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기술의 확산이 바꾼 불안과 긴장의 방식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정한나 기자] ‘스트레스’는 오늘날 정신건강과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 그러나 이 용어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긴장을 어떻게 설명해 왔는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의미로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인간은 몸과 마음이 긴장하고 균형을 잃는 상태를 지금처럼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설명하지 않았다.
스트레스는 흔히 시간과 문화에 관계없이 존재하는 보편적인 반응으로 이해된다. 사실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생리적·내분비적 메커니즘 자체는 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몸은 오래전부터 위험과 변화에 반응해 왔다. 다만 이러한 보편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조심스러운 지점이 있다. 스트레스가 나타나는 방식과 그것을 해석하는 틀은 사회와 문화, 시대적 환경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는 단순한 생물학적 반응을 넘어, 사회적 관행과 결합된 경험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20세기 초 생리학에서 등장한 ‘항상성’ 개념과 함께 구체화되었다. 생명체는 외부 환경이 변해도 내부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이 개념은, 긴장이 왜 발생하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스 셀리에 박사는 스트레스를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신체적·정신적 긴장 상태로 정의했다. 그는 서로 다른 자극에 노출된 실험쥐들이 신체적 손상과 무관하게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스트레스 반응이 경고 단계, 저항 단계, 소진 단계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과거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양의 비교로는 답하기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의 크기보다 그 구조가 어떻게 달라졌는가이다.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자극의 빈도도 높다. 동시에 위협은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기보다 일상 속에 길게 이어지는 부담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취업과 직장생활, 가족 돌봄, 경제적 불안은 하루 이틀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장기적 스트레스는 신체와 정신의 에너지를 서서히 소진시키며 번아웃이나 무기력감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흔히 스트레스를 현대 사회의 문제로만 인식한다. 빠른 기술 발전과 끊임없는 정보, 경쟁적인 사회 구조가 불안을 키웠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사람들은 정말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과거 사회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해 이해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종교적 전통 속에서 육체는 물질의 영역에 속했고, 이성이나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의 문제로 구분되었다. 두 영역을 함께 설명하려는 시도는 드물었으며, 마음의 고통은 신이나 운명, 혹은 개인의 의지 문제로 해석되곤 했다. 합리적 사고를 강조한 데카르트 역시 마음을 신체의 작용과 분리된 독립적 실체로 보았다. 이러한 이원론적 사고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심리적 문제와 신체적 반응을 분리해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몸과 마음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외부 환경에 동시에 반응한다. 위협이나 압박을 느낄 때 심장이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되는 신체적 변화와 함께, 불안과 초조 같은 감정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처럼 신체적 반응과 감정적 경험이 맞물려 나타나는 과정이 바로 스트레스 반응이다. 따라서 스트레스는 개인의 정신력이 약해서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반응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스트레스의 특징 중 하나는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노력과 결과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관계가 훨씬 불확실해졌다. 정보에 접근하기는 쉬워졌지만, 그만큼 비교의 기준도 늘어났다. SNS와 온라인 환경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까지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에게 이전보다 더 큰 무력감을 남길 수 있다.
실제로 서울대와 KAIST의 공동 연구에서는 디지털 기기 사용 증가가 수면의 질 저하와 불안, 우울감과 연관된 경향을 보였다. 청소년의 경우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청소년정책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SNS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많은 학생일수록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사회 전반의 정신건강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시각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 BK21 건강재난 연구단이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 상태를 좋지 않다고 평가했다. 경쟁과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분위기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정치·사회·경제적 불안정과 재난 같은 외부 요인이 개인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비율도 높았다. 특히 조사 대상 가운데 약 4분의 1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으며, 이들은 우울감과 삶에 대한 불만족, 울분 지표에서 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불안과 외로움이 더 크게 나타난 점도 함께 확인됐다.
스트레스라는 현상은 현대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외부 자극에 반응해 몸과 마음이 긴장하는 과정은 인간에게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적절한 긴장은 오히려 개인을 단련하고 이후의 도전에 대비할 힘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누적될 때다. 이때 필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이를 조절하고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결국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양이 늘어났다기보다 성격이 달라졌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통제하기 어려운 자극이 늘어난 사회에서는 과도한 정보와 비교가 긴장을 쉽게 키운다. 반대로 몸과 마음을 동시에 사용하는 활동은 이러한 흐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예술을 감상하거나 신체 활동에 집중하는 시간은 긴장을 완화하고 사고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상 속의 작은 선택들이 스트레스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위즈덤 TECH]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생각하고, 선택하며, 감정까지 흉내 내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기술의 편리함과 불안이 공존하는 지금, 인간의 자리는 어디에 있어야 할지 고민해 봅니다. 이 칼럼에서는 현재 과학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윤리적 딜레마와 사회적 논의는 무엇이 있을지 살펴봅니다. 나아가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도 연재를 통해 함께 배워나가겠습니다. 위즈덤 아고라 정한나 기자의 ‘위즈덤 TECH’와 함께 인공지능의 세상으로 떠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