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자라는 민주주의: 북유럽 교육이 키우는 시민의식

정치 참여와 공동체의식, 청소년이 주도하는 민주사회

[위즈덤 아고라 / 장수빈 기자] 

<학생이실제 학교교육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모습: OpenAI DALL·E>

 “학교는 작은 민주주의여야 한다.”

이 말은 북유럽 교육의 핵심 철학을 잘 나타낸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발언하고 결정하며 책임을 지는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를 살아보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이 철학을 실천에 옮기며, 교실을 실제 민주 시민 양성의 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핀란드 교육부는 2004년부터 ‘시민성 교육(Citizenship Education)’ 을 초등부터 고등학교까지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시켰다. 이후 2014년, 핀란드 국가 교육과정 개편에서는 ‘학생이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핵심 역량 중 하나로 지정했다. 이는 비판적 사고, 공동체적 책임, 디지털 시민성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시민 교육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교육은 단지 교과서 속 지식 전달이 아니라, 실제 정치 참여 훈련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핀란드 헬싱키 시는 2013년부터 청소년 참여 예산 제도(Youth Participatory Budgeting)를 도입해, 만 13~17세 청소년들이 실제 예산을 기획하고 투표를 통해 사업을 선정하도록 했다. 2023년 기준으로, 이 프로그램은 전국 50개 이상의 지방정부로 확대되었다.

 스웨덴은 이미 1991년 교육법(School Act)을 통해 모든 학교에 학생 대표의 학교 운영 참여 보장을 명문화했다. 2010년 개정 교육법에선 이를 더욱 구체화해, 모든 학생은 자신의 교육 과정과 학습 환경에 대해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가지며, 학교는 이를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스웨덴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가 급식 메뉴 결정, 수업 시간표 조정, 환경 캠페인 기획 등 실질적 결정에 참여한다. 이는 형식적인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체험하는 실제 장치다.

 노르웨이는 2020년부터 시행된 ‘Renewal of Subjects’ 교육 개편안에서 시민 교육을 강화했다. 특히 사회과 과목(Social Studies)에서는 민주주의, 인권, 미디어 리터러시를 중점 역량으로 지정하고, 학생들이 실제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언론 읽기, 정책 분석, 지역 커뮤니티 인터뷰 등 실질적인 시민 행동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노르웨이 청소년의 80% 이상이 정기적으로 지역 청년의회나 NGO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통계(Eurostat, 2022)에 따르면 유럽 내 청소년 정치 참여율 1위를 차지했다.

 본 기자가 재학중인 노르웨이 학교 역시시 마찬가지이다. UWC학교의 이념을 바탕으로 북유럽의 교육철학을 접목한 UWC Red Cross Nordic에서는 학교 운영 전반에 학생이 깊이 관여한다. 기자는 학교 앰배서더이자 스튜던트 카운슬의 일원으로서 교사 선발 인터뷰 및 평가 과정에 참여하고, 학교 기부금 모금을 위한 알럼나이 네트워크 관리와 외부 학교·기관 방문, 북유럽 재단 및 Vestland Fylke 주정부 대상 홍보 활동 등을 주도해왔다. 또한, 주요 학교 행사와 프로그램 기획·운영, 기부 관련 자료 작성 및 커뮤니케이션까지 담당하며, 단순한 참여를 넘어 학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실질적인 책임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씨앗은 교실에서 자란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시민 교육을 이론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법적으로도 제약되어 있다. 2020년 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 선거권이 도입되었지만, 그에 걸맞은 학교 내 정치 교육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학생이 단지 어리고 교육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치를 금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의 발전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북유럽 교육은 투표의 원리원칙을 단순히 지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는 민주적 삶의 방식을 훈련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임을 보여준다.

이제 한국 교육도 ‘작은 민주주의’로서의 학교를 고민해야 할 때다. 학생회가 형식적인 기구에 그치지 않고, 실제 학교 운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 시민성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실천 중심의 수업이 강화되어야 한다. 참여 예산제, 모의 의회, 지역사회와 연계한 프로젝트 수업 등은 그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결정하고 성장하는 경험은 단지 민주 시민을 기르는 것을 넘어, 교육 자체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미래의 유권자를 키우는 것이 아닌, 오늘의 시민으로 학생을 존중하는 교육. 그것이 북유럽이 보여주는 진정한 민주주의 교육의 방향이다.

[위즈덤 글로벌] 글로벌 교육과 세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 북유럽에서 배우다. –  세계적으로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교육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북유럽 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는지, 청년들이 국제적인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칼럼입니다. 교육의 세계적 도전 과제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위즈덤 아고라 장수빈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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