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TECH]보이지 않는 엔진: 데이터와 AI가 움직이는 F1

< 일러스트: Gemini generated image – google.gemini.com>

[위즈덤 아고라 / 이석현 기자] 전 칼럼에서 얘기했다시피 F1은 흔히 속도와 기술의 정점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오늘날 그 속도를 가능하게 하는 진짜 동력은 드라이버의 발끝이나 엔진 출력만이 아니다. 레이싱카 속에는 수백 개의 센서가 숨겨져 있고, 그들이 데이터와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인공지능(AI), 그리고 이를 해석하는 엔지니어와 드라이버가 함께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협업이 있다. 현대 F1의 진정한 엔진은 바로 데이터와 AI다. 

현대 F1 차량 한 대에는 평균적으로 250~300개의 센서가 탑재된다. 이 센서들은 단순히 속도와 회전수를 기록하는 수준이 아니라, 엔진 온도와 압력, 브레이크 디스크 온도, 서스펜션 변위, 타이어 표면과 내부의 온도 분포, 공기역학적 하중 분포까지 측정한다. 센서는 차량 곳곳에 심어진 신경망처럼 작동하여, 레이스카의 모든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센서들이 보내는 데이터는 차량 내부의 ECU(전자제어장치)와 17개 이상의 CAN 버스 네트워크를 통해 통합된다. 일부 센서는 크기가 손톱만 하고 무게도 수그램에 불과해 드라이버는 물론 관중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작은 장치가 초당 100만 개 이상의 데이터 포인트를 생성하며,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심장 박동처럼 팀 전체에 전달된다. 프런트윙에 장착된 적외선 열화상 센서처럼 노출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차량 깊숙한 곳에 숨어 레이스를 기록한다.

이 방대한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피트월과 팀 본사로 전송된다. 메르세데스 AMG F1의 분석에 따르면, 한 랩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약 30MB에 달한다. 레이스 주말 동안 트랙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만 합쳐도 1TB 이상이고, 피트에 복귀했을 때 물리적 연결(umbilical)로 내려받는 오프로드 데이터까지 포함하면 그 양은 두세 배에 이른다. 멕시코 GP 같은 경우, 본사와 트랙 간 데이터 왕복 양이 무려 11TB에 달했다. 또한 유럽 내 서킷에서는 브래클리 본사까지 도달하는 데 10밀리 초면 충분하다. 일본, 호주처럼 지리적으로 먼 대회에서도 지연은 300밀리 초를 넘지 않는다. 덕분에 팀 본사의 Race Support Room은 마치 현장 피트월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드라이버와 차량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단순한 숫자일 뿐이다. F1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이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해석하느냐다. 그래서 모든 팀은 AI와 머신러닝을 전략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머신러닝 모델은 타이어 마모 곡선을 예측해 교체 시점을 제안한다. 연료 소비율과 엔진 효율 저하를 계산해 남은 랩 수를 고려한 최적 전략을 도출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 모델이 도입되어, 단순히 유리한 전략이란 결과를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전략이 선택된 이유를 엔지니어에게 설명할 수 있다. 덕분에 인간은 데이터에 의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해하고 직관과 결합해 더 정교한 결정을 내린다.

또 다른 영역은 시뮬레이션이다. 레이스 중 세이프티카 투입,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 경쟁자의 피트스탑 같은 변수를 반영해 AI는 수초 만에 수억 번의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 그 결과 엔지니어는 여러 시나리오 중 최적의 선택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고, 드라이버는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데이터와 AI는 인간의 감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이 미처 닿을 수 없는 영역을 메워주는 보이지 않는 두 번째 드라이버다.

F1에서 축적된 데이터 분석 기술은 서킷을 넘어 다양한 산업에 파급된다. 맥라렌은 시즌마다 100억 개 이상의 데이터 포인트를 처리하며, 이를 차량 설계, 공기역학적 해석, 엔진 내구성 시험 등 모든 단계에 반영한다. AWS와 협력해 CFD(전산유체역학) 시뮬레이션 속도를 70% 이상 향상하고, 공기역학적 효율을 크게 높인 사례는 대표적이다. 맥라렌 애플라이드 테크놀로지(McLaren Applied Technologies)는 이 역량을 항공, 헬스케어, 제조업에 이용한다. 예를 들어 제약사 GSK는 이 기술을 통해 생산 라인 전환 시간을 60% 단축하는 성과를 냈다. 오라클-레드불은 F1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e스포츠에도 적용하여 팬들에게 실시간 텔레메트리와 전략 데이터를 제공, 관람 문화를 혁신하고 있다. 이렇게 F1의 데이터와 AI 기술은 스포츠의 한계를 넘어, 산업 전체의 속도와 효율을 바꿔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데이터와 AI가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의 결정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크리스티안 호너가 언급했듯, 텔레메트리 없이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지만 최종 판단은 전략가와 드라이버가 한다. 마이클 슈마허가 수백 장의 데이터 시트를 직접 검토하며 자신의 주행 방식을 세밀하게 조정했던 일화는 데이터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인간의 직관과 결합해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결국 오늘날의 F1에서 진짜 엔진은 더 이상 기계 장치만이 아니다. 수백 개의 센서, 테라바이트 단위의 실시간 데이터, 이를 분석하는 AI와 머신러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실행하는 인간의 협업이 만나, 보이지 않는 엔진을 이루고 있다. 1/100초 단위로 승부가 갈리는 극한의 레이스에서, F1을 움직이는 또 다른 힘은 바로 데이터와 AI다.

[위즈덤 TECH] 시간이 흐르며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것 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기계들도 발전합니다.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계의 원리들에 관해 칼럼으로 연재합니다. 위즈덤 아고라 이석현 기자의 ‘위즈덤 TECH’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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