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대서양 동맹, 전례 없는 위기 맞아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10기 / 장희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며 군사력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신뢰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7일 기자회견에서 그린란드가 “러시아와 중국의 함정으로 뒤덮여 있다”며 “국가안보 차원에서 그린란드가 필요하며, 덴마크는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린란드 확보를 위해 “쉬운 길(협상)”이 아니면 “힘든 길(군사적 행동)”로 가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유럽 국가들은 즉각 반발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영국, 덴마크 총 7개국 정상은 공동 성명을 통해 그린란드가 덴마크의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NATO 동맹국인 점을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미국이 무역협정을 통해 최대한의 양보를 요구하고 노골적으로 유럽을 약화·종속시키려 한다”며 “용납할 수 없는 새 관세가 끝없이 쌓여가며 영토 주권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까지 사용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우리는 갈림길에 있다”며 “유럽은 대화와 해결책을 선호하지만, 필요하다면 단결과 긴급성, 결단력을 갖고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17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 8개국을 지목하며 2월 1일부터 10% 관세를, 6월 1일부터는 2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그린란드 매입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조치는 NATO 동맹국에 대한 전례 없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적 발언과 위협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을 향한 전례 없는 도발”이라며 “80년 가까이 서구 연합 전선의 중심이었던 외교 동맹(NATO)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라고 평가하며 우려를 표했다.
이번 사태로 유럽은 미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 “유럽이 안보와 경제,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독립을 향한 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미국과 현재 대척점에 있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은 그린란드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동맹국들은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고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2024년 EU의 대미 상품 수출액은 약 6400억 달러로 전체 상품 수출의 21%를 차지할 정도로 유럽의 대미 의존도가 높아 실질적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흥미롭게도 그동안 트럼프를 지지해 왔던 유럽 극우 정당들조차 비판에 나섰다. AP통신은 “그린란드를 장악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이 한때 굳건했던 MAGA 진영과 유럽 극우 세력 간의 관계에 쐐기를 박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나이젤 페라지 영국 개혁당 대표는 그린란드 병합 시도를 “매우 적대적인 행위”라고 규탄했고,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도 “우리가 굴복하는 것은 역사적인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린란드에는 반도체, 전기차, 풍력터빈 등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현재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70%를 장악하고 있어,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또한 그린란드는 냉전 시대부터 나토가 러시아의 대서양 진출을 차단하고 감시하는 중추 역할을 했던 ‘GIUK 갭’의 핵심 지점이다. 미 공군 최북단 기지인 피투피크 기지도 그린란드에 위치해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은 낮지만, 관세 등 경제적 압박을 통해 협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미국과 유럽 간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대서양 동맹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