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네이처]냉동인간은 깨어날 수 있을까?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냉동인간 기술이 바꿀 미래와 그 안에 담긴 희망과 한계

[위즈덤 아고라 / 임지나 기자] 지금 이 순간에도 몇몇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한 직후 엄청나게 낮은 온도에서 냉동 보관되고 있다. 그들의 몸은 액체 질소 속에 잠들어 있고 가족들은 언젠가 그들이 다시 깨어나길 바라고 있다. 이 믿기 어려운 일의 중심에는 바로 극저온 보존, 영어로 cryonics라는 과학 기술이 있다. 과연 이 기술은 언젠가 진짜로 죽은 사람을 다시 깨어나게 만들 수 있을까? 

극저온 보존이란? 

극저온 보존은 생명체를 아주 낮은 온도, 보통 영하 196도 정도의 액체 질소 속에서 얼려서 보관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원래 장기나 조직, 정자, 난자, 배아 등을 보관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어떤 과학자들은 “사람 전체도 얼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냉동인간’ 개념이다. 

냉동 보존은 엄밀히 말해 ‘죽기 직전’ 또는 법적으로 ‘사망한 직후’에 시작된다. 뇌가 완전히 썩기 전에 몸을 빠르게 차갑게 만들어 미래에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 다시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부터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 문제는 단순히 얼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을 얼릴 때도 얼음이 생기면 부피가 늘어나면서 컵이 깨질 수 있다. 인간의 몸도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어 그대로 얼리면 세포가 다 터져버린다. 그래서 단순한 ‘얼리기’가 아닌 특별한 처리가 필요하다.

왜 화학이 중요한가?

사람을 냉동할 때 단순히 얼리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세포 안의 물이 얼면서 생기는 결정(얼음 결정)을 피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얼음은 물보다 부피가 커서 세포를 터뜨린다. 따라서 세포 안에 있는 물이 얼지 않게 하려면 그 물을 다른 물질로 바꿔야 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크라이오프로텍턴트(Cryoprotectant)’, 즉 ‘동결 보호제’다. 이는 화학 물질로 주로 글리세롤(glycerol), 디메틸설 폭사이드(DMSO), 에틸렌글라이콜 같은 물질이 쓰인다. 이 화학물질들은 세포 속으로 들어가 물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냉동 시에도 얼음 결정이 생기지 않게 한다. 또한, 이 물질들을 몸 안에 주입한 후 아주 천천히 체온을 낮춘다. 그렇게 하면 세포는 얼지 않고 유리처럼 단단하지만 결정이 없는 ‘비정질 고체(amorphous solid)’ 상태가 된다. 이 과정을 ‘유리화(vitrification)’라고 부른다. 

이 유리화는 화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만약 유리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미세한 얼음 결정이 세포와 조직을 망가뜨려 복원이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극저온 보존의 핵심은 바로 이 유리화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이다.

유리화의 화학적 원리

유리화는 일반적인 ‘얼음’과는 다르다. 보통의 얼음은 분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지만 유리 상태는 분자들이 매우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다. 쉽게 말해, 액체가 갑자기 너무 빠르게 식어서 고체가 되지만 그 안의 분자들은 여전히 액체처럼 엉켜 있는 상태이다. 

유리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냉각 속도가 아주 빨라야 한다. 둘째, 물이 아닌 다른 물질이 세포 속에 있어야 한다. 이 두 조건이 동시에 만족되어야 세포가 얼음 없이 고체화된다. 

여기서 중요한 화학 개념은 바로 ‘용해도’와 ‘투과성’이다. 크라이오프로텍턴트가 세포 안으로 잘 들어가려면 세포막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세포 안의 수분과 잘 섞여야 한다. 그래서 화학자들은 어떤 물질이 가장 효율적으로 작용하는지 실험을 통해 찾아내고 있다.

