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조건에서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 소설 ‘파리대왕’과 계엄령을 중심으로
[위즈덤 아고라 오피니언 투고 / 박송아] 소설 파리대왕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작품이다. 작가 윌리엄 골딩은 문명이라는 얇은 껍질이 벗겨졌을 때 인간이 얼마나 야만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탐구하며,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최근의 계엄령 사건은 이 주제를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떠올리게 한다. 계엄령은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로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이성을 억압하며 폭력과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소설 파리대왕의 주제와 최근 계엄령 사례를 연결하여,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이를 제어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자 한다.
소설 파리대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스러운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작가 윌리엄 골딩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며,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야만성이 드러나는 모습을 포착했다. 소설은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갇힌 소년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초기에는 소년들이 협력하여 질서를 유지하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명적 가치가 무너지고 폭력과 본능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해간다. 이는 인간의 내재된 악마성과 문명의 취약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강렬한 은유이다.
랄프는 민주적 지도자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는 소라(조개껍질)를 통해 회의와 질서를 상징하며 문명사회의 가치를 대변한다. 반면, 잭은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지도자로, 본능적 욕망과 권력 추구를 상징한다. 그는 성가대를 통해 조직화된 무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며 문명을 야만으로 몰아간다. 피기는 지성과 이성을 상징하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외형적인 이유로 무시당하며 폭력 앞에서 무력함을 드러낸다. 이는 문명사회에서 지식인이 가지는 취약성을 표현한다. 사이먼은 진리와 선을 대변하며, 세상의 어둠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의 희생은 공동체의 구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잭의 사냥그룹의 광기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소설 속 상징 중 하나인 파리대왕(베엘제붑)은 악마적 존재를 상징하며, 인간 내면의 악마성과 공포를 의인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는 처절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인간의 타락 심리를 드러낸다. 또 다른 상징으로 조종사의 시체는 사회 질서를 수호할 제도가 부재한 상태에서 타락한 인간 본성을 나타내며, 피기의 안경은 문명을 유지하는 과학적 도구와 지식의 상징으로 폭력에 의해 파괴되며 문명의 몰락을 암시한다. 오두막과 봉화는 장기적 이익을 위한 협력의 상징이지만, 야만성과 단기적 쾌락에 의해 무시된다. 이는 현재 사회에서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과도 연결된다. 또한 괴물(파리대왕)은 실체 없는 공포와 인간 내면의 악을 상징하며, 이는 독재자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심리적 기제로도 작용한다.
현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모습이 드러난다. 최근 논의된 계엄령은 소설 속 잭의 폭력적 권력 추구 방식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여준다. 계엄 상황에서는 민주적 질서가 약화되고, 군대와 같은 조직화된 무력에 의해 강제적 통제가 이루어진다. 이는 소설에서 잭이 성가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계엄령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며, 본능적 생존 욕구와 폭력성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소설 속에서 소년들이 점차 야만화 되는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계엄령은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이는 잭이 무리를 선동하여 폭력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소설 속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아이들은 무지한 대중의 모습과 흡사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보다 당장 즐거운 일을 택하고, 사회를 나아가기 위한 절차와 제도는 아직 이해하기 어렵다. 이도 민주주의가 중우정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 속 랄프와 소라가 상징하는 민주주의는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갈등 상황에서 취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랄프는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잭의 폭력적이고 매력적인 선동 앞에서 점차 무력해진다. 이는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충돌할 때 직면하는 현실적 문제를 상징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민주적 제도가 극단적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때가 있다. 계엄령과 같은 극단적 통치 방식은 이러한 약점을 노출시키며, 폭력적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소라(조개껍질)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지만, 이를 지키는 협력과 공감이 부족하면 그 가치는 쉽게 사라진다.
소설 파리대왕은 인간 본성이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결말이 달라질 가능성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만약 소년들이 서로 협력하고, 소라를 중심으로 민주적 질서를 강화했다면, 무인도가 야만적 사회로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서도 극단적인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제도를 강화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계엄령과 같은 극단적 권력이 등장하는 것은 단지 대통령의 일방적 판단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거대 야당과의 협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어야 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는 체제이지만, 이러한 절차가 생략되면 권력이 집중되거나 남용될 위험이 크다. 실제로 계엄령이 해지되지 않았다면, 다수의 목소리가 아닌 특정 집단의 이익이 우선시 되어, 민주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제도지만, 다수결이 항상 정의롭거나 이상적인 결정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소수의 목소리가 묵살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경청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점은 파리대왕의 내용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처음부터 잭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봉화와 오두막보다 당장의 생존에 필요한 고기를 중요시했던 인물이다. 그는 투표에서 리더로 선택되지 못했지만, 다수결의 맹점으로 인해 그의 의견은 무시되었다. 만약 랄프가 잭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일주일에 한 번 사냥을 허용하는 날을 정했다면, 잭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도 질서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협의와 타협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파리대왕은 단순히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현대 사회에서 문명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소설 속 비극을 거울삼아 보다 나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