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김정윤 기자] 우주는 생명에게 극한의 환경이다. 중력이 거의 없고, 강한 우주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밀폐된 공간이기 때문에 산소나 수분 공급 또한 제한적이다. 이러한 환경에 세포가 노출되면 세포의 노화는 가속화되어, 근육 및 뼈가 빠르게 약해지면서 면역 기능이 빠르게 떨어지게 된다. 즉, 각종 질병과 노화가 압축된 시간처럼 빨리 진행되는 공간이 바로 ‘우주’이다. 이처럼 시간적·물리적 압축 효과는 지구에서는 수년이 걸리는 생리·병리 변화를 단기간에 관찰할 수 있어서 연구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우주는 인류에게 치명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어쩌면 생명과학계에서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SpaceX(스페이스엑스)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화성 식민지화’ 계획 발표 이후,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우주는 인류가 지구를 넘어 새로운 연구를 가능케 하는 생명공학의 새로운 실험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우리는 우주에서 어떻게 먹고, 어떻게 아프고, 어떻게 치료받을 것인가? 이번 칼럼에서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장기칩 장단기 연구 방향과 우주 농업 같은 우주 중심의 바이오 연구에 대해 파헤쳐보고자 한다.
장기칩 실험 (우주 실험실에서 만드는 새로운 바이오 데이터)
장기칩은 실제 인간 세포를 배양한 USB 크기의 미세유체 칩으로, 인체 장기의 기능과 환경을 재현하는 장치다. 장기칩이 실제 장기의 환경을 모사하기 때문에 동물실험 대체 연구 방법으로 자주 언급되며, 칩 내부의 공기 흐름이나 압력 등 인체 내 생리적 조건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초정밀 약물 반응 분석에 유리하다. 장기칩의 핵심 기능은 이전 칼럼에서 다룬 오가노이드 기술과 비슷하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특정 장기의 생물학적 기능을 묘사하는 3D 미니 장기인 반면, 장기칩은 미세유체 채널을 통해 ‘혈류·압력·기계적 자극’ 등 인체 환경을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어 약물 반응이나 병리 변화를 보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주처럼 극한의 스트레스 환경을 재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통제가 용이한 장기칩이 실험 효율을 크게 높인다.
장기칩이 우주 속 바이오테크에서 이목을 끌고 있는 이유는 우주 공간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우주의 미세중력은 인체 세포의 노화, 근감소, 면역 저하 등을 급속도로 진행시킨다. 지구 중력에 맞게 활동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인체의 생리 시스템이 교란되기 때문에 감염이 발생하기도 전에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조절 T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지상에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질병 진행을 빠르게 압축해 관찰할 수 있다. 특히 방사선과 스트레스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암, 노화, 면역학 연구에 최적인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우주 공간은 강한 방사선, 미세중력,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가 동시에 작용하는 환경이다. 특히 우주의 강한 방사선은 세포 DNA를 손상시키고 돌연변이를 증가시키는데, 이는 지상에서는 수십 년이 걸리는 노화와 암 발생 과정을 몇 달, 빠르면 수 주 안에 관찰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미세중력은 면역세포가 어떻게 약해지고 기능이 어떻게 손상되는지를 더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지난 2024년 7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인체 세포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인체 장기를 칩 위에 그대로 모사한 오가노이드를 우주로 보내는 ‘티슈 칩스 인 스페이스(Tissue Chips in Space)’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또한 NASA는 2018년 프로젝트를 수행할 연구팀 9곳을 선정해 각 498만 달러(약 69억 원)를 지원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김덕호 미국 존스홉킨스 교수는 심장 오가노이드 제작과 분석을 맡았다. 김 교수가 제작한 심장 오가노이드는 2020년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발사되었고, 약 한 달 후 분석 결과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이 발견됐다”며 “몸 전체 에너지의 30%를 차지하는 심장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바이오 연구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확장되면서 질병 및 세포 이상 패턴을 지구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관찰하고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미국 기업 테크샷은 ISS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해 세포를 층층이 쌓아 심장근육 조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상에서는 중력 때문에 세포가 납작해지지만, 무중력 환경에서는 세포가 3D 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테크샷은 ISS 실험실에서 고순도 면역 항암제를 제조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는 약물을 만들 때 생성되는 단백질 결정이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는 우주 환경 덕분이다. 이처럼 우주는 3D 재생의학과 고순도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최적화된 ‘무중력 공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우주 의학의 장단기적 목표
현재 우주 장기칩 연구는 장단기적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최근 막 시작된 우주 장기칩 연구는 기본적인 데이터 수집에 초점을 맞춰 우주에서의 세포 변화와 지구에서의 세포 변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단계이다. 이 연구의 장기적인 목표는 단순히 실험 데이터가 아니라 훗날 인류가 우주에 거주할 때를 대비한 재생의학 발전이다. 우주에서 만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면 같은 질병 분야가 지구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될 수 있고, 그 결과 지구 의료 기술을 응용한 혁신적인 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인류의 식량을 책임질 우주 농업
우주는 앞으로 인류의 새로운 실험실 같은 공간이다. 그러나 인류가 우주에 오래 거주하는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더 이상 로켓이 아닌 ‘농업’이 된다. 중력도, 안정적인 물 공급도 없는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주 농업을 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2가지 요소는 지구의 농작물을 토양, 물, 빛, 공기 등 우주 환경에 적응시키는 기술과 우주 식물 종자 육종 기술이다. 사실 우주 개발 연구가 막 시작됐던 1960년대부터 이미 미국과 소련은 우주 식물 종자 육종시험을 시도했었다. 그리고 현재는 식물 종자를 우주로 가져와서 우주 방사선과 미세 중력을 이용해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켜, 고생산, 고기능의 종자를 얻어서 경제성이 높은 작물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기술이 개발됐다.
