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한국이 2020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전 세계의 경제가 출렁이는 사이 대만은 2020년 3.1%, 2021년 6.28%로 계속해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세계 1위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가 이끈 반도체 수출 호조가 대만의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이에 힘입어 대만은 1인당 GDP에서도 조만간 한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만의 1인당 GDP는 3만 3775달러로 한국(3만 4801달러)에 매우 근접한 수치이다.
코로나 확산 초기에 성공적인 강력한 코로나 방역 정책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한껏 높아진 것도 한몫을 했다. 특히 마스크 공급 대란이 일어나자 대만 정부는 재빨리 디지털 마스크 배급 시스템을 만들고 이 시스템에 시민 개발자가 만든 ‘마스크 맵’을 결합시켜 코로나19 팬데믹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또한 ‘열린 정부’를 내세운 차이잉원 정부의 투명한 정책과 소통으로 인해 신뢰가 상승하면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였고, 이는 외출 자제 등으로 호응했다. 시민과 정부가 하나로 되어 연대를 형성하였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의 최악의 효과를 피할 수 있었다.
개혁적 조처를 통한 사회통합과 자유의 확대도 대만인들의 행복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2019년, 대만은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면서 젠더와 소수자 등 정체성 정치에서도 개방적인 태도로 시민들의 사회적 자유를 확대했다. 또한 대만 정부는 높은 경제 성과를 토대로 사회안전망 강화에 힘써 최저임금, 육아수당 인상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대만의 행복 상승의 비결은 물질적 생활 수준의 향상,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비율의 향상,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응답한 정도의 상승으로 볼 수 있다.
보고서는 대만이 밖으로 중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내부의 민주주의와 자유 실현을 강조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2021년 미국의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세계 자유지수에 따르면 대만의 자유 지수는 세계 7위에 올라 있었고, 올해 2월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매긴 ‘2021년 민주주의 지수’에서는 세계에서 8번째로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로 선정되었다.
또한 보고서는 한때 귀신이 들리고 저주를 받은 섬이라는 뜻인 ‘귀도’로 자조하던 대만의 행복도가 상승한 것은 요새 청년세대에서 ‘헬조선’으로 불리는 한국 사회에 시사점을 던진다고 강조했다.
허종호 센터장은 “코로나19의 통제에서 벗어나 일상생활로 복귀하고 있는 지금, 한국의 행복도 향상을 위해서는 세계적 경기 침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통합과 자유 확대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