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유튜브 시대 속, 어른들이 그림책에 다시 빠지는 이유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어른들의 독서 트렌드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그림책 작가들

[객원 에디터 9기 / 정한나 기자] 요즘 서점에는 그림책을 찾는 성인 독자들이 늘고 있다. 과거 어린이 전용으로 여겨졌던 그림책이 이제는 마음의 휴식처이자 정서적 도구로 새롭게 소비되고 있다. 유튜브와 쇼츠, 릴스 등 짧고 자극적인 시청각 콘텐츠가 일상화된 오늘날,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심리적·문화적 흐름의 전환을 보여준다.

디지털 환경 속 인간의 뇌는 점차 ‘빠른 정보’에 익숙해지고 있다. 강한 시각·청각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주의 지속 시간이 짧아지고, 느린 흐름이나 미세한 감정에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현상이 나타난다. 일명 ‘팝콘 브레인’이라 불리는 이 상태는 뇌의 자극 처리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며, 일상 속 몰입이나 감정 교류를 어렵게 만든다.

이런 시대에 그림책은 오히려 반대의 속도를 제안한다. 짧은 문장과 간결한 그림은 독자에게 속도를 조절할 여유를 주고, 넘기고 멈추고 되돌아가는 물리적인 독서 경험은 능동적인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페이지마다 상징적 의미를 담은 그림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기보다, 여백 속에서 독자의 내면적 반응을 유도한다. 이러한 특성은 정서적 안정과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림책은 더 이상 아동 도서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에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넘어, 처음부터 어른을 독자로 설정한 그림책들이 기획되고 있다. 이렇게 제작된 그림책들은 ‘아이를 위한 책’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내 마음을 위한 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림책은 어른에게도 위로와 통찰, 때로는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여러 대형 서점과 공공 도서관에서도 성인용 그림책 코너를 별도로 구성하거나, 전시와 독서 모임 등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그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적인 인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그림책은 세계 무대에서 점차 그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세계 3대 그림책 상으로 꼽히는 볼로냐 라가치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그리고 BIB상은 각각 그림책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볼로냐 라가치상은 1966년 제정되어 매년 3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도서전인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출품된 책 중 예술성과 창의성이 뛰어난 작품에 수여된다.

한국 작가들은 2004년 첫 수상 이후 거의 매년 라가치상을 수상하며, 국제 그림책 시장에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로는 이수지, 백희나, 안녕달 작가 등이 손꼽힌다. 특히 이수지 작가는 섬세한 그림과 따뜻한 이야기로, 백희나 작가는 모형을 직접 만들고 사진을 촬영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안녕달 작가는 창의적인 스토리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림책은 국내 시장에서 더 나아가서 해외시장까지 확보할 수 있다. 시각 중심의 구성 덕분에 해외 수출이 활발하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다수의 한국 그림책이 일본, 대만, 유럽 등으로 번역·수출되며 글로벌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림책 시장이 마냥 긍정적인 흐름만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 이후 급격히 확대되었던 독서 인구가 다시 줄어드는 추세이며, 출판 시장 전반의 침체로 인한 불안정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림책이 꾸준히 독자층을 확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감정 조절, 몰입, 공감의 조건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게 충족하는 매체 중 하나가 바로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시청각 자극이 빠르게 소비되고 지워지는 시대, 그림책은 오히려 오래 머무는 감정과 기억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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