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시드니 브레너
분자 생물학의 개척자이자 20세기 과학계의 거목
[객원 에디터 1기 / 성민경 기자]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는 분자생물학 외에도 지금도 널리 연구되는 ‘예쁜꼬마선충’을 모델 생물로 제안하였다. 그는 이를 이용해 세포의 자동 사멸 과정을 밝힌 공로로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 등 현대 생명과학 전반에 큰 공헌을 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브레너 박사는 1927년 가난한 리투아니아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식탁의 테이블보로 쓴 신문을 읽으며 독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학업 능력을 보여 15세 때 의과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으며 위트워터스랜드대에서 해부학과 의학을 석사까지 공부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때 그를 지도한 교수 중에는 ‘타웅아기’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280만 년 전 아프리카 고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를 1920년대에 연구했던 해부학자이자 인류학자 레이먼드 다트도 있었다. 하지만 브레너 박사는 세포보다 작은 생명 내부 작동에 관심을 갖고 미국 UC버클리에서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 분자생물학연구소 (MRC LMB)에 입성했다. 이후 그는 MRC에서 20년을 근무하며 1950~1960년대 탄생한 분자생물학의 기틀을 다졌다.
분자생물학은 유전물질인 DNA의 정보를 생명체가 어떻게 해독해 단백질로 합성하는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밝히는 분야다. DNA는 연속한 염기 세 개씩 묶여 정보를 구성하며, 세포는 이를 읽어 mRNA라고 하는 또 다른 유전물질에 임시로 옮기고, 이를 다시 운반RNA(tRNA)라는 유전물질을 이용해 재료인 아미노산을 공급받아 단백질을 만든다. 브레너 박사는 정보 구성 및 해독 방법을 밝히고 mRNA를 발견했으며 tRNA 발견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오늘날 ‘센트럴도그마’라고 불리는 분자생물학의 등뼈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때까지 브레너 박사는 ‘박테리오 파지’라고 하는, 미생물인 박테리아에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분자생물학의 여러 메커니즘을 밝혔다. 이후 그는 새로운 모델생명체로 눈을 돌렸다. 길이 1mm의 작은 선충인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은 302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고 단순한 근육을 지녔지만 보다 복잡한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이 동물을 신경생물학을 연구하기 위한 모델동물로 제안했고, 직접 연구에 뛰어들었다.
결국 브레너 박사는 이 동물을 이용해 세포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파괴돼 사라지는 세포사멸 현상을 연구했고, 1970년대에 존 설스턴 전 MRC 교수, 로버트 호비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과 함께 그 과정을 상세히 밝혀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 유전자가 인체 기관의 발달과 세포 자살 과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 등 각종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후 브레너 박사는 예쁜꼬마선충의 신경 302개가 만든 약 8000개의 신경망을 모두 해독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그의 동료가 결국 10여 년의 연구 끝에 완성했다. 역시 브레너 박사의 동료였던 설스턴 교수는 예쁜꼬마선충의 게놈을 모두 해독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예쁜꼬마선충은 신경과학과 유전학, 발생학의 중요한 연구 성과를 선도하는 모델동물이 됐다.
MRC 활동을 접은 이후 브레너 박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분자과학연구소 등 여러 연구소 설립과 운영에 관여하고 솔크연구소에서 연구하는 등 미국에서 주로 활동했다. 말년에는 싱가포르에 머물며 중요한 생명과학자를 초청해 강연을 열고 책을 펴내는 등 대중과학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펑찬라이 싱가포르 과학기술처 장관은 그의 타계를 2019년 4월 5일에 알리며 “분자생물학 분야의 거인이자 싱가포르 R&D의 초기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박사를 추모한다”라며 “과학계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