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lustration by Serin Yeo 2008(여세린) >
[위즈덤 아고라 / 신승우 기자] 2013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카자흐스탄과 인도네시아를 순방하며 야심 찬 구상을 발표했다. 고대 실크로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거대한 경제권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세계 인구의 약 63%에 해당하는 44억 명을 대상으로 하는 이 프로젝트는 개발도상국들에 인프라 발전의 기회로 비쳤다. 10년이 지난 2023년 6월 기준, 약 140여 개국이 일대일로에 참여했고 누적 투자 규모는 1조 1,750억 위안(약 185조 원)에 달한다. 중국은 이를 ‘인류 운명 공동체 구축’이라고 표현했다. 프로젝트 초기, 일대일로는 낙후된 지역의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을 제2의 마셜 플랜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현재는 참여국들의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같은 해 12월 이탈리아가 일대일로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했고,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는 99년간 중국에 조차 되었으며, 파키스탄은 266억 달러의 중국 부채로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 사례를 중심으로 부채 함정 외교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분석함으로써 국제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부채 함정 외교와 일대일로의 전략
부채 함정 외교(Debt trap diplomacy)는 강대국이 개발도상국에 과도한 차관을 제공하고, 채무국이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지면 전략적 자산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외교 전략이다. 이 용어는 2017년 인도의 저널리스트 브라흐마 첼레이니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비판하며 처음 사용했다. 그는 중국이 지정학적 목적을 위해 대출을 제공하고, 소규모 국가의 부채 부담을 활용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개념은 중국의 대외 차관 정책을 비판하는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 전략은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대출 조건에는 높은 이자율과 짧은 상환 기간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채무국이 상환하지 못할 경우, 자산 압류나 장기 조차를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확보한 자산을 경제적·군사적 거점으로 활용하며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대한다. 이 방식은 군사적 점령 대신 ‘합법적’ 계약을 활용하기에 직접적인 비난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채무국의 주권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신식민주의로 비판받고 있다. 또한 중국의 차관 계약은 다른 국제 금융기구와 달리 비공개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 채무국 국민들이 부채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거나 감시하기 어렵게 만든다.
일대일로는 이러한 부채 함정 외교를 실행하는 핵심 수단이다. 이 프로젝트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중국 연안에서 동남아시아·남아시아·중동을 거쳐 아프리카 동해안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다. 이 두 축을 통해 총 49개국을 도로, 철도, 해로 등 교통 인프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표면적으로 일대일로는 개발도상국들에게 도로, 철도, 항만, 공항, 통신망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할 기회를 제공한다. 중국 정부는 이를 개발도상국 지원과 상호 경제 협력 증진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실질적 목적은 중국 내 과잉 생산 설비의 해외 수출,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대응하는 경제권 형성, 에너지 수입으로 다변화와 해양 거점 확보에 있다. 특히 인프라 건설이 중국 기업과 중국인 노동자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현지 고용과 기술 이전 효과는 제한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참여국에 장기적 경제 자립보다는 부채 의존을 심화시킬 가능성을 내포한다.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
구체적인 실태는 파키스탄의 사례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는 일대일로의 부채 함정 외교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과다르는 파키스탄 서남부에 있는 항구 도시로, 수심이 깊고 인도양과 페르시아만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은 2013년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발표하며 중국 신장 카슈가르에서 과다르까지의 약 2,800km를 잇는 경제회랑을 구축했다. 이 프로젝트는 중국이 말라카 해협을 우회해 인도양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하려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였다. 중국은 2017년에 과다르 항구 운영권을 40년간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조건은 극도로 불평등했는데, 항만과 인근 경제자유구역 매출을 각각 91%, 85%를 중국 기업이 가져가는 것이었다. 파키스탄은 사실상 자국 영토 내 항구에서 10% 미만의 익만을 얻는 셈이다.
