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기후위기 속 사라지는 식재료와 늘어나는 가공식품
[객원 에디터 9기 / 정한나 기자] 요즘 식탁에서 익숙하던 재료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가격이 오르거나, 품질이 예전만 못하거나, 때론 아예 구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것이 단순한 가격 인상의 문제일까? 그보다는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오랫동안 우리 식탁을 지켜온 식재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식품업계와 과학계는 이 공백을 대체 식품과 기술로 메우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실험실에서 자란 고기, 유전자 편집 작물, 원두 없이 만든 커피까지. 한때는 기발한 아이디어였던 것들이, 지금은 우리 식생활의 일부분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식생활은 이제 전환의 기로에 놓여 있다.
작물은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온과 강수 패턴이 불안정해지면서 생육 과정이 흐트러지고, 병해충 발생도 잦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를 덮친 이상기후는 농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문제는 단지 수확량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일부 작물은 재배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시장에서 사라질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그중에서도 커피는 기후 변화에 취약한 대표적 작물이다. 세계 커피 생산량의 약 75%를 차지하는 아라비카종은 온도, 습도, 고도, 강수량 등 매우 까다로운 재배 조건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브라질과 베트남 등 주요 산지에서는 이상고온과 가뭄, 그리고 서리 같은 극단적 기상 현상이 반복되며 커피 농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2023년 기준 아라비카 원두 가격은 톤당 약 1029만 원으로, 1년 사이 85% 이상 급등했다. 이는 단순한 수요 증가가 아니라, 공급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바나나와 카카오 역시 기후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작물이다.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바나나 품종의 대부분은 ‘카벤디시’라는 단일 품종인데, 이 품종은 특정 병원균(TR4)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고온 환경에서 이 균은 빠르게 확산되며, 감염된 바나나는 뿌리부터 썩어 결국 밭 전체를 폐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카카오의 경우 대부분의 작물들이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생산되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재배지가 점점 북쪽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대로라면 2050년에는 기존 재배 면적 상당 부분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변화는 꿀벌의 감소다. 꿀벌은 많은 과일 작물의 수확에 필수적인 꽃가루받이를 담당하지만, 기후 변화로 개화 시기와 꿀벌의 활동 시기가 어긋나면서 수정률이 떨어지고 있다. 꿀벌이 줄어드는 것은 곧 사과, 배, 참외 같은 작물의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기후 변화로 식재료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가공식품에 대한 의존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유통과 보관이 용이하고, 가격 변동에도 비교적 덜 민감하다는 점에서 식품 기업들은 가공 비중을 늘리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한정된 신선 식재료 대신 장기 보관이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는 일이 늘고 있다. 특히 재배가 까다로워진 곡물이나 채소류를 대신해 혼합 파우더나 대체 성분으로 만든 식품들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가정간편식 시장은 5조 원을 넘어섰고,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동시에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식물성 원료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식물성 고기, 조류로 만든 해조류 스낵, 곤충 단백질이 함유된 영양바 등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식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환이 건강과 환경에 모두 바람직한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가공식품은 제조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하고, 포장재와 폐기물도 많이 발생시킨다.
이처럼 식생활 전반에 걸쳐 변화가 불가피한 가운데, 대안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아토모’는 해바라기씨, 수박씨 등 다양한 식품 폐기물을 활용해 커피의 분자 구조를 정밀하게 복제하는 ‘빈리스’ 커피를 개발했다. 이 커피는 전통적인 커피처럼 카페인이 들어 있지 않고, 하우스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후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한다. 또한 핀란드 국립기술연구소는 커피나무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커피를 생산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 기술은 토지를 사용하지 않고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커피 생산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며, 탄소 배출도 크게 줄일 수 있어 환경적인 장점이 크다.
고기 역시 같은 전환을 겪고 있다. 세포 배양육은 살아 있는 동물을 도축하지 않고, 줄기세포만 채취해 실험실에서 조직을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미 미국과 싱가포르에서는 배양육의 시판이 허가됐고, 전 세계에서 관련 기술이 급속히 발전 중이다. 생선, 치킨, 소고기뿐 아니라, 지방과 근육 조직을 정밀하게 조절해 ‘식감’까지 구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유, 달걀도 예외가 아니다.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활용해 만든 식물성 우유와 계란 제품은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특히 식품 알레르기나 유당불내증을 겪는 소비자,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히 새로운 제품이 생긴다는 의미를 넘어, 식품 생산의 전체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존의 농업 중심 체계에서, 생명공학과 실내 재배, 식물 기반 조합 등 기술 중심의 시스템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체 식품이 늘어난다고 해도 기존 제품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대체 커피는 커피 고유의 ‘문화적 경험’을 대체하긴 어렵고, 배양육은 아직 일반 소비자가 접근하기엔 가격이 높다. 많은 경우 이 식품들은 아직 ‘비슷한 음식’이나 ‘신기한 체험’ 정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가 기존 농가와 생산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부족하다.
예를 들어, 커피나 카카오 생산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온 수천만 농민들은 새로운 기술과 시장 흐름에서 점점 밀려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식품 시스템을 논할 때는 단순히 환경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그 변화가 사람들에게도 공정한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기후 변화에 따른 식품산업의 변화는 식품 접근성마저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연식품의 재배와 유통이 어려워지면 품질 좋은 식재료가 점점 더 비싸지고 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만약 가공식품 중심의 식단이 보편화된다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일부 계층만이 건강한 자연식품을 안정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식생활 전환이 계속된다면 식품 선택의 기회마저 경제력에 따라 달라지는 불평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이제 식품은 더 이상 예전처럼 쉽게, 당연하게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고 있고,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그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새로운 식재료, 새로운 기술, 낯선 조합들이 빠르게 등장하는 지금, 무엇을 먹고 어떻게 소비할지에 대한 질문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