2023년 국가미래연구원이 발표한 우주농업 기술동향 문서에 의하면 우주로 나가는 인공위성이 많아지면서 현재까지 약 2,000종의 우주 식물과 과일 종자가 등장했는데, 이 중 200여 종은 재배 승인까지 받았다.
남극은 지구상에서의 우주 농업 연구를 위해 선택된 야외 실험 장소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됐던 EDEN ISS (Ground Demonstration of Plant Cultivation Technology for Safe Food Production in Space) 연구과제는 독일의 주도 하에 아일랜드, 미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캐나다, 그리고 이탈리아가 참여하여 컨테이너형 식물공장을 독일 남극기지인 노이마이어 기지에 제작했다. 남극 연구에서는 토양을 영양액으로 대체하고 인공조명을 하면서 과일과 채소를 성공적으로 생산했다. 시험면적 약 3.78평이란 작은 공간에서 9.5개월간 토마토 50 kg, 오이 67 kg, 상추 117 kg으로 총 무려 268 kg을 생산했다. 아울러 유럽 우주국 (ESA)는 우주 비행사가 일일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일인 당 50 kg 채소 공급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러한 실험은 극한 환경에서도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 기술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NASA 와 SpaceX 의 역할
예전에는 미국 항공우주국 NASA가 우주 실험을 독점했지만 민간기업 SpaceX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SpaceX는 Falcon-9과 같은 재사용 로켓 개발에 힘쓰면서 발사비용을 절감하고 ISS (국제우주정거장)까지 실험장비를 자주 보내 민간 연구자들도 우주에서 실험 및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NASA는 기초 연구를 중심으로 장기칩, 우주 방사선, 면역 연구 같은 공공 우주의학 연구를 진행해 왔다. 실제로 2019년 이후 ISS 미국 국립연구소에서 수행된 62건의 연구 중 약 41건은 우주의학과 관련된 프로젝트였다.
결론적으로 우주 바이오테크의 핵심은 인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다. 단기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우주에서의 장기칩 연구는 질병을 빠르게 관찰하고 이에 알맞은 신약 개발 속도를 단축하여 지구상에서의 혁신적인 의료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인류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의 범위가 넓어지면 인류가 달이나 화성으로 이주할 경우에도 안정적인 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더불어 우주 농업 기술은 단순 의료 시스템을 넘어서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적 문제 (식량난, 지구 온난화 등)에 대한 해결 방안을 연구할 수 있는 실험장이 되기도 하다.
NASA의 기초 과학 정보를 기반으로 SpaceX는 우주실험을 상업화함으로써 멀게만 느껴졌던 우주를 보다 가까운 현실로 만들고 있다. 전 세계가 우주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우주 의학 우주 농업에 발 빠르게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이스라엘, 영국 등, 이들 나라가 우주의학이 발달한 건 우주 정거장에 접근할 수 있는 독점적인 권리를 갖고 있어서 우주의학기술에 아주 빠르게 준비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우주의학과 우주 농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연구 및 준비를 해야 하며, 이 준비 과정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기술 지원 확보가 시급하다. 정부·연구기관·민간기업이 함께 우주 생명공학 역량을 구축해야만, 다가오는 우주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위즈덤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로도 잘 알려진 생명공학기술은, 다양한 생물체의 구조와 유전 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생체기능이나 시스템을 개발하는 첨단 학문입니다. 생명공학은 자연적인 유전자의 작동 원리와 성장, 생물학적 기능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또한, 생명공학기술은 난치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위즈덤 아고라 김정윤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와 함께,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최신 동향을 살펴보고,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 그리고 생명공학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누어보세요.