냉동 보존 이후,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세포가 손상 없이 얼어 있다면 나중에 다시 해동해서 살릴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까지 냉동된 인간을 다시 깨운 사례는 없다. 현재까지 해동에 성공한 사례는 배아, 정자, 난자, 일부 작은 동물(개구리, 물고기, 아주 작은 벌레 등)뿐이다. 이들 중에서도 사람처럼 복잡한 뇌와 장기를 가진 큰 생명체는 해동 도중 조직이 손상되기 쉽다. 

왜 그럴까? 바로 ‘열 충격’ 때문이다. 해동할 때 너무 빠르게 온도가 오르면 세포 내외의 온도 차이로 세포가 터지거나 단백질이 변형된다. 그래서 해동 기술이 냉동 기술만큼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동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또한 냉동 중 미세한 손상이 누적되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크라이오프로텍턴트 자체가 세포에 독성을 줄 수 있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저장될 경우 화학적으로도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뇌와 기억의 문제

또 다른 핵심 문제는 뇌의 복원이다. 인간은 몸뿐만 아니라 기억과 감정, 인격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뇌가 손상되면 깨어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예전의 그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다. 기억은 뇌 속의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방식인 ‘시냅스’의 구조에 저장된다. 이 구조가 무너지면 다시 연결된다고 해도 이전과 똑같이 복원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물리적으로 망가졌을 때 복원은 가능할 수 있지만 완벽한 복구는 어렵듯이 뇌의 연결망도 복잡해서 정확히 같은 상태로 되돌리기 매우 어렵다. 이런 점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다시 깨어나도 그건 이전의 내가 아닐 수도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재 냉동 보존되고 있는 사람들

그렇다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냉동 보존되고 있을까? 미국의 알코어(Alcor), 크라이오닉스 인스티튜트(Cryonics Institute) 같은 단체들이 사람의 시신이나 뇌만 따로 보관하고 있다. 이들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죽은 뒤 곧바로 냉동 절차를 밟는다. 그들은 미래의 과학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해서 모든 손상을 고칠 수 있고 병도 완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윤리적 문제

냉동인간 기술에는 윤리적인 문제도 많다. 우선,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죽음을 거부하고 무조건 ‘되살아나겠다’는 믿음은 어떤 의미일까?

또한, 미래의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만약 100년 후에 깨어난다면, 그 사람은 어디서 살고,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이며, 가족과 친구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인데 혼자 남게 된다면 그런 삶이 진짜로 ‘살 가치가 있는 삶’일까?

그리고 비용 문제도 있다. 냉동 보존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일부 부유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 기술인지 미래에 불평등을 더 키우는 것이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냉동 인간, 과학이 만들어낼 미래일까 아님 그저 희망일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냉동 인간 기술은 분명 화학적인 원리와 과학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포가 얼지 않도록 보호제를 주입하고, 유리화 과정을 거쳐 저장하고, 나중에 해동해서 복원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이 실험과 연구를 통해 이 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냉동된 사람을 다시 깨우기 위해서는 해동 기술, 세포 복원 기술, 뇌 복원 기술, 윤리적 동의 등 많은 요소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현재의 기술로는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냉동 인간 기술은 지금으로서는 ‘가능한 미래’보다는 ‘희망을 담은 실험’에 더 가깝다. 하지만 과학은 늘 도전을 통해 발전해 왔다.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뒤에는 생각보다 빨리 실현될 수도 있다.

언젠가, 정말로 냉동 보관된 한 사람이 눈을 뜨고 “나는 몇백 년 만에 다시 살아났어”라고 말하게 될 날이 올까? 그 대답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화학이라는 언어로 생명을 이해하고, 또 우리가 시간이라는 벽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어쩌면 그 화학적 구조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위즈덤 네이처] 화학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물질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학문입니다. 물질 간의 상호작용과 변화를 분석하여 효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화학이 만들어내는 혁신적 기술들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탐구해 봅니다. 위즈덤 아고라 임지나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로의 화학 속 혁신의 세계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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