결과는 파키스탄 경제의 악화였다. 2023년 기준 파키스탄은 중국에 266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국 부채를 진 국가가 되었다. CPEC(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사무국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간의 양방향 투자가 약 650억 달러에 달했고, 인프라의 발전도 있었지만, 결국은 부채의 압력이 주목되었다. 파키스탄은 에너지 부문 부채 약 160억 달러의 상환 조건 조정과 40억 달러 현금성 대출의 만기 연장을 중국에 요청했다. 특히 심각한 부분은 중국 기업들이 독립 발전사업자(IPP)로 운영하는 발전소의 문제들이다. 이들은 실제 전력 생산과 무관히 용량 지급금을 받는 구조로, 파키스탄이 사용하지도 않은 전력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더욱이 심각한 점은 현지 주민들의 반발이다. 과다르 지역 주민들은 CPEC 이후로도 해결되지 않는 에너지 및 고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현실을 지적하며 “CPEC는 지역 주민에게 약속된 혜택을 가져오지 못했다”라는 구호와 함께 중국인과 중국 관련 시설을 향해 공격을 감행해 왔다. 2024년 3월에는 중국인 기술자 5명과 현지 운전사 1명이 자폭 공격으로 사망했고, 같은 달 과다르 항만 단지에 대한 공격도 발생했다. 지속되는 안보 불안은 중국의 신규 투자를 위축시켰고, 과다르 항구는 이제 ‘연결의 상징’이 아닌 ‘부채 함정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다.
발전과 부채 사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21세기 국제관계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본 칼럼의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 사례는 이를 생생히 증명한다. 막대한 투자는 인프라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막대한 부채와 경제위기, 사회적 갈등을 가져왔다. 중국은 40년에 달하는 항구 운영권을 확보했고, 파키스탄은 266억 달러의 빚 상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중국이 얼마나 치밀한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들이 얼마나 준비된 상태에서 빚과 인프라를 선택하는가의 문제를 드러낸다. 과다르 항만 개발은 발전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능력 밖의 부채 구조, 불평등한 수익 배분과 현지 주민 소외가 결합하면서 외국의 자본이 경제 개발의 동력이 아니라 갈등 악화의 동력이 되었다. 막대한 투자는 인프라를 제공했으나, 그 이면에 장기간 갚아야 하는 빚과 정치외교적 종속 위험이 함께 따라온다.
일대일로와 부채 함정 외교는 그저 ‘중국의 함정’만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투명한 계약, 현실적인 부채 관리 그리고 단기적인 인프라 유치보다는 장기적인 경제와 국가의 주권을 우선시하는 선택이다. 부채는 개발의 사다리가 될 수도, 새로운 속박의 사슬이 될 수도 있다.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가 보여주듯이, 일대일로 정책이 ‘연결의 길’이 될지, ‘부채 함정의 상징’으로 남을지는 외부 자본을 받아들이는 각국 정부의 선택과 국제사회가 만들어 갈 규칙에 달려있다. 개발도상국들이 빚의 덫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협력의 장을 구축하는 것이 21세기 국제사회가 실현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따라서, 개발도상국들은 대규모 자본 유치 이면에 숨겨진 장기적 채무 상환 능력과 운영권 이양 조건을 면밀히 검토할 수 있는 제도적 방어 기제를 마련해야 한다. 개발도상국들이 빚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IMF·세계은행 등 기존 국제 금융 질서의 역할 강화와 함께, 공정하고 투명한 협력의 새로운 기준이 요구된다.
[위즈덤 글로벌] 국제 사회에서의 권력은 역변하는 정치, 경제, 외교적 요소로 인해 형성됩니다. 본 칼럼 시리즈는 글로벌 권력 구도부터 자원 외교, 금융 관계, 안보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국제 정세를 조명합니다. 시대별 주요 사건과 현상들을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복잡한 경제, 정치외교적 현상을 쉽게 전달하고,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위즈덤아고라 신승우 기자의 ‘위즈덤 글로벌’ 칼럼을 통해 정치, 경제, 외교의 연관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