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토양에서 식물 재배 성공…식량 생산 첫걸음
달 토양 재배 실험 사상 첫 성공
발육 속도 지구 토양보다 느려
[위즈덤 아고라 / 김규인 기자] 달에서 가져온 흙으로 사상 처음 식물을 재배한 실험 결과가 나왔다. 이번 실험으로 달은 물론 달 너머 다른 행성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산소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16일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를 통해 아폴로 우주선에서 가져온 달 토양으로 애기장대 식물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애기장대는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흔히 보이는 식물로 크기가 작고 어디서나 쉽게 자라 식물 재배 실험에 널리 사용된다.
지금까지 달 토양과 환경을 모방한 흙이나 온실에서 작물을 재배한 적은 있지만 실제 달 토양에서 재배 실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9년엔 중국의 창어 4호가 달에 착륙해 목화씨의 싹을 틔우는 데 성공한 바 있으나 착륙선 내 특수 용기에서의 실험이었다.
이번 실험은 11년의 기다림 끝에 진행됐다. 연구진은 달 토양을 이용한 재배 실험을 위해 11년 동안 세 번에 걸쳐 나사에 달 표토 임대를 신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다 지난해에 비로소 허락을 받았다.
표토(Regolith)는 행성 내의 암석을 덮고 있는 불균일한 겉흙(topsoil)을 일컫는 말이다. 대략 토양의 상부 5cm에서 20cm 정도를 덮고 있는 흙으로 먼지 및 부서진 돌조각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많은 유기물질 등을 포함하고 있어 생물학적으로 활발하게 토양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그래서 지구의 표토에서는 식물이 자라나며 식물에게 각종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표토는 탄소 저장이 가능해 기후변화를 완화하며, 미생물의 분해 활동으로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등 환경적으로도 중요한 역할도 수행한다.
NASA는 6번의 달 착륙 임무를 통해 약 382kg 규모의 달 표토 및 암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서 연구진은 아폴로 11호(1969년), 12호(1970년), 17호(1972년)의 토양 12g을 받았다.
연구진은 골무 크기의 화분 12개에 각각 0.9g의 달 토양을 5mm 깊이로 넣은 뒤 애기장대 씨앗을 3~5개씩 심고 영양액을 주입했다. 또한 대조군으로 달의 토양과 유사한 물질인 화산재에 같은 씨앗을 심었으며 최소 48시간 정도 지켜보았다.
연구진은 “씨앗을 심고 나서 이틀 뒤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으며 달 토양과 대조군이 모두 6일째까지 똑같은 발육 상태를 보였다”라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안나-리사 폴 교수는 “이는 달 토양이 식물 발아와 관련한 호르몬과 생체 신호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걸 말해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며칠 후 달 토양의 식물이 화산재 안에서 키우고 있는 식물에 비해서 발육이 저하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뿌리는 더 뻗지 못했으며 잎도 더 작았다. 잎에는 스트레스의 징후로 볼 수 있는 붉은 반점도 나타났다. 이를 통해서 달 토양 안에서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채취한 흙의 위치에 따라 식물의 성장 양태가 달랐다는 점이다. 얕은 곳에서 채취한 토양(아폴로 11호), 즉 태양풍에 더 많이 노출된 토양에서 자란 식물이 스트레스 징후를 더 많이 보였다.
달 토양은 미생물이나 수분이 없다는 점에서 지구의 흙과 매우 다르다. 또 지구와 같은 대기가 없어 우주에서 날아오는 입자들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 그러나 토양을 이루는 기본 구성물질은 같다는 점에서 적절한 물과 빛, 공기 조건을 갖춰줄 경우 식물 발육과 성장의 터전 역할을 할 여지는 있다.
이번 실험 성공을 근거로 달 현지에서도 토양을 이용한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달 토양 특성과 재배 최적화 기술에 대한 더 세밀한 연구가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연구의 공저자 중 한 명인 롭 펄 박사(Dr. Rob Ferl)는 위 결과가 달의 토양이 식물 발아 관련 호르몬 및 여러 신호들을 완전히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또한, 위 결과에 관해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달 토양 안에서 식물이 자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긍정적인 결과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