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만으로는 부족한 시대, 실패를 보는 새로운 시선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1만 시간의 법칙과 성적 사이의 진실

[객원 에디터 9기 / 태윤진 기자] “열심히 하면 잘될 거야.” 정말 그럴까? A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밤새워 문제집을 반복해서 풀고, 밥도 굶은 채 책상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수학 성적은 늘 3등급에서 멈췄다. 1만 시간을 투자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까?

한국 사회에서는 ‘노력=성공’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무쇠도 갈면 바늘 된다.”와 같은 속담은 노력의 가치를 강조해 왔다. 이러한 신념은 가정, 학교, 사회 전반에서 오랫동안 교육의 핵심 원리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21)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68.3%가 ‘노력하면 언젠가 보상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A씨 역시 그 말을 믿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도 “내가 문제집을 3번 볼 때, 남들은 10번을 보겠지”라며 다시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결과는 늘 비슷했다.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자존감만 내려갔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이다. 하지만 이 법칙이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잭 햄브릭 미시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88개 연구, 1만 1천여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공부에서 노력의 영향력은 단 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심지어 음악(21%)이나 게임(26%)보다도 낮았다. 노력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이다.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노력하는 능력’ 자체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연세대 의과대학 김영훈 교수는 저서 『노력의 배신』에서 “성실성, 체력, 집중력 등 노력을 지속하는 능력은 타고난 기질과 성격의 영향을 받는다”라고 설명한다. 즉, 같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더라도 누군가는 더 빠르게, 더 깊이 학습할 수 있는 구조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부족한 상황을 무조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학업 성취에는 가정의 경제력, 교육 접근성, 부모의 학력, 학습 환경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이혜정 교수는 강연에서 “지나치게 노력 중심적인 담론은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안겨줄 수 있다”라며, “각자의 속도와 리듬에 맞는 학습 설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2022, 서울교육포럼).

최근 교육 심리학 분야에서는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인식하며 학습 전략을 조정하는 능력이다. 학습자의 자기 진단 능력, 선호하는 학습 방식, 관심 분야 중심의 탐구는 단순한 반복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예컨대, 시각 정보를 선호하는 학생은 도표와 이미지 중심의 자료에서 더 큰 학습 효과를 보이고, 청각 정보를 잘 처리하는 학생은 소리 내어 설명하거나 강의를 반복해 듣는 방식에서 성과가 높을 수 있다.

성공은 특정한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향성을 찾고 유지하는 과정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2023)는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성장 경로를 찾는 것이 미래 사회에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력=성공’이라는 공식을 무조건적으로 믿기보다는, 재능, 환경, 운, 성격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실패를 단순히 개인의 부족으로 해석하지 않고, 자신만의 학습법을 설계하며 장기적인 성장을 지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제는 누가 더 오래 앉아 있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자신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전략을 세우는지가 더 중